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를 끊은 지 한 달. 여전히 보이지 않는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 인간관계 재구축도 그중 하나다. 돌이켜보면, 내 휴대전화에 입력되었던 전화번호(번호) 500여 개는 관계의 ‘회로도’나 마찬가지였다. 업무상 그 회로도는 무척 복잡했다. 그러나 그중에는 반년, 아니 일 년에 한 번도 연결하지 않은 선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숫자에 취해 더러 내 ‘친밀도’가 썩 괜찮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데 휴대전화를 없애고 나니 500이라는 숫자가 별 의미가 없었다. 지난 한 달간 잃어버린 번호 중 필요했던 번호는 고작 30여 개. 아마 서너 달이 지나도 그 숫자는 크게 불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470여 개는 무엇이었을까. 대부분 업무상 필요하거나, 길흉사 소식을 주고받을 때 필요한 번호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쩌면 평생 한 번도 연결하지 않았을 번호도 꽤 있었으리라(내 번호도 그 누군가에게는 그럴 것이다).

이제 겨우, 내가 얼마나 복잡하게 연을 맺어왔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내게 필요한 사람, 필요한 전화번호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가늠한다. 휴대전화를 끊기 며칠 전, 내 통화량을 기록한 적이 있었다. 나흘 동안 조사한 결과 하루 평균 송신 통화 10여 통, 송신 문자 20여 통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회사와 집의 유선 전화로 연결하는 통화량은 하루 겨우 5~6통이다(물론 문자는 단 한 통도 주고받지 않는다).

기자로서 치명적인 고백일지 모르지만, 그런데도 불편한 점은 거의 없다. 취재 관련 정보를 이메일로 전달받고, 꼭 전할 말이 있으면 유선전화로 돌리고 있는 덕이다. 다른 사람이 휴대전화를 끊어도 다르지 않으리라 믿는다.

ⓒ뉴시스수많은 휴대전화는 인간관계를 확장시킬까, 축소시킬까.


휴대전화, 소통에 도움 안 돼

혹자는 “그래도 휴대전화가 인간관계를 확대해주고, 소통을 원활하게 도와주지 않느냐?”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냉정히 따져보면 “글쎄?” 다. 몇 해 전, 김찬호 교수(한양대·문화인류학)는 휴대전화와 관련해 재미있는 ‘약식 조사’를 했다.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최근 일주일간의 통화 기록을 확인하게 한 것이다. 그 결과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대다수 학생이 전화번호 저장 목록에 없는 사람과 통화한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휴대전화가 인간관계 확대와 별로 관계가 없음을 보여준다. 설사 확대해준다 하더라도 그 친밀감은 물안개처럼 옅을 뿐이다.
강준만 교수(전북대·신문방송학)는 ‘휴대전화 노예공화국’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휴대전화 덕분에 우리는 소통의 풍요를 만끽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은 우문임이 틀림없다.  휴대전화는 소통을 위한 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이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판타지를 공급하는 나의 주인이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휴대전화 없이도 타인과의 소통을 원활히 하는 사람이 꽤 있다. 서중석 교수(성균관대·사학)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이제껏 단 한 번도 휴대전화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불편을 느낀 적이 없다고 서 교수는 말했다. “휴대전화가 없어도 필요하면 두세 단계를 거쳐서라도 다 연락이 되더라.”

사실, 요즘같이 촘촘히 얽히고설킨 세상에서 나 홀로 독불장군처럼 휴대전화를 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인 휴대전화의 가공할 위력 앞에서 홀로 저항하기도 쉽지 않다. 또 업무상 꼭 필요할 수도 있다. 때문에 독자들에게 ‘나처럼 해봐요’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휴일이나 근무 외 시간에 휴대전화를 끊어보는 것이다. 분명 뭔가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