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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씨, 제발 허튼소리 마시오”

‘과거 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 위원으로 활동한 한홍구 교수가 “국정원이 KAL기 폭파 사건은 남한 작품이라는 양심선언을 하라고 강요했다”라는 김현희씨의 주장이 왜 허구인지 밝혔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교양학부) 2009년 03월 24일 화요일 제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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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1일 김현희씨(오른쪽)가 북한에 납치된 다구치 씨의 장남 이즈카 고이치로 씨(가운데)를 만났다.
얼마 전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씨가 일본의 납치 피해자 가족을 만났다. 12년 은둔생활을 접고 처음 공개적인 자리에 나섰다. 김현희씨의 공개 등장은 어느 정도 예측된 일이었다. KAL기 폭파 사건 22주년을 며칠 앞둔 지난해 11월 말 김씨는 느닷없이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등 극우 인사들에게 엄청나게 긴 편지를 보내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과 국내 친북 좌파 세력으로부터 858기 폭파 사건이 북한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 남한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양심선언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KAL기 폭파범에서 국가기관과 시민단체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가냘픈 여성으로, 그리고 일본인 납치 피해자 가족의 눈물을 닦아주는 인도주의 인물로 순간순간 탈바꿈하는 김씨의 변신이 눈부실 정도다.

김현희씨의 갑작스런 공개 활동과 괴이한 주장 때문에 2004년 10월부터 꼬박 3년간 국가정보원 ‘과거 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에서 일한 사람들은 황당해졌다. 필자는 이때 KAL기 사건을 직접 조사하지는 않았지만 김씨가 편지글에서 “힘없는 여자 하나도 조사하지 못하는 위원회”라고 조롱한 진실위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던 처지라 남다른 느낌을 가졌다. 조용히 살고 싶다며 10여 차례에 걸친 진실위의 비공개 조사 요구도 거부하더니 일본인 납치와 관련해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납치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행동은 이해할 수 없다. 사형을 선고받았던 김씨가 지금 살아 있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자기 손으로 폭파한 KAL기 사건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며, 혹시라도 티끌만 한 의혹이 제기된다면 이를 풀기 위해 성실하게 임해야 하는 것이다.

진실위 “안기부는 KAL기 폭파 사건과 무관”


김현희씨는 ‘친북 정부’인 참여정부가 “KAL기 사건을 지난 과거 정부 때와 다르게 다른 시각에서 각색해 심도 있게 이용하려 했다”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참여정부는 KAL기 사건으로 오랫동안 테러지원국이라는 멍에를 써온 북한의 짐을 벗겨주었고, “국내 정치세력 구도를 변화시키는 데는 KAL기 사건이 가장 좋은 소재 거리라고 여겼다”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국정원이 이런 의도 아래 ‘안기부 수사 결과 발표문을 재구성해 진실 게임을 펼치는 기발한 기획공작’을 꾸며 자신에게 KAL기 폭파 사건은 북한이 한 짓이 아니라 남한에서 조작한 것이라는 ‘양심선언’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1987년 12월15일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두고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씨가 압송되었다. 이 장면은 대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정말 젊은이들 말로 ‘ㅤㅁㅝㅇ미?’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주장이 조금이라도 성립하려면 KAL기 사건을 재조사한 진실위가 김씨는 북한의 공작원이 아니고, KAL 858기는 안기부가 폭파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김씨가 보기에도 ‘대부분 정보기관의 피해자이면서 자기 방식의 역사의식을 지닌 진보 성향의 인물’로 구성된 진실위는 ‘안기부 자작극’ ‘안기부가 사전에 폭파 계획을 알고도 방조’ ‘김현희는 안기부 공작원’ 따위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했다. 진실위가 비록 ‘무지개 공작’이라 이름 붙은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북괴 음모 폭로 공작’을 밝혀내어, 당시 군사독재 정권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 사건을 대통령 선거에 유리하게 활용하는 데 급급해 국가의 책무를 저버렸다는 사실은 밝혀냈지만, 전체적으로는 사건 직후 안기부 수사 발표가 큰 윤곽에서 사실에 부합한다는 것을 확인해줬던 것이다. 요컨대 진보 인사가 다수 포진한 진실위는 시민사회의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KAL 858기 사건에 관한 한 안기부에 면죄부를 준 것이다.

사실 16년 만의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를 20일도 채 남겨놓지 않고 KAL 858기가 의문의 폭파를 당한 직후부터 사건의 진실을 둘러싸고 시민사회 내에는 여러 가지 의혹이 계속 제기됐다. 사건이 터지자 군사정권은 임박한 대통령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김현희씨를 급거 압송해 왔고, 서둘러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다 보니 당시의 수사발표 과정에서 여러 가지 허점이 노출되었고, 이 허점은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1980년대는 민중과 군사독재 간에 극단적 대결이 벌어진 시대였다. 흔히 200만 표의 파괴력을 지녔다고 얘기되던 KAL기 폭파 사건은 대선에서 노태우의 승리를 결정적으로 굳혀주었다. KAL기 폭파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전두환과 노태우 후보였다. 그러니 이득을 본 자들이 일을 꾸몄을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갔다. 민중의 눈에는 광주학살의 ‘살인마’ 전두환 일당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악마’로,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사람으로 비쳤다. 게다가 당시의 급진적인 청년 학생들은 사회주의 정권인 북한이 노동자를 해칠 리 없다고 강하게 믿었다. 이러한 편견과 극히 부실하고 조급하던 수사 발표의 허점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쓸데없는 의혹이 불거져갔다.

진실위가 만들어지고, 조사 대상 사건을 선정할 때 KAL기 폭파 사건은 0순위로 선정되었다. 안기부를 둘러싼 의혹 사건 중에서 가장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고 끊임없이 의혹을 낳아온 사건이라는 점에서 민간 쪽에서 이 사건을 중시한 것은 당연했다. 국정원 측에서도 자기네가 터무니없는 누명을 썼다면서 조사에 적극 임했다. 진실위는 이 사건의 민간측 조사관으로 KAL858 대책위 사무국장이자 <KAL858, 무너진 수사발표>라는 책을 쓴 신동진씨를 선임했다. 진실위는 신동진 조사관에게 자신을 포함해 그동안 민간측에서 제기해온 각종 의혹을 총망라해보라고 지시했고, 신동진 조사관은 그 의혹을 처음에는 350건으로 정리했다가 다시 148개로 압축했다. 진실위의 조사 결과 보고서는 이 148개 의혹에 대한 답변이다. 필자가 보기에 폭약 문제를 제외한 모든 의혹은 다 설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진실위는 사라진 KAL 858기의 동체를 찾는 데 심혈을 기울였으나 실패했다.

   
KAL기 사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 모습.

안기부 계획 따라 김현희 사면돼


진실위는 일차적인 문서 검토를 끝낸 뒤 김현희씨를 대면 조사하려 했다. 처음에는 국정원을 통해서, 나중에는 진실위가 직접 나서서 10여 차례 김씨 측과 접촉했으나 김씨 부부는 극도의 피해의식과 망상에 사로잡혀 진실위의 조사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김씨 남편은 전직 안기부 직원이다. 안기부는 조직 위계가 일반인의 상상 이상으로 센 곳이었으나 옛 상사인 국정원 지휘부의 간곡한 호소와 직접 방문도 아무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김현희씨 자신도 진실위에 나와 조사의 설득력을 높임으로써 더 이상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지 않도록 적극 나서야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끝내 조사를 회피했다.

김현희씨는 1990년 3월27일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보름 만에 ‘사건이 날조됐다는 주장을 반박할 유일한 생존자’라는 이유로 특별 사면되었다. 진실위 조사 결과가 잘 보여주는 것처럼 김현희씨에 대한 사면은 처음부터 안기부의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북한이 KAL기를 폭파할 아무런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실위 조사 과정과 발표 이후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북한 측이 이런 짓을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북한 정보기관 처지에서 볼 때 KAL기 사건은 엄청나게 성공한 공작이었다. 독약을 먹고 죽으려 하던 김현희씨를 살렸기 망정이지 만약 김현희씨가 죽었다면 이 사건은 아마도 꼼짝 없이 안기부가 저지른 짓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번에 진실위에서 조사하면서 보니 1987~1988년의 조사 기록은 김현희씨의 진술을 확인해나가는 방식으로 작성된 것이었다. 만약 김현희씨가 그때 죽어버렸다면 안기부는 지금 제시하는 것과 같은 KAL 858기 폭파 사건의 진상을 절대로 재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수구 세력에게서 ‘친북 좌파’ 소리를 듣는 진보 인사로 구성된 진실위가 정성을 기울여 조사한 결과를 발표해도 안기부 조작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마당에, 그때 김현희씨를 살려내지 못했다면 안기부는 KAL기를 폭파했다는 누명을 벗을 길 없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진실위에 대해 왜 안기부에 면죄부를 주느냐고 비판하지만, 우리는 불편한 진실, 우리에게 불리한 진실에 대해서도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당시의 안기부는 KAL기 사건을 조작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엄청난 국가 폭력을 자행해온 조직이었다. 그런데 진실위가 확인한 바로는 당시에 안기부는 이런 엄청난 사건을 꾸밀 능력도 배짱도 없고, 이런 큰일을 저지르고도 20여 년 동안 감쪽같이 덮어둘 만한 치밀함 같은 것은 전혀 갖추지 못한 조직이었다. 사람 잡아다 겁주고 두들겨 패는 짓에서는 전문가였을지 모르나 동백림 사건, 김대중 납치 사건, 김형욱 살해 사건 등에서 보듯이 해외 공작에서는 실수투성이였다.

   
2008년 12월16일 ‘KAL기 폭파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남북 공동조사 등을 요구하는 김덕진 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왼쪽 사진 오른쪽)과 서현우 KAL 858기 대책위 조사팀장(오른쪽 사진).
과거사 진상 규명을 뒤엎고 싶은 극우 집단의 미망과 김현희씨의 피해의식과 망상이 서로 맞물리면서 국정원이 김현희씨의 양심선언을 강요했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더구나 북·미관계 개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납치 문제를 우려먹으려는 일본 우파의 장단에 앞뒤 분간을 못하는 한국의 극우 세력과 힘없는 여인을 자처하는 115명 살해범이 놀아나고 있다.

김현희씨는 북한 공작원 출신임에 틀림없지만, 엊그제 북한을 떠난 인물이 아니라 22년 전에 북한을 떠난 낡은 공작원이다. 그녀가 어떻게 납치된 일본인이 지금 살아 있다고 단정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주장을 하든 개인의 자유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제발 부탁건대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말이 되는 주장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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