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시디자인 탐사〉 김민수 지음, 그린비 펴냄

김민수 교수(서울대)가 쓴 디자인 관련 저작들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장소성에 뿌리박은 삶의 조화로운 설계야말로 그의 디자인 관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그는 ‘장식성’으로 전락해 학대받아온 디자인 개념에 철학과 인문주의의 숨결을 불어넣고자 한다. 그가 명명한 ‘필로디자인’이라는 개성적인 조어에는 그런 미학적 야심이 숨어 있다.

그런 그가 최근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버금가는 도시디자인 지도를 독서계에 제출했다. 〈한국 도시 디자인 탐사〉에서 그는 한국의 광역시들을 수년간 답사하고 문헌학적 연구를 용해시킨 후, 우리가 ‘영혼이 있는 도시’에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예리한 질문을 던진다.
이 책에서 김민수 교수가 제기하는 도시디자인 철학은 무엇보다도 ‘장소성’에 대한 자의식과 관련되어 있다. 그가 보기에 한국의 광역시는 각 도시가 가진 역사성과 장소에 대한 실존적 자의식을 분식한 채, ‘환경미화’라는 낡은 사고 위에 구축된 ‘명품주의’와 ‘개발주의’가 극성을 부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각각의 광역시가 역사적으로 뿌리박은 장소의 기억과 철학이 휘발된 대신, 거기에는 장소성에 어울리지 않는 번쩍거리는 사각형 건물이 들어서고 있으며, 외래어로 치장된 ‘웰빙주의’가 판을 친다. 예컨대 우리에게 공업 도시로 인식되는 울산에서 그의 시야는 신화적인 기운이 생생하게 살아남아 있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로 향하며, 이 기억의 역사와 조응하지 않는 도시공간의 인공성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멋진 건축’보다 ‘공공 디자인’이 더 중요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도시 디자인이란 그곳에 거주했던 인간과 자연을 둘러싼 ‘삶의 주름들’에 대한 통찰에 입각해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가 책 종결 부분에서 건축가 정기용이 설계한 전북 무주군 안성면사무소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목욕탕과 건축물이 딸린 이 면사무소는 껍데기뿐인 ‘멋진 건축’보다는 지역민의 일상적 동선과 요구와 조응하는 ‘공공 디자인’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정치학자인 인병진 교수도 공화주의를 역설하는 최근의 저서에서 이 안성면사무소를 우연히 방문한 후 ‘공화주의’와 결합한 건축의 아름다움을 읽어낸 바 있는데, 그렇게 참다운 의미의 도시 디자인은 삶을 미학적으로 조직하고, 거기에 장소의 정체성과 기억을 불어넣는 뿌리의 숨결과도 같은 것이다. ‘영혼이 있는 도시’는 결코 먼 곳의 불빛이 아니다.

기자명 이명원 (문학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