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버텨보기로 했다. 지인과 함께 중국 음식점에 들렀다. 깐풍기며 류산슬 따위가 식탁에 오르내렸고, 지인은 여봐란 듯이 ‘소폭(소주+맥주)’을 만들어 마셨다. 각오는 했지만 ‘급위기’가 찾아왔다. 옆 사람이 술 마시는 광경까지야 어떻게든 참겠는데, 탄산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노오란 맥주잔이 반경 50cm 안에 놓이자 침이 꼴깍 넘어갔다. 게다가 저 풍성한 술안주이라니…. ‘한잔 마셔, 눈감아줄게’라고 지인이 권했으면 홀라당 넘어갈 뻔했다. 결국 안주만 꾸역꾸역 숨이 넘어갈 지경으로 먹어댔다. 극도의 포만감이 밀려오자 음주 욕구가 사라졌다. 금주로 인한 상실감을 ‘폭식’으로 달래고 말았다.
그런데 변했다. 파스타 맛에 단단히 빠졌다. ‘봉골레’ ‘감베로니’ ‘그랑끼오’ 같은 낯선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빠에야’ ‘삔쵸’ 같은 스페인 요리에도 차츰 눈길이 간다. 모든 음식에 저마다 깊이와 매력이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된장이나 김치가 그렇듯 같은 토마토소스라 해도 집집마다, 요리법마다 천차만별이었다. 면의 종류, 하다못해 오이 피클마저 그랬다. ‘가장 중요한 건, 얼마나 다양한 음식을 접해봤느냐다’라는 미식계의 격언이 비로소 이해가 갔다. 역설적으로 술 ‘끊기’가 나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 셈이다. 이번 주말에는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음식점에 갈 생각이다.
잠의 양과 질이 달라지다
수면 습관에도 변화가 생겼다. 원래 술을 마시지 않은 날에는 잠이 잘 오지 않는 편이었다. 당연히 금주 초기 일주일 정도는 밤마다 뒤척이는 일이 잦았다. 다음 날 하루 종일 피곤한 건 물론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의 양과 질이 한결 나아졌다. 전에는 하루 평균 6시간 수면을 취하고 중간에 꼭 한두 번씩 깼다. 요즘에는 하루 8시간씩 한 번도 깨지 않고 깊은 잠을 잔다. 아내가 신기해할 정도다.
문제는 남는 시간의 활용이다. 아직은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뭘 해야 할지 어리둥절해할 때가 많다. 멍하니 회사에 남아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게 전부다. 근 10년 만에 획득한 ‘알코올로부터의 해방’을 어떻게 누려야 할지 목하 궁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