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떴다〉 한겨레학교 아이들 지음, 이매진 펴냄

이탈한 소녀가 문득 바라본 하늘은 칠흑 같았다. “누가 쏟았는지/먹물 뿌려 놓은 밤하늘/나랑 쏙 빼닮은 쌍둥이인 것 같아/칠흑 밤하늘에도 감격한다.” 북한 이탈 청소년들의 시와 산문을 엮은 〈달이 떴다〉(이매진)에 수록된 최영미양의 ‘응어리’라는 시의 일부다. 지금 소녀의 마음은 ‘먹물’이고 ‘칠흑’이다. 지금 이 소녀는 북한이라는 ‘체제’ 때문이 아니라 ‘고향’을 상실한 것 때문에 아프다.

서정시란 마음의 생태학이다. 상처 입은 내면은 그래서 마음의 반생태적 찢김의 고백록이다. ‘바람’이라는 시에서 또 다른 탈북 소녀 박은실양이 “산들산들 가을바람”을 내면이 찢기는 감각의 통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내 주위를 맴돌며 귀가 아프도록/쏘아댄다 멍해진다/귀청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하다/바람이 너무나도 아프다.”

“우린 얼마나 더 견뎌야 행복해질까요?”

아픈 상처의 안쪽에는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의 더 안쪽에는 그들이 떠나온 원초적 고향인 마을과 나무들과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다. 간혹 이 소녀들이 바라다본 ‘달’이 서정적으로 빛나는 것은 잃어버린 추억 때문이다. 한복금양의 ‘내 기억 속의 사진 한 장’을 보라. “밝게 떠 있는 달을 보니/어머니가 어서 오라 반기시는 모습 같아/어머니를 그리며 부른 노래란다”, 또는 “달을 볼 때마다 현상되는/내 기억 속의 사진 한 장…”이라는 식의 비가(悲歌)에 소녀들은 벌써 익숙하다.

기향숙양은 ‘보고 싶은 나의 친구’에서 “사랑하는 나의 친구야 너는 지금 무엇을 하니”라고 말문을 연 후 이렇게 추억을 곱씹는다. “송아지 시절 푸른 하늘에 하얀 연을 띄우며/손목 잡고 뛰놀던 그 시절/헤어져선 살 수 없었던 친구/이제는 다시 볼 수 없게 된 나의 친구.” 어린 나이에 상실감을 껴안아야 한다는 것은 비극이다. 그래도 이 소녀들이 “달이 떴다/아주 크고 밝은 달이/그립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빵처럼 부푼 삶의 포용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는 일이 사선(死線)을 넘는 것이 되어버린 북한 이탈 청소년들의 내면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별반 없다. 마음의 생태학이라면 불감증에 가깝다. 〈달이 떴다〉를 읽다 보면 분단이 초래한 상처의 치유는 슬픔의 감정교육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 우리 북한 사람들의 운명이 이렇게 불행한 것일까요? 왜 이렇게 험한 길을 걸어야 할까요? 우리는 얼마나 더 견뎌내야 행복이 올까요?” 홍란양은 ‘엄마의 편지’에서 이렇게 묻는다. 슬픔으로 뻐근하다.

기자명 이명원 (문학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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