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2일,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위)가 이끄는 파리 오케스트라(왼쪽)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회를 갖는다.
프랑스와 독일. 어느 나라의 문화 역량이 더 우수할까?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는 것만큼 자존심을 건 저울질이 될 것이다. 제3자의 처지에서 단순하게 보아,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과 루브르 미술관 등을 떠올리게 되는 프랑스가 하드웨어에 더 강하다면 괴테와 니체 등으로 대표되는 독일은 소프트웨어에 더 자신감을 갖는 나라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렇다면 음악의 경우는 어떨까? 음악은 작곡가의 정신적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성숙과 극장 문화라는 인프라가 잘 갖춰져야 한다.

근대 서양음악은 대다수 양식과 틀이 이탈리아에서 탄생했다. 신포니아, 콘체르토, 오페라 등의 장르와 알레그로, 스케르초, 리브레토 등의 관련 용어가 모두 이탈리아산이다. 프랑스와 독일은 이를 수용해 자기 것으로 소화한 경우이다. 시작은 프랑스가 빠르고 견고했다. 17∼18세기 ‘왕이 곧 국가’인 절대왕정의 토대 위에 눈부신 궁정 음악과 호화로운 오페라의 꽃이 만개했다.

반면 독일 음악은 1750년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쓸쓸히 죽을 때까지만 해도 국지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더욱이 아직 민족의 개념조차 정립되지 못한 처지였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이후 물살은 독일 쪽으로 흘렀다. 무릇 교향곡은 독일산을 최고로 치게 되었다. 모차르트와 하이든, 베토벤이 활동한 빈은 그때 이래 자타가 공인하는 음악의 수도이다. 파리로서는 배가 아픈 일이었다.

긴 서론으로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거칠게’ 들먹인 까닭은 이달에 나란히 내한하는 두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소개하기 위해서이다. 11월11일에는 뮌헨 필하모닉이, 11월12일에는 파리 오케스트라가 각각 성남과 서울에서 공연을 갖는다.

뮌헨은 독일 남부 바이에른의 수도이다. 이 도시의 문화적 자존심은 대단하다. 대개 베를린 필하모닉과 빈 필하모닉을 최고로 꼽지만 뮌헨에서는 통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이들은 뮌헨 필하모닉과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를 으뜸으로 친다.

뮌헨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반대 성향인 북부의 베를린에 대해서는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 카라얀이 지휘하던 시절부터 베를린 필하모닉에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더구나 당시 뮌헨 필하모닉의 지휘자는 카라얀에게 밀려 베를린 필의 자리를 내어준 루마니아 출신의 세르지우 첼리비다케였다. 첼리비다케는 기질적으로 카라얀과 정반대 스타일이었다. 그는 연출을 싫어했고, 지극히 자의적인 템포를 고수했으며, 레코딩은 ‘통조림 음악’이라고 거부했다.

크리스티안 틸레만(위)이 이끄는 뮌헨 필하모닉(오른쪽)은 11월11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선다.
재미있는 것은 첼리비다케의 뒤를 이어 - 물론 그 사이에 제임스 레바인이라는 미국 지휘자가 다녀갔지만 - 뮌헨 필하모닉을 이끌고 있는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카라얀이 지휘하던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에서 부지휘자로 일하며 기량을 갈고 닦았다는 점이다. 10여 년 전에 베토벤의 교향곡 음반으로 혜성처럼 등장했던 틸레만은 분명히 카라얀의 젊은 시절을 연상케 하는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틸레만의 ‘선택과 집중’이 관전 포인트

그러나 오늘날 틸레만의 풍모는 사뭇 다르다. 스승의 유산에 첼리비다케의 옹고집을 더한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한마디로 ‘뚝심’이라고 해야 할까? 이번 성남 아트센터의 내한 공연에서 연주할 곡도 그런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장기들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후안〉과 〈죽음과 변용〉 그리고 최근 음반으로 들을 수 있었던 브람스 교향곡 1번이다. 모두 카라얀과 첼리비다케가 즐겨 연주했던 곡이고 그 스타일이 사뭇 달랐던 음악이다.
틸레만의 성격이 결코 ‘절충’과 ‘타협’이 아니기에 기대가 간다. 그가 어느 쪽을 ‘선택’해 ‘집중’할지가 관전 포인트이다.

다음날인 11월12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찾는 악단은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이끄는 파리 오케스트라이다. 교향악 하면 독일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프랑스 오케스트라는 어딘지 미덥지 못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독일에 앞서 찬란한 음악 문화를 수출했던 프랑스 사람들이 듣는다면 눈을 흘길 일이다. 더욱이 브람스같이 가장 독일적인 작곡가조차 때때로 독일 교향악단이 자신의 작품을 너무 무겁고 어둡게 연주한다며 프랑스 악단의 좀더 화사한 색채를 선호했다.

파리 오케스트라는 1967년에 창단했다. 1828년부터 연주했던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를 해체하고 ‘좀더 프랑스적인 음악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일념 아래 문화부가 탄생을 주도한다. 창단도 프랑스답게 혁명적이지만 역대 지휘자의 면면도 용광로 같은 이 나라의 기질을 잘 보여준다. 즉 초대 음악 감독인 샤를 뮌시 외에는 프랑스 국적의 지휘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점이다.

이번에 파리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곡들은 교향곡도 아니다. 1부에 협주곡, 2부에 교향곡을 연주하는 획일적인 우리 풍토에는 좀 생소한 프로그램일지 모르지만, 베를리오즈의 서곡 〈로마의 사육제〉,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 〈불새〉, 라벨의 모음곡 〈어미 거위〉 〈라 발스〉 그리고 〈볼레로〉를 들을 수 있다. 모두 파리가 산파 역할을 했던 작품이다.

더욱 흥미를 끄는 것은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이다. 카라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치자면 에셴바흐는 틸레만보다 훨씬 선배이다. 1959년생인 틸레만에 비하면 1940년생인 에셴바흐는 일찍이 20대에 피아니스트로서 카라얀과 연을 맺었다. 그리고 명약관화한 카라얀의 스타일은 뒤에 지휘봉을 잡은 에셴바흐의 모범이 되었다. 카라얀은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이 악단의 음악 고문을 맡기도 했다.

이 밖에도 말로 풀어낼 사연은 많다. 뮌헨 필하모닉은 1996년 주빈 메타와 내한해 베토벤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거장이 없는 시대”라 여겼던 많은 이들에게 “오케스트라가 건재함”을 느끼게 한 선 굵은 연주였다. 파리 오케스트라는 1984년 역시 피아니스트였던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끌고 내한 연주를 가진 이래 23년 만의 만남이다. 스스로의 자신감에 비해 평가절하된 두 문화적 자존심의 충돌. 짧게는 10년, 길게는 사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이들의 팔레트는 아직 굳지 않았을까? 어떤 물감을 풀어낼지는 현장에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기자명 정준호 (음악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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