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엽

거대한 풍광이 만들어졌다. 안동댐이 말라버렸다. 그곳은 불모의 사막처럼 변했다. 멍하니 그 황당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멀리 신기루처럼 어른거리다 폴짝폴짝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토끼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이 거대한 풍경이 만든 착시였다. 그것은 작지 않았다. 맹렬히 달리더니 말라버린 댐의 바닥을 가로질러 내 앞 100미터쯤에 멈췄다. 그러고는 빤히 쳐다본다. 고라니였다. 물을 찾아 목숨을 걸고 인간 앞에 선 것이다. 나 역시 멍하니 고라니를 봤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버거웠다. 그 사이 고라니는 물도 마시지 못하고 줄행랑을 쳤다.
 

ⓒ이상엽

경북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앞 안동댐. 1973년 낙동강 물을 가두기 위해 정부는 댐을 건설했다. 그리고 1976년부터 물을 가두기 시작했다. 살던 마을이 물에 잠기자 수몰리 주민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 만수위 너머에 새로 마을을 만들고 그곳에 정착했다. 그로부터 33년이 흘렀다. 주민들은 이제 물 빠진 호수의 바닥에서 고향을 본다. 도로가 드러났고 가로수가 열 지어 있다(위). 콘크리트 농수로도 보이고 집터도 드러난다. 멀리 낙동강이 흐른다. 물속에 잠겨 있던 강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인 이 모습은 경북 지역의 만성적인 가뭄 때문이다. 이곳은 6개월 우기와 6개월 건기로 나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물에 대한 철학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운하를 파서 없는 물을 댈 것인가? 아니면 이제라도 땅에 물을 가둘 울창한 숲을 가꿀 것인가? 우문이지만 현답은 없다. 고라니는 그 답을 알까?

기자명 안동·사진 / 글 이상엽 (사진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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