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드(미국 드라마의 약칭)’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남녀 불문하고 열광하던 〈프리즌 브레이크〉의 ‘석호필(마이클 스코필드)’이 암만 ‘Trust me’를 외쳐도 께느른한 포즈로 귀를 파며 ‘왜?’라고 묻곤 했다. 하지만 이런 나도 70편을 내리 사흘 동안 쉬지 않고 봤던 ‘미드’가 있다. 〈닥터 하우스〉이다. ‘미드’에 흔한, 의학물에 추리를 버무렸지만 긴장감이 〈프리즌 브레이크〉나 〈24〉만 할 리 없는 이 드라마에 매료되었던 이유의 8할은, 영국배우 휴 로리(사진)가 연기한 진단의학 전문의 그레고리 하우스라는 인물 때문이다.
극중 미국 최고의 진단의로 언급되지만, 이 하우스라는 인물이 훌륭한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자기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희한한 증상의 환자만 맡으려고 하며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는 대명제 아래 환자와 말을 섞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자신의 상사와 동료, 부하를 막론하고 아픈 곳을 찌르며, 비꼬고, 시험한다. 자신의 허벅지 근육이 못 쓰게 되어 마약류 진통제 바이코딘을 상복하고 늘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만 그에게 동정이나 연민은 가당치 않다. 휠체어를 타는 의사에게 병원 출입문과 가까운 자신의 장애인 구역 주차장을 빼앗기자, 그것을 되찾고자 평소 자신은 지팡이를 짚는 것으로 충분했으면서도 날름 휠체어를 타며 시위를 벌일 정도니까.
하우스의 흡인력은, 지독한 에고이스트들이 풍기는 일반적인 매력을 넘어선다. 사흘 동안 대충 비빈 밥이나 고구마 그릇을 끼고 앉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 까닭은, 얼치기 휴머니즘으로 저 완고하고 시니컬한 캐릭터를 무너뜨리지 않은 채 늘 ‘하우스답게’ 행동하고 반응하게 만드는 놀라운 일관성에 있다. 도저히 허물어지지 않고는 못 배길 듯한 ‘찡한’ 사건들 앞에서도 하우스는 정말이지 하우스답다. 철지난 말로, ‘쿨함’을 가장하는 것이 아니다. 하우스는 그의 온도를 유지한다. 또한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는 하우스의 명제는 심연의 고독을 숨기는 그 자신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된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느라 틈틈이 치킨과 족발을 배달시켰던 나에게도.
유선주 (월간 드라마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