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끊은 둘째 날 저녁, 아내와 함께 여유롭게 극장을 찾았다. ‘술 약속 없는 월요일이라니, 이 얼마 만인가’ 하며 감회에 젖어 있는데 한 선배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나, 쇠고기 등심 먹으러 간다, 하하하.’ 내가 술 끊기에 도전하는 걸 아는 선배의 응원(?) 메시지였다. ‘아, 잔인한 인간아~’ 비명이 절로 터져나왔다. 하필 그날 보기로 한 영화가 〈워낭소리〉였다.

술 끊기 준비는 탄탄했다. 무슨 바른생활 계획표 따위를 짰다는 말이 아니다. 그 전 주, 원 없이 술을 퍼마셨다. 월요일에 취재원, 화요일에 음식 평론가, 수요일에 회사 동료, 마감 전날인 목요일만 하루 쉬고, 금요일에 다시 회사 노조 집행부, 그리고 대망의 토요일에는 회사 MT에서 죽도록 마셨다. 특히 마지막 술자리인 회사 MT 자리에서는 ‘군대 가는 20대’ 심정으로 돌아가 해 뜰 때까지 마시고 또 마셨다. 

ⓒ시사IN 한향란
20년 음주 인생에 쉼표를 찍다

그러고 보니 한 달 동안 술을 끊은 경험은 1995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느라 신병훈련소에서 4주간 ‘강제로’ 끊어본 것이 유일했다. 이번에 한 달 술 끊기에 성공하면 최고 기록과 동률을 이루는 셈이다. 돌이켜보면 1989년 여름, 고교생 신분으로 선배들과 어울려 ‘투다리’라는 선술집에서 생맥주를 처음 맛본 이래 나의 ‘음주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유난히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 탓인지, 미성년자 출입 단속이 심하던 시절에도 친구들은 종종 나를 앞세워 술집에 드나들었다. 주량도 제법 셌다. 누구처럼 소주병을 방에 가득 채워놓고 마시는 경지까지는 오르지 못했지만, 웬만큼 마셔서는 별로 취한 티도 나지 않았다. 공자가 말한 ‘유주무량 불급난’(唯酒無量 不及亂: 술을 끝없이 마시되 취하지는 않는다)은 내 음주 신조였다.

그렇다고 완전한 ‘불급난’을 실현한 건 아니다. 술자리 안줏거리로 삼을 만한 해프닝도 꽤 있었다. 가령 어느 해 성탄절 전날, 낮술을 마시고 힘에 부쳐(취한 게 아니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쓰러져 자다 일어나 보니 어느 교회 찬양 밴드가 나를 빙 둘러싸고 찬송가를 불러주던 이야기, 한강 시민공원에서 야유회 나온 조직 폭력배와 시비가 붙어 결국 주량 대결로 제압한 이야기 등이 그렇다. 물론 다 철없던 20대 시절 이야기다.  

2000년에 사회생활 첫발을 내디디면서 술 마시는 횟수는 더욱 늘었다. 박봉일망정 호주머니가 ‘노동의 대가’로 채워지면서 술자리는 흥청망청이었다. 사회생활을 만끽하는 데 술처럼 좋은 ‘무기’는 없었다. 더욱이 기자 생활의 최대 매력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마음껏 만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취재원과의 만남이 설레어 한잔, 막상 만나고 나니 너무 떨려서 한잔, 기사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며 또 한잔. 보고 싶은 인물을 만나는 것도 좋은데 술자리까지 함께할 수 있다니, ‘기자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괜찮은 직업이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한번은 록밴드 ‘크라잉넛’과 통음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밴드 인원은 모두 다섯 명. 그런데 이 친구들이 너무 혈기방장한 탓에 인터뷰가 내내 산으로 갔다. 결국 한 명씩 따로 불러내 대작하고 나니 완전히 ‘떡실신’ 상태가 됐다. 그 덕분에 이야깃거리는 풍성했고, 재미난 인터뷰 기사를 쓸 수 있었다. 일과 재미를 동시에 만끽하던 ‘술과 장미의 나날’이었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렇게 술을 마신 지 어느덧 20년. 느닷없이 금주를 결심한 건 오로지 개인적 동기였다. 탁 까놓고 말하자면 최근 내 ‘알코올의존증’이 점점 깊어가기 때문이다. 대개 기자들이 그렇듯 일의 힘겨움을 술로 푸는 일이 잦았다. 매주 금요일 주간지 마감 후엔 어김없이 술추렴을 했다. 마감이 힘겨울수록 술맛은 다디달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 ‘마감의 원동력’은 오직 몇 시간 후 펼쳐질 질펀한 술자리였다. 술 약속이 없는 금요일이나 월요일이면 더러 ‘사회적 무능력자’가 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럴수록 악착같이 술 약속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1월 신용카드 결제 내역을 확인해보니 술집에서 사용한 것만 15건이었다. 이틀에 한 번꼴로 술자리를 가진 셈이다. 1차로 끝나는 일이 ‘결코’ 없는 데다 남이 산 것까지 포함하면 술자리 횟수는 최소 ‘월 15회+알파’일 것이 뻔했다. 1차에서 적어도 소주 1~2병, 2차에서 생맥주 1000㎖ 이상을 마시는 질서정연한(?) 음주 패턴임을 감안하면 내 경우 한 달에 적게 잡아도 소주 15병, 맥주 30병을 마셔대는 셈이다. 우리나라 성인의 평균 음주량이 한 달에 소주 7.7병, 맥주 9.9병(대한주류공업협회 통계)임을 감안하면 많기는 많다. 

가장 익숙한 것과의 결별

그러나 과도한 주량이나 신용카드 사용 내역서의 현란함 따위가 사실 술 끊기의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술 없이 희로애락을 느끼는 게 불가능했다. 등산·여행 등 취미 생활도 술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내가 왜 산에 다니는 줄 알아? 다 술 먹기 위해서야”라는 의대 동문회장의 말이 내가 가장 공감하는 대사였을 정도다. 이러다 보니 술 마시는 횟수에 비례해 술에 집착하는 정도도 점점 커졌다. 술자리를 거절하는 취재원에게 서운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내비친 적도 있고(그는 감히 내게 밥만 먹자고 했다), 이제는 음주 생활을 청산하고 건전한 사회인이 된 친구에게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느냐”라는 핀잔도 들어야 했다. 겉으로야 “소심한 놈, 잘 먹고 잘 살아라”며 쏘아붙였지만 나 자신이 ‘술의 노예’로 비친다는 생각에 스스로 측은하기도 했다.  

물론 건강에 대한 염려도 없지 않다. 몇 해 전에 비해 한결 심한 숙취나 우상복부 통증 따위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술 끊기를 시작하며 한의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한의사는 맥을 짚더니 “간에 열이 쌓였다”라며 내과에서 혈액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했다. 임신 중인 아내에 대한 미안함도 컸다. 아내는 웬만한 남자도 혀를 내두르는 술꾼이었다. 한데 임신 후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못하자 박탈감이 큰 모양이다. 고양이 쥐 생각하듯 “나 한 달 동안 술 끊기로 했어, 잘했지?”하며 호기롭게 말을 건넸더니 돌아온 대답이 이랬다. “그냥 혼자 안 마시는 게 무슨 술 끊기야. 진정한 술 끊기란 상대방이 내 앞에서 술을 맛있게 먹는 꼴을 보면서도 꾹 참는 거야. 나처럼 말이야, 알았어?”

이 글을 쓰는 2월26일 오후, 술 끊은 지 5일째에 접어든다. 아직 뚜렷한 금단증세는 없다.  아내의 말처럼 술자리 정면 돌파는 시도하지 못하고, 그저 술자리 자체를 피할 뿐이다. 과연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무사히 한 달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밀려온다. ‘고작 한 달’ 술 끊는 걸 두고 웬 유난을 그리 떠느냐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로서는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것’과 헤어져야 하는 무모한 도전이 시작됐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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