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선언 뒤 주위에서 가장 많이 물어보는 말 중 하나가 “요즘 외롭지 않아?”이다. 술 마시는 자리에 자주 빠지다 보니 나온 말이다. 

정말이다. 난 술을 끊으면 인간관계도 끝장나리라 여겼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내 인간관계의 8할은 술자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술 끊기란 곧 ‘인간관계 중단’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저녁 술자리가 사라지면서 기존 관계망은 느슨해졌다. 자주 술자리를 가졌던 사람들은 내가 술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놀라워하다가 ‘조만간 차라도 한잔 마시자’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잠깐이나마 서운함이 밀려왔다.

술 없는 삶은 적적했다. 질펀한 저녁 술자리의 흥겨움이 밤마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떠올랐다. 그래서 점심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본래 나는 점심 약속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편이었다. ‘낮술’이라도 마시지 않는 한, 점심 식사 자리는 늘 뜨뜻미지근했다. 뭔가 할 말을 다 하지 못한 것 같은, 만나도 만난 것 같지 않은 개운치 않은 뒷맛 때문이랄까.   

매일 자전거 출퇴근을 실천하고 있다.
처음에는 물론 낯설었다. 그런데 뜻밖에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 저녁 때처럼 ‘폭주’하지는 않았지만, 조근조근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이 나쁘지 않았다. 가장 좋은 건 그동안 소원했던 이들과 다시 만나게 됐다는 점이다. 모두 한때 무척 친밀했던, 그러나 술을 입에 대지 못하는-종교 문제든, 건강 문제든-사람들이다. 내가 술자리를 통한 인간관계에 매달리면서 자연스레 그들과 멀어졌다. 미안하게도 술을 끊고 나서야 그들이 떠올랐다.

‘금주족’이 살아가는 법

재미있는 건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나름 ‘삶의 여흥’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첨단 IT업계에서 일하는 한 친구는 ‘전통’ 기공 수련을, 과거 운동을 죽어라 싫어했던 친구는 ‘마라톤 마니아’가 되었다. 뒤늦게 전자기타를 배우는 이도 있고, 온라인 게임에 푹 빠진 이도 있다.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자 새삼 우리 사회의 ‘문화 다양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도 우리처럼’ 매일 밤 뭔가에 열중하며 ‘after work’를 즐기고 있었다.  

나도 달라졌다. 어김없이 숙취에 시달리며 이불 속에서 뒹굴던 토요일 오전 풍경이 사라졌다. 시내 미술관에서 ‘동화작가전’을 관람하거나, 남한산성으로 나들이를 갔다. 한 시민단체의 후원 모임에도 참여해 수발을 들었다. 재래시장에 들러 장을 보고 간단한 요리도 해봤다. 그러고 나서도 저녁이면 얇은 책 한 권 읽을 시간이 남았다. 누구 말처럼 술을 끊으니 주말이 길었다. 

‘자출(자전거 출퇴근)’도 제대로 실천하는 중이다. 자출을 시작한 지 어느덧 5년이 넘었건만 늘 들쑥날쑥이었다. 그놈의 술 때문이었다. 자전거 ‘출근’까지야 어떻게 되는데, 저녁 퇴근은 불가능했다. ‘음주 운전’을 할 수도 없고…. 심할 때는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며 회사에 보관한 자전거를 토요일에야 찾아간 적도 있다. 사실상 ‘주 1회 자출’이었던 셈이다.

꾸준히 자전거를 타면서 몸무게도 2kg 넘게 빠졌다. 아마도 ‘진짜배기’ 자출이 가능해진 것이야말로 지금껏 술 끊기를 통해 얻은 가장 눈에 띄는 효과이리라. 무엇보다 좋은 건 하루하루 자출 날짜가 늘어나면서 ‘뭔가 하고 있다’라는 성취감을 맛본다는 점이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물 한 컵을 변기에 버리는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면 세상이 바뀔 것이다’라는, 영화 〈희생〉의 명대사까지 떠오른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적어도 내 삶에 작지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중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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