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꾼도 할아버지·할머니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위는 다음 아고라에서 진행 중인 서명 운동.

“할아버지·할머니를 영화 속의 할아버지·할머니로 놔두실 수는 없나요?” 2월3일 〈워낭소리〉 제작사 ‘느림보’는 인터넷 공식 블로그에 올린 ‘언론과 관객들에게 드리는 긴급 호소문’에서 이같이 말했다. 영화에 출연한 노부부를 향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면서 그들의 평온한 일상에 균열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개봉 후 주인공 노부부에게 세배를 드리러 간 이충렬 감독에게 최원균 할아버지는 대뜸 화부터 냈다. 〈워낭소리〉를 보고 집을 찾아온 언론사 기자와 관광객들이 모두 이 감독이 보낸 사람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집에 심지어 “영화로 돈 많이 벌었을 텐데 나도 좀 달라”는 전화까지 걸려왔다고 이 감독은 말했다.

감독과 제작사의 호소에 누리꾼도 움직였다. 다음 아고라에서는 ‘〈워낭소리〉 할아버지를 괴롭히지 마세요’라는 서명 운동이 시작되었다. 2월6일까지 2800여 명이 참여했다. 누리꾼 ‘투덜이스머프’는 “다른 이의 소중한 삶이 호기심이나 관광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서명한 이유를 밝혔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걱정하는 건 예전의 나쁜 기억 때문이다. 2000년 KBS 휴먼 다큐 〈인간극장〉에 출연했던 ‘산골 소녀 영자’는 1년 뒤 아버지를 잃었다. 방송 광고에까지 출연한 영자를 보고 집에 현금이 많을 거라 생각한 강도가 저지른 짓이었다. 2002년 개봉한 영화 〈집으로〉의 김을분 할머니는 언론의 취재 공세와 관광객의 방문 때문에 결국 수십 년 살아온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2006년 개봉한 영화 〈맨발의 기봉이〉의 실제 주인공 엄기봉씨 역시 후원금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갈등으로 노모와 생이별해야 했다.

이 감독은 “최원균 할아버지가 싫어하는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가 할머니 잔소리, 다른 하나는 우리 제작진이다”라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할아버지는 일을 방해하는 걸 가장 싫어한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나온 영상을 보여드려도 잠깐 보다가 다시 일하러 가는 분이다. 그렇게 일만 아는 분께 카메라를 들이대거나, 돈 빌려달라는 전화를 거는 분은 이제 없었으면 좋겠다.”

기자명 최은정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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