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일부터 일산호수공원 고양꽃전시관에서 열리는 ‘신나는 뽀로로 놀이동산’. 유아를 대상으로 한 기획 행사인데, 인터파크의 ‘행사·전시’ 부문 예매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부문 전체 판매점유율 88.7%(11월2일 현재)로 압도적이다. 캐릭터 ‘뽀로로’의 힘이다.

2002년 8월, 〈뽀롱뽀롱 뽀로로〉가 처음 알려졌을 때 남북 합작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때문에 주목되었다. 하나로텔레콤(당시 하나로통신), 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 오콘 등이 북한의 삼천리총회사와 공동 작업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심하게 귀여운’ 펭귄 캐릭터가 ‘대박 히트’를 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뽀로로’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해외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방송을 타기도 전인 2003년 5월 애니메이션 축제로 유명한 프랑스 앙시 페스티벌의 애니메이션 TV 시리즈 경쟁 부문에 국내 최초로 진출하더니, 이탈리아 ‘카툰스 온 더 베이’, 브라질 ‘아니마 문디 페스티벌’ 등 해외 유명 애니메이션 축제에 경쟁작으로 초청되었다. 국내에서도 2006년 대한민국 캐릭터 대상 대통령상을 비롯해 여러 캐릭터·콘텐츠 관련 상을 받았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로는 과거 ‘둘리’에 견줄 만하다.

뽀로로는 어떻게 ‘대표 캐릭터’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뽀로로 캐릭터를 기획·제작하고, 마케팅과 캐릭터 라이선싱을 담당하는 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의 최종일 대표가 새로운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궁리한 것은 2000년 말부터였다. 금강기획 애니메이션팀에서 근무하던 그는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떠올렸다. 당시만 해도 초등학생용 애니메이션이 대부분이었고, 유아용 애니메이션은 거의 없었다. ‘뽀로로’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즈음, 회사에서 팀을 정리하자 그는 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를 창업했다.

뽀로로는 기획 단계부터 세계 시장을 겨냥했다.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구조 때문이다. 최종일 대표는 “일본은 자국 시장 규모가 커서, 해외 시장 움직임에 덜 민감하다. 일본 시장 내부의 경쟁도 치열해서 ‘일본에서 먹히면 해외에서도 먹힌다’는 생각이 강하다. 하지만 한국은 국내 시장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제작비를 회수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해외 시장 움직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뽀롱뽀롱 뽀로로〉에 장면 마다 영문 표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 작품으로 아는 사람도 많다).

ⓒ시사IN 윤무영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의 최종일 대표.
2001년, 최 대표는 자료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유아용 애니메이션’은 틈새시장이었다. 애니메이션 왕국 일본에도 유아용은 많지 않았다. 통상 ‘유아용’이라고 하면 ‘교육성’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최 대표의 말대로라면, ‘에듀테인먼트’라고는 하지만 ‘놀이’보다는 ‘교육’을 강조하는 콘텐츠가 많다. 그는 생각을 달리했다. “집에서 세 살, 네 살 아이들과 〈짱구는 못 말려〉를 함께 보는데, 나와 아이들이 같은 장면에서 동시에 웃는 거다. 그때 ‘놀면서 배운다, 놀이가 교육이다’ 이런 생각을 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놀이 문화, 엔터테인먼트가 강화된 유아물을 만들겠다는 원칙을 세운 계기가 되었다. 교훈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말고, 놀이하듯이 자연스럽게 보면서, 즐겁게 익히는 그런 애니메이션으로.

‘해외에서도 통하는 유아용 캐릭터’로 어떤 것이 좋을까. 최종일 대표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애니메이션은 다른 장르와 비교해보면 문화 차이를 느끼는 ‘문화할인율’이 낮은 콘텐츠이다. 그렇지만 문화 특성이 지나치면 해외 마케팅에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캐릭터 후보에서 ‘사람’을 배제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 리스트를 검토했다. 푸우(곰), 톰과 제리(쥐와 고양이), 미키 마우스(쥐), 도덜드 덕(오리)처럼 막강한 캐릭터가 있는 동물도 제꼈다.

그러다가 눈에 띈 게 ‘펭귄’이다. 당시 유명한 펭귄 캐릭터는 ‘핑구’였다. 40개국에 팔린 캐릭터로 강자였다. 최종일 대표는 “강력한 캐릭터이긴 하지만 상대가 하나라면 충분히 경쟁해볼 만하다”라고 판단했다. 그래 좋아, 펭귄 결정!

핑구를 이길 만한 펭귄 캐릭터. 목표가 정해졌다. 그 다음은 차별화다. 핑구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캐릭터다. 그래서 뽀로로는 3D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작업했다. 핑구는 펭귄의 가족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그래서 뽀로로는 펭귄 친구, 또래 집단 이야기를 중심으로 했다. 펭귄과 다른 동물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가상공간 ‘뽀롱뽀롱 마을’을 설정하고, 곰·여우·벌새·공룡 등을 친구로 설정했다. 기획 과정에서 친분을 쌓아온 해외 채널과 지속적으로 교신하면서 반응을 체크했다. 핑구와 승부가 가능해 보였다.

2005년, 프랑스에서 열린 ‘뽀로로’ 프로모션 행사(위). 〈뽀롱뽀롱 뽀로로〉가 프랑스에서 공중파 방송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한 바 있다.

소비자 마케팅 조사는 쉽지 않았다. 유아용은 거의 처음이다. 유아에게 어떤 캐릭터가 좋은지 물을 수도 없고. 그래서 그가 택한 방법은 관찰이다. 아이들을 관찰했다.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동네 친구들과 어떻게 노는지. 인기 있는 유아용 책 내용들도 주욱 훑었다. 그러고 나서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뽀로로 뮤직 비디오에서는 기성곡을 빼고 10곡 정도 직접 작사도 했다.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기획 방향과 나중에 산출된 결과물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기획을 정교하게 해야 제작 과정에 실수가 적어진다.” 그래서 그가 쓴 시나리오에는 ‘옆으로 세 번 구르고, 오른쪽으로 세 번 구른다’는 식으로 지문이 상세하다.

시나리오를 직접 쓴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캐릭터 사업을 하기에 적합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었다. 〈뽀롱뽀롱 뽀로로〉에는 7개의 캐릭터가 나온다. 이들이 각 에피소드에서 각각 주인공 역할을 하도록 했다. 뽀로로가 주연이지만, 다른 캐릭터들이 ‘주연급 조연’이 되도록. 실제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뽀로로, 루피, 에디 등 다양해졌다.

유아용이다 보니, 소리와 음악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처음에 뽀로로의 1차 핵심 소비자를 3~7세로 잡았다(2차 핵심 소비자는 20대 후반~30대 중반의 부모 세대로 잡았다). 그런데 방송을 해보니, 제작사가 생각했던 연령대보다 수용자 연령대가 더 아래에서 형성되었다. 2세에서 6세로. 어떤 소리와 음악을 입히는가에 따라 아이들의 반응이 확 달라졌다. 소리 하나에 ‘까르르’ 웃음이 터지곤 한다.

‘뽀로로’라는 이름도 최종일 대표의 손에서 나왔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이름은 영문 동물 이름의 첫 알파벳과 겹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미키 마우스(Mickey Mouse), 도널드 덕(Donald Duck)처럼. 펭귄(Penguin)이니까 알파벳 P로 시작하기로 했다. 둥글둥글하고, 굴러가는 느낌을 주는 단어로 ‘뽀로’가 어떨까. 국어사전을 뒤졌다. 눈에 띈 단어가 ‘뽀르르였다. 뽀르르는 순우리말이다. ‘종종걸음으로 재게 움직이는 모양’을 뜻하므로 이를 살짝 변형했다. 최종일 대표는 각국 언어로 영문 ‘Pororo’에 이상한 의미가 담긴 나라는 없는지 확인했다. 간혹 언어권마다 특정 단어가 나쁜 뜻을 지닌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없었다.

81개국에 캐릭터 수출, 17개국에서 방송

2003년 6월, 교육방송 창사 기념으로 〈뽀롱뽀롱 뽀로로〉가 첫 방송을 타기까지 대략 기획·제작에 3년여가 걸렸다. 2003년 11월부터 본 방송을 시작했고, 그동안 5분짜리 TV 애니메이션 104편(52편씩 각 시즌 1·2), 뽀로로 뮤직 비디오 애니메이션 3분짜리 26편을 제작했다.

〈뽀롱뽀롱 뽀로로〉에 대한 국내외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해외에서는 81개국에 캐릭터 수출이 되었고, 애니메이션이 방송된 국가는 17개국에 이른다. 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타이완, 인도, 인도네시아, 멕시코, 프랑스, 북유럽 국가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프랑스에서는 국영 TF1을 통해 프랑스 전역에 방송되어 공중파 동일 시간대 프로그램 시청률 1위를 했다. 이는 국산 애니메이션이 유럽 공중파 방송에 진출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또 타이완(YoYo 채널)에서도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국내·외 캐릭터 라이선싱 사업도 활발하다. 현재 100여 개사 410여 품목에 특허를 내서 캐릭터 상품화했다. 인형, 완구, 문구, 의류, 신발, 껌, 칫솔 등 품목도 다양하다. 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의 김종세 이사에 따르면, 2003년부터 현재까지 누적 로열티 수익은 115억원 규모(국내 92억원, 해외 23억원)이다. 뽀로로의 로열티는 평균 출고가격의 4~8% 정도이다. 예를 들어 상품의 소비자 가격이 1만원이라면 보통 출고가격은 4500~7000원에 형성된다. 이 출고가격에 해당 로열티율을 곱한 것이 로열티 수익이 된다. 로열티 액수가 100억원대라면 뽀로로 관련 상품 매출액이 엄청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캐릭터 상품 출시뿐만 아니라 공연, 놀이전과 연계한 파생 콘텐츠도 개발했다.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스’다. 뽀로로를 뮤지컬로 만들었고, 뽀로로 전시 체험전을 열었다. 뮤지컬은 누적 관람객이 27만명, 뽀로로 체험전은 누적 관람객이 45만명에 이른다.

최종일 대표는 뽀로로를 ‘토마스 기관차’나 ‘아기곰 푸우’처럼 국제적이고 오랫동안 인기를 끄는 ‘롱 셀러(Long Seller)’로 만들고 싶어한다. 80여 개국에 수출했다고 하니, 이미 세계 무대에 어느 정도 명함을 내민 셈이다. 이제 ‘꾸준하고 오래 가는 국민 캐릭터’ 자리로 ‘뽀르르’ 달려가는 것이 남은 과제다. 그는 올겨울 〈뽀롱뽀롱 뽀로로〉 시즌3 제작에 들어가 내년에 내보낼 계획이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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