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 전문기자한·미 FTA는 미국 초국적 기업의 이해에는 부합하겠지만, 한국의 대다수 기업·노동자·서민의 이해와는 정확히 반대일 것이다.
한국 정부가 9월7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표 계산을 하면서 의회에 제출 시기를 살피고 있는 미국 정부와 비교하면 참으로 과단성 있는 면모이다.

두 나라 모두 한·미 FTA 비준안이 올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올해 말과 내년 대통령 선거라는 빅매치를 앞둔 두 나라 정치인들로서는 한·미 FTA 비준을 최우선 순위에 놓지 않을뿐더러 기실 골치까지 아픈 탓이다.

하여 당장 발등의 불을 꺼야 하는 상황은 모면했고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언론의 책임이 크지만, 지난 4월 협상이 타결되면서 일반 국민은 한·미 FTA가 끝났다고 생각했고 깊은 무관심에 빠져 있었다. 반대하든 찬성하든 협상 타결을 상황 종료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한·미 FTA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협정문을 가로로도 보고 세로로도 보고, 제대로도 보고 뒤집어도 보고 가혹하리만큼 헤집어봐야 한다.

왜? 한·미 FTA는 한국민에게 무시무시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는 물론 이들의 말을 주로 듣는 필자 같은 경제부 기자들은 개방과 자유무역을 적극 지지할뿐더러 신봉하기까지 한다. 우루과이라운드와 DDA(도하개발어젠다) 같은 다자 간 협상이 진행될 때 농업이 거덜난다며 열을 올리던 사회부 기자들에 맞서 경제 기자들은 무역으로 먹고 사는 한국 처지에서는 실보다 득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곤 했다. 필자 역시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FTA ”

하지만 FTA라는 양자 간 무역협정은 다자 간 협상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자 틀에서는 어느 한 나라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이 포함되면 타결이 안 되지만, 양자 틀은 다르다. 양쪽의 국력과 시스템 혹은 의사결정 방식에 현저한 차이가 생기면, 이른바 ‘비대칭성’이 크면 일방적으로 당하는 협상이 되기 십상이다. 한·미 FTA가 꼭 그랬다. 그러니 굴욕적이니 불평등한 조약이니 하는 비난이 나오는 것이다.

ⓒ연합뉴스*지난 8월 한·미 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과의 FTA는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FTA’라고 한다. 이 말은 한국의 한·미 FTA 반대론자들 주장이 아니다. 미국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세계은행(IBRD)이 2005년 연례보고서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거칠기는 하지만 FTA 유형은 한·칠레 같은 ‘남남형’과 유럽이 주도하는 EU형,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미국형 FTA로 나눌 수 있다. 더 크게는 ‘미국형’과 ‘미국형이 아닌 것’으로 나눈다. 미국형이 아닌 FTA는 관세를 어떤 제품에 언제까지 없애고 예외 품목을 정하는 것이 기본이다. 여기에 투자자 보호와 서비스 등 특별 상품에 대한 조항이 따라붙는 정도다.

하지만 미국형은 다르다. 미국은 자신이 가진 특별한 힘을 이용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몇 가지 장치를 사용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표준형 요구다. 여기서 표준형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 미국형이다. 실제 협상 과정은 이 표준형에서 약간 수정을 가할 뿐이다.

실제로 협정문을 살펴보면 이대로 비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국 정부는 섬유에서 조금 이득을 얻기 위해 스위스 국민들이 바로 이 때문에 국민투표로 협상을 중단시킨 유전자변형생물체(LMO) 수입을 허용했다. 협상을 하기 전부터 이른바 선결 요건으로 받아들인, 광우병 위험이 사라지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가 버젓이 식탁에 오르고 있다. 선진국 미국의 ‘후진적인’ 의료 시스템도 이식하려 하고 있다. 무엇으로도 바꾸어선 안 되는 것이 국민 건강이지만, 그에 따른 대가도 찾아볼 수 없으니 참으로 당혹스럽다.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 분야는 우리가 얻은 것이 별로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독소 조항도 많다. 개방 원칙에 숨어 있는 네거티브 리스트(유보하지 않은 모든 미래 서비스는 자동 개방), 래칫(자율적 개방을 포함해 일단 개방하면 역진 불가), 미래의 최혜국 대우(다른 나라에 추가 개방하면 미국에 자동 적용), 정부의 입증책임(necessity test, 필요 이상 규제하지 않음을 한국 정부가 입증할 책임) 같은 조항은 현재에 그치지 않고 미래에도 끝없이 국민 생활을 위협할 것이다.

지난해 5월에 나온 미국 의회조사국 리포트를 보면, 미국의 목적은 관세 장벽 철폐가 아니라 비관세 장벽 철폐에 있다. 한국의 법과 제도 관행을 미국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 초국적 기업의 이해에는 딱 부합하겠지만, 한국의 대다수 기업·노동자·서민의 이해와는 정확히 반대일 것이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4인 가족 기준 연소득 6천만원 이하 국민에게 한국 땅은 지옥이 될 것이며, 차라리 이민 가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도 있다.

한·미 FTA 논의를 다시 해야 한다. 일단 멈추어야 한다. 미국·캐나다 협정문이라는 기존 틀에 미세 조정만 가했던 미국·멕시코 협상도 5년이나 걸렸다. 대통령은 “중국과 일본이 먼저 미국과 FTA를 맺으면 큰일 아니냐”라고 걱정하지만, 이들 나라의 경제·외교안보 측면을 살피면 곧 기우임이 판명날 수밖에 없다.

기자명 장영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coo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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