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순 외 지음, 삼인 펴냄
1988년 서울올림픽 즈음 이런 소문 아닌 소문이 나돌았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우리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어를 사용하는 줄 알고 있다는 것. 그러니 이번 올림픽이야말로 우리나라를 알리기 위한 더없이 좋은 기회라는 것이 소문의 결론이었다. 올림픽을 잘 치러내야 한다는 일종의 계도성 소문이라 하겠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만큼 미국인들이 다른 나라에 관해 무지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부끄러운 답, 그것도 학생들이 배우는 세계사 교과서에 실린 답으로 그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기초부터 살펴보자. 몽골의 전통 이동식 주거용 천막이 우리 세계사 교과서에는 ‘빠오’ 또는 ‘파오’로 소개돼 있다. 이 말은 중국어 포(包)의 중국 발음이다. 몽골인들이 이걸 알면 뭐라고 할까? 몽골말대로 ‘게르’로 고쳐달라고 항의하지 않을까?

이슬람에서 믿는 신이 ‘알라 신’이라는 우리 교과서의 설명은 애교로 봐주기엔 심하다. 알라는 하느님을 뜻하는 말이지 별도의 다른 신을 의미하지 않는다. 철저한 유일신 신앙인 이슬람의 본질을 왜곡하는 셈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신’을 섬긴다고 말하면 기분이 어떨까? 종교에 대한 오해를 낳을 수 있는 사례는 또 있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동남아시아와 스리랑카의 불교를 소승(小乘)불교라고 배웠지만, ‘작은 수레’를 뜻하는 소승은 좀더 나중에 일어난 대승불교 쪽에서 소승불교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 일방적으로 붙인 명칭이다. 소승불교가 아니라 상좌(上座)불교로 불러야 올바르다.

영어에서 흑인을 일컫는 모욕적 표현인 니거(nigger)가 금기라는 건 잘 알려져 있다. 니거는 니그로에서 나온 표현이고 니그로는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를 경멸하는 표현이다. 흑인종을 ‘니그로 인종’이라 설명하는 우리 교과서의 생각 없음이 혀를 차게 만든다. ‘니그로 인종’을 굳이 번역하면 ‘깜둥이 인종’이라는 뜻일 터이니, 다른 나라 교과서에서 황인종을 ‘노랑이 인종’이라 일컬어도 할 말 없게 생겼다.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을 ‘인디오’가 아닌 ‘인디헤나’로 표현해야 한다는 건 필자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손들고 반성하자.

세계사 교과서에 서구 중심주의 세계관 가득

더욱 큰 문제는 우리 세계사 교과서에 드러나 있는 서구 중심주의적 세계관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제국주의 영국이 전쟁을 일으키면 ‘원정’이고 ‘확장’이며 ‘진출’이다. 그러나 투르크 족이나 이슬람 세력이 전쟁을 일으키면 ‘침략’이고 ‘침입’이며 ‘약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 했던가. 그런데 내가 아니라 서양이 한 것인데도 로맨스로 미화하는 꼴이다.

서양 중심주의 세계관은 물론이거니와, 아시아 역사에서는 중국 중심주의 세계관을 볼 수 있다. 고대부터 유목 제국을 이루기도 하면서 역사의 중요한 동인(動因)으로 활약한 여러 유목민들의 역사 대부분이 중국사의 일부인 것처럼 등장하는 것이다. 별다른 문화를 이룩하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며 약탈이나 일삼는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사람들. 우리 교과서는 농경민을 문명인으로, 유목민을 야만인으로 구별하는 관념을 조장한다. 이런 관념을 중국 중심적, 한족(漢族) 중심적 관념이라고 본다면, 우리가 그것을 답습해야 할 아무런 까닭이 없다.

이런 뼈아픈 지적을 하는 저자들은 아니나 다를까. 중앙유라시아, 동남아시아, 인도, 서아시아-이슬람,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의 역사, 언어,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다. 우리 부동산에는 버블 세븐이 있고 우리 교과서에는 ‘소외되고 곡해된 세븐’이 있는 셈이다. 세계화 시대의 교육이라는 게 영어 잘하는 인재를 기르는 게 다가 아닐 것이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계의 다양한 지역과 문화에 대한 지식을 고르게 쌓은 인재, 다문화적(多文化的) 가치를 지닌 인재가 진정한 세계화 시대의 인재다. 영어마을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 저자들의 말대로 교과서 집필과 검정에 적합한 전문가가 참여하는 게 더 시급해 보인다.

기자명 표정훈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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