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실(전 법무부 장관)범여권의 패배주의적 태도와 분열이 문제다. ‘역사적으로’ 패배하고 나서 무슨 살아남을 궁리를 할 것이며, 또 누군들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지금은 정치적 계산을 모두 버릴 때다.
최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출마 움직임이 가시화하면서 대선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으나, 이번 대선이 참 재미 없고 맥 빠진다는 것이 중론이다. 왜냐하면 이번 대선은 일찍부터 이명박 후보냐 아니냐를 중심으로 한나라당 후보들 간의 겨루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을 뿐, 이른바 범여권은 세력 균형이 파괴된 지지도를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이 국민을 대신해 나라를 이끌 정치 세력을 선택하는 전 국민의 중대한 정치 행위이며, 그 시대 국민의 정치적 희망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이와 같이 정치 세력 간의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지 않고 어느 한쪽으로 심하게 치우쳐버린 상황은 선거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더욱이 대선이 재미 없게 느껴지는 까닭은 지금 주류를 이루는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지지의 대세가 국민의 정치적 희망을 정확히 반영하는 정합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패 문제와 민주적 리더십의 자질 문제에서 매우 불안한 위치에 있던 이명박 후보를 위협하는 이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라면 이는 정말로 앞으로 나아가는 미래 지향의 선거가 아니라, 과거 회귀의 위태로운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현 정권 심판’으로 변질된 대선

이와 같은 상황이 초래된 근본 이유는 이번 대선이 미래의 희망을 두고 경쟁하는 세력 간 다툼이 아니라, 현 정권을 심판하는 선거의 성격이 매우 짙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민의 심판은 오래전부터 선거에 반영되어왔다. 2005년 4월30일 당시 지금의 한나라당 못지않은 인기를 유지했던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역전되면서 재·보선 선거에서 전패한 후부터이고 그 당시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23%였으니 그 이후 상황에 큰 변화가 없는 것이다.

ⓒ시사IN 안희태‘창사랑’ 회원들이 이회창씨의 출마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선거일이 50일도 남지 않은 이 시기에 왜 상황이 이렇게 되었느냐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범여권으로서는 다만 남은 선거 기간에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서 어떻게 선거에 임해야 하느냐가 문제될 뿐이다. 서로 차별성을 주장하거나, 국민에게 어필하는 정책으로 승부하겠다는 일반적이고 수사적인 선거 대응만으로는 상황을 돌이키기 어렵고, 이 상황에 대한 정치 세력으로서 역사적 자세가 아니라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또 대선은 어차피 질 것 같으니 다음 총선을 준비하자는 패배주의적 태도와 분열도 잘못되었다. ‘역사적으로’ 패배하고 나서 무슨 살아남을 궁리를 할 것이며, 또 누군들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지금은 정치적 계산을 모두 버릴 때다.

국민의 희망은 하루하루 일상의 안위와 행복이다. 일자리의 불안함을 덜고, 아이들 맘 편하게 기르고, 따뜻한 집과 예측 가능한 노후를 바란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진정 사람다운 삶의 가치를 담보할 세력이 여전히 범여권의 정치 세력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마음을 돌리도록 과거를 있는 그대로 껴안으면서 실존적 결단을 통한 몰입과 헌신의 성찰적 자세만이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되살릴 것이다. 정치적 언사도 버리고 묵묵히 모든 뭇매를 감수하며 끝까지 질주해야 한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등장과 같은 과거 회귀가 아니라,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며 다시 봄바람을 맞는 내일의 감동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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