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11월5일 열린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 기자회견장.

삼성그룹과 관련해서 우리 언론계에는 해묵은 ‘미풍양속’이 하나 있다. 삼성 관련 특종은 서로 양보하는 것이다. 삼성의 치부는 보아도 보지 않은 듯이, 들어도 듣지 않은 듯이 하는 것이 기자들 몸에 배어 있다.
그 이유는 ‘삼성의 역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삼성과 관련해 부정적인 기사를 쓰면 그 언론사는 삼성 광고가 줄어들어 손해를 보는 반면, 삼성 기사를 쓰지 않은 쪽은 삼성이 입을 막기 위해 광고를 제공해서 ‘어부지리’를 얻는다.  

지난주 〈시사IN〉은 이런 언론계의 미풍양속 덕분에 주간지라는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에 대한 특종 기사를 내보낼 수 있었다. ‘나는 삼성과 공범이었다’라는 커버스토리는 다른 언론사도 충분히 추적할 시간이 있었지만 기사 쓰기를 주저해서 건진 특종이었다. 

특종 기사가 실린 〈시사IN〉이 배포된 10월29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김 변호사를 대신해 기자회견을 갖고 관련 내용을 폭로했다. 다음 날인 10월30일자 신문은 어느 언론사가 삼성 로비에 내성이 강한지, ‘삼성 민감 지수’를 확인할 수 있는 가늠자였다.

한겨레는 1면 기사를 내고 총 5면을 털어서 기사를 싣는 등 대대적으로 보도해 진보지로서 자존심을 지켰다. 〈오마이뉴스〉도 삼성 비자금과 관련한 시리즈 기사를 내보내며 집중 조명했다. 그러나 다른 언론의 ‘삼성 민감 지수’는 대체로 낮았다. 역시나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삼성 비자금 폭로 관련 기사는 애처로울 만큼 작은 기사로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기사를 실었다’는 알리바이만 남기는 식이었다.
‘삼성의 역설’을 잘 알고 있는 민주노동당은 기사와 함께 광고도 살폈다. 그리고 논평을 냈다. 박용진 대변인은 11월1일 “오늘 주요 일간지 5개에 삼성 세탁기와 삼성 냉장고 전면광고가 실렸다. 의미심장하게 보았다. 언론이 침묵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라고 논평을 냈다.

네티즌도 알 건 다 알았다. ‘스트로베리’라는 아이디의 언론인 지망생은 미디어다음 토론방에 ‘더러운 언론들’이라는 글을 남겼다. ‘비겁한 언론들’도 아니고 ‘소심한 언론들’도 아닌 ‘더러운 언론들’이라는 제목의 이 글에 언론을 비난하는 댓글이 200개가 넘게 붙었다. 

보다 못한 기자협회와 언론노조는 성명을 내고 기자 사회의 자성을 촉구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라는 처절한 문구로 시작하는 기자협회 성명서는 “회원 동지들에게 진심으로 호소한다. 이번 사건은 크게 보도해야 한다”라고 끝맺는다. 언론노조는 ‘언론은 삼성 가족을 자처하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정의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삼성의 가족으로 남을 것인가?”라고 물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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