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고재열소장·중견·원로 언론학자 203명이 미디어 공공성 포럼(위)을 만들어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을 학문적 관점에서 분석 비판하고 있다. 다섯 차례 ‘쟁점 토론’을 거쳐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을 사람으로서 참을 수 없었다. 평생 연구만 하면서 살아온 백면서생이지만 힘을 보태기 위해서 나왔다.” 지난해 9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디어 공공성 포럼’ 출범식에서 한 원로 언론학자가 한 말이다. 이날 언론학자 203명이 ‘한국 사회는 언론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미디어 공공성의 훼손으로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며 미디어공공성포럼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진보 성향의 소장학자뿐만 아니라 중도 성향의 중견 언론학자와 원로 학자들까지 총망라된 미디어 공공성 포럼은 그동안 다섯 차례의 쟁점 토론을 열어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움직임을 학문적으로 분석·비판했다. 2월4일에는 ‘방송 규제 완화의 경제적 효과 분석에 대한 논의’ 토론회를 열고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방송 규제 완화 논의에 대해 질타했다.

한나라당이 2월 임시국회에서 미디어 관련법 개정안을 상정하기로 하면서 미디어 공공성 포럼 토론회를 비롯해 정치권과 언론학계에서 관련 토론회가 잇따라 열렸다. 한나라당에서는 미디어산업발전특별위원회(이하 미디어특위)가 ‘공영방송의 바람직한 방향 모색을 위한 토론회(2월5일)’를 열었고 자유선진당에서도 ‘미디어 다양성 확보와 신문·방송 겸영의 문제(2월4일)’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방송학회도 2월2일과 3일 이틀 동안 ‘2009 방송법 개정안 대토론회’를 열었다.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지만 논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신문법을 개정해 신문·방송 겸영을 허가하는 문제고, 다른 하나는 방송법을 개정해 신문사와 대기업의 방송사 지분 소유를 허용하는 문제다. 한나라당은 이런 규제를 철폐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디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언론학자들은 이런 규제 완화가 ‘여론 독과점’을 심화시킨다며 반대한다. 특히 언론학자들은 이런 논점에 대한 논의 이전에 미디어관련법 개정 논의 과정, 논의에 대한 접근법, 논의의 전제에 대해서 먼저 비판했다. 국가 방송정책의 근간을 바꾸면서 논의가 완전 엉터리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토론회 현장에서 만난 언론학자들은 학자답지 않게 매우 격앙되어 있었다. 언론학자들은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 법안은 내용뿐만 아니라 미디어에 대한 철학, 법률안 개정을 추진하는 방식, 법률안 개정의 근거 자료 등 모든 부문에서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한 언론학자는 공개석상에서 “우리 언론은 지금 ‘가자 지구’다. 정권으로부터 함포와 로켓포 공격을 받고 있다”라고 표현하며 한나라당이 언론 장악을 위해 법률안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사IN 안희태언론노조는 조·중·동 등 보수 언론과 재벌의 지상파 진출을 반대한다.
먼저 논의 과정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한나라당은 신문법·방송법 등 미디어 관련 7대 법안 개정안을 지난해 12월3일 전격 제출했다. 법안 관련 공청회도 없었기 때문에 언론학자 중에서 법안이 제출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에 대해 최영묵 교수(성공회대 신문방송학)는 “위성방송을 도입하면서 4년 동안 400회 넘는 토론회가 열렸다. IPTV가 도입되면서 3년 동안 300회 넘는 토론회가 열렸다. 국가의 방송정책 근간을 바꾸면서 공청회 한번 제대로 열지 않고 법안을 제출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비판했다.  

2월5일, 한나라당 미디어특위가 주최한 공영방송법 관련 토론회에는 많은 언론학자와 언론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새로 제정할 공영방송법에 KBS 2TV와 MBC 민영화에 대한 핵심 내용이 담기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안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전혀 없었다. 정병국·홍준표·고흥길·나경원 등 미디어 관련법 개정 추진 의원의 발언만 40분 넘게 지속되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한 언론학자는 “한나라당이 악법 신상품을 드디어 선보이는가 해서 왔더니 자기 선전만 한다. 이래 놓고 나중에 충분히 논의했다고 말할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제대로 된 토론회 한 번 없었다”

다음은 논의에 대한 접근법의 문제였다. 지난해 미디어 관련 법안 상정이 무산되자 한나라당은 미디어 산업 규제를 풀면 2만6000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며 재추진했다. 이에 대해 MBC 이남표 전문연구위원은 “신문·방송 교차소유 허용문제나 대기업의 방송사 소유 문제를 논의하면서 어떤 나라도 경제적 접근을 먼저 하지 않는다.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은 바로 ‘여론 다양성’이다. 논의 자체가 천박해졌다”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은 현재의 ‘다공영 1민영’ 체제를 ‘1공영 다민영’ 체제로 바꿔 경쟁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언론연대 사무총장 양문석 박사(언론학)는 “공기업은 무조건 문제라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 공공 도서관이 사설 도서관보다 많은 것이 문제인가? 방송이 공적 서비스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다”라고 반박했다.

한나라당은 신문사보다 방송사의 영향력이 더 크다며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는 것이 방송의 여론 독과점을 완화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렇다. 대부분의 미디어 수용자 조사에서 방송사의 영향력이 신문사의 영향력보다 크게 나온다. 문제는 신뢰도다. 방송의 영향력은 신뢰도에서 나왔다.

지난해 〈신문과방송〉이 전국 성인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매체 신뢰도 조사를 벌인 결과 KBS(31.1%)와 MBC(21.6%)의 신뢰도가 가장 높게 나왔다. 조선일보(4.5%) 동아일보(3.0%) 중앙일보(2.4%)보다 훨씬 높았다. 언론학자들은 신문사가 방송사를 소유하게 되면 방송의 신뢰도가 신문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일본의 사례를 들며 법 개정 이후 전개될 후폭풍을 경고했다. 그는 “일본은 신문사가 방송사를 소유하는 구조다. 소유할 뿐만 아니라 지배한다. TV 아사히의 사장은 50년 동안 아사히신문 출신이 했다. 그래도 일본 사회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주요 신문사들의 논조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논조가 비슷한 세 신문사가 방송을 소유하게 된다. 여론 독과점 현상은 불을 보듯 뻔하다”라고 말했다.

논의의 전제가 되는 자료의 신뢰성 문제도 제기되었다. 한나라당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작성한 ‘이슈 브리핑’ 자료에 근거해서 방송 규제 완화로 방송 시장 규모가 15.6% (약 1조5600억원) 증가하는 등 2조9414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를 가져오고 방송 부분에 4470명, 취업 유발로 2만1465명 등 총 2만6000여 개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근거가 없었다. 보고서를 작성한 담당 연구원은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M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경제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MBC 앞에 있는 식당이랑, MBC 앞에 왔다 갔다 하는 버스 기사랑, MBC를 자주 들락날락하는 택시 기사랑 그런 고용까지 다 포함한 것이다. 방송 일자리라고 한 적은 없다”라고 답변했다.

정인숙 교수(경원대 신문방송학)는 경제 효과 부풀리기가 대기업의 뉴미디어 진출을 허용하기 위해 정부가 상습적으로 써먹는 수법이라고 소개했다. 정 교수는 “위성방송이 시작될 때, 2005년까지 30조원 생산 유발 효과를 낳고 10만여 명 고용을 창출할 것이라고 했다. 위성방송의 2008년 매출액은 3874억원, 종사자 수는 513명이었다. 지상파 DMB와 위성 DMB가 2012년까지 5조2000억원 생산 유발 효과를 낳고 7만4000명 고용을 창출할 것이라고 했다. 위성 DMB는 현재 누적 적자 2703억원으로 거의 자본 잠식 상황이고 종사자 수는 고작 226명이다. 지상파 DMB도 누적 적자가 1014억원이다”라고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가며 비판했다.

“외국 사례 인용도 다 틀려”

한나라당은 미디어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며 그 근거로 외국 사례를 주로 인용했다. 한나라당은 “선진국은 모두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는데 우리만 허용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언론학자들은 두 가지 다 틀린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선진국 중에서 신문방송 겸영과 소유지분 규제를 하지 않는 나라는 없고 한국도 사실상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언론학자들은 한나라당 주장과 달리 오바마 행정부의 ‘재규제 논의’ 등 공영방송에 대한 전세계적 논의 흐름은 ‘규제’라고 강조했다. 한 소장 언론학자는 “사르코지 정부도 최근 교차소유 문제나 소유 규제 문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탈규제’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아 다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전반적인 흐름이다”라고 밝혔다.

계열사인 중앙방송을 통해 Q채널·J골프·History채널을 소유하고 있는 중앙일보를 비롯해 조선·한국·국민 등이 케이블TV 채널을 소유하고 있다(4대 경제 일간지도 케이블TV 채널을 갖고 있다). 또한 대기업은 케이블TV, 위성방송, 위성 DMB, 지상파 DMB, IPTV 등 모든 뉴미디어 사업에 진출해왔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대기업의 미디어사업에 충분한 기회를 주었다. 다만 성공하지 못했을 뿐이다. 대기업은 영화산업과 음반산업에도 진출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시장만 피폐하게 만들었다. 

언론학자들은 대기업의 뉴미디어 사업 실패 역사가 한나라당의 ‘규제 완화를 통한 우리 미디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주장이 허구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조원을 투자해 단 하나도 성공 사례를 만들지 못하고 단 하나의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해 국내에서도 실패한 대기업들이 무슨 글로벌 경쟁력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주장 중 언론학자들이 가장 비판하는 내용은 신문·방송 겸영과 대기업의 방송사업 진출을 통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 중견 언론학자는 “기업이 합병하는데 어떻게 일자리가 늘어나나. 그리고 대기업이 방송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방송사를 인수하는데 구조조정을 하지 고용을 늘리겠나. 한나라당은 국민을 바보로 안다”라고 비난했다. 텍사스 주립대학 저널리즘스쿨의 최진봉 교수도 최근 미국 사례를 들며 신문·방송 겸영과 대기업의 방송 진출이 오히려 일자리를 줄어들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언론학자들은 선진 각국에서 나타나는 방송의 문제가 우리에게 집약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탈리아처럼 언론이 총리에게 지배당하고, 일본처럼 여당이 공영방송 예산을 좌지우지하고, 미국처럼 공영방송이 영향력이 없고, 타이완처럼 지상파 방송사들이 붕괴되어 대중문화가 한류·일류 등에 잠식당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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