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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놈, 찍힌 놈 ‘화합 잔치’에서 나가주세요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 대타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무노조 사업장 노동자나 비정규직·취업 준비생에겐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민주노총은 타협은커녕 절멸의 대상으로 취급받는다.

고동우 기자 intereds@sisain.co.kr 2009년 03월 16일 월요일 제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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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울산 현대중공업 노사는 3월4일 이영희 노동부 장관(가운데) 등이 참석한 가운데 ‘위기 극복을 위한 전 사원 결의대회’를 열었다.
요즘 보수 언론과 경제지를 보면 연일 임금동결·노사화합을 선언한 기업들 소식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해마다 반복된 너무도 ‘익숙한’(또는 식상한) 풍경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현대중공업, 인천지하철, 금호석유화학, 코오롱, STX, SK에너지, LG전자, 동국제강 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거나 무분규 임단협 타결·임금동결의 역사가 꽤 오래된 기업이다. 특히 현대중공업과 동국제강은 무려 15년째 무분규 타결이다. 노사가 함께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하자는 움직임을 누가 감히 폄훼할 수 있을까마는, 이는 산업 현장에 ‘평화 무드’가 정착되고 있다는 정부와 일부 언론의 주장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일단 ‘노’의 사기부터가 최악이다. ‘일자리 나누기’ 등 전 사회적인 대타협 분위기도 잠시, 몇몇 취업 사이트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32%가 최근 회사에서 퇴사 압력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회사에 출근만 하면 무기력해진다”라는 직장인이 무려 73.4%에 이른다. 이는 2007년 같은 조사 때 44.6%였던 것과 비교해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노조가 없거나 힘이 미약한 곳의 노동자들은 더욱더 무력감이 클 수밖에 없다. 최근 긴축 경영 차원에서 임금동결·야근 교통비 폐지 등을 단행한 삼성전자의 한 중간 간부는 “가동률이 턱없이 떨어져 이해는 하지만 모든 게 갑작스럽게 결정돼 힘이 빠진다. 더 큰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것 아니겠느냐.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것도 경기가 좋을 때 이야기지, 지금은 무조건 붙어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라고 토로한다.

힘없는 (예비) 노동자들만 봉이냐?

하물며 20대는 어떠하랴. 한국노총과 노사정위원회한테까지 지탄을 받은 전경련 주도의 ‘대졸 초임 삭감’ 폭탄을 맞은 그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명 중 4명은 이 방안을 통한 일자리 늘리기에 찬성표를 던진다(구인·구직 포털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

<88만원 세대> 공저자인 박권일씨는 “노조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예비 노동자인 20대에게 위기의 고통을 전가하고 있다. 이대로 진행될 경우, 20대의 생애 전체소득은 심각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양질의 일자리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든 탓에 임금삭감을 하지 않더라도 20대는 ‘역사상 가장 가난한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망한다.

   
ⓒ시사IN 한향란
민주노총 지도부는 3월11일 기자회견을 열어 ‘노조 파괴 공작’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위).
노조가 앞장서 화합을 외치는 곳의 분위기도 그리 훈훈하지만은 않다. 3월4일 이영희 노동부 장관 등 외빈을 포함해 5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노사공동선언 실천 전 사원 결의대회’를 가진 현대중공업의 경우 정규직은 물론이고, 하청 노동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이들은 “이미 지난해 10월 건설장비사업부 사내 하청 노동자 250여 명이 중장비 판매가 부진해 일자리를 잃은 상태고, 성과 분배도 정규직과 비교해 턱없이 낮았다. 사태가 이러한데, 정규직의 임금이 동결될 때 예상되는 하청 노동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일감이 줄어들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가야 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라고 걱정한다.

노사화합 사업장도 내부 갈등 잇달아

노동부가 “민주노총 사업장으로는 처음이다”라며 ‘양보교섭 우수 사례’로 적극 홍보한 영진약품은 위원장 직권 조인과 정부 개입 논란에 휩싸여 있다. 상급단체인 화학섬유노조 측은 2월27일 성명을 발표해 “당연히 조합원 전체의 의견을 수렴했어야 함에도, 일부 조합원만 모인 상태에서 짧은 시간에 사실상 통보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정부와 뉴라이트 쪽 인사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는 정황도 있다”라며 현재 징계 절차를 밟는 중이라고 밝혔다.

급기야 민주노총은 3월11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명박 정권과 자본, 보수 언론은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기 위한 공작을 즉각 중단하라”고 분노를 폭발했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노사화합 선언 ‘압박’과 ‘민주노총 죽이기’에 대한 정면 반발이었다.

민주노총 측은 그 대표 사례로 최근 민주노총 탈퇴 관련 조합원 찬반투표가 부결된 인천지하철노조를 들었다. 임성규 비대위 위원장은 “조합원들의 의견이 민주적으로 수렴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마치 민주노총 탈퇴가 기정사실인 양 보도한 것은 반노동 세력들이 배후에서 민주노총 파괴 공작을 얼마나 집요하게 진행하고 있는지를 입증하는 것이다”라고 개탄한다.

인천지하철노조를 앞세운 민주노총 죽이기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매체는 바로 조선일보였다. 상급단체인 공공운수연맹 한 관계자는 “인천지하철노조는 조선일보가 보도한 것처럼 강경 노조도 아니고 ‘조합원들을 동원해’ 연맹 사업에 제대로 참여한 적도 없는 노조다. 내부 갈등을 부추기기 위해 편파·왜곡을 일삼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꼬집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조선일보의 ‘지나친 적극성’이 투표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자충수’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연맹 관계자는 “언론이 하도 많이 주목을 하니까 조합원들도 긴장을 하고 표를 던진 것 같다. 파업이나 투쟁도 부담스럽지만 너무 어용 쪽으로 가는 것도 도움이 안 된다고 본 것 아니겠느냐”라고 투표 결과를 분석했다.

물론 그럼에도 인천지하철노조에 대한 조선일보의 ‘애정’은 여전하다. “찬성 63%의 의미는 컸다. ‘아쉬운 부결’이었다”라고 했다. 문득 궁금해진다. 조선일보의 저 섬뜩한 증오는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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