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를 끊기로 마음먹은 날, 거짓말처럼 휴대전화가 사라졌다. 늦은 밤 지하철에서 흘렸는지, 버스 좌석에 두고 내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혹시 용도 폐기될 자신의 운명을 눈치채고, 더 곰살궂은 주인을 찾아 내뺀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그러나 아무렴 어떤가. 휴대전화를 끊기로 작심한 마당에, 이렇게 사라지나 저렇게 없어지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휴대전화를 끊겠다고 작심한 이유는 간단하다. 휴대전화에 얽매인 듯한 내 행동거지가 싫어서였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 지하철을 탄 뒤 잡지를 뒤적이는데 지이이잉 하는 진동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내 손은 어느 틈엔가 기계처럼 아래위 주머니를 더듬고 있었다. 이처럼 남의 휴대전화 소리에 버르적거리는 증세를 ‘유령진동증후군’이라 하던가. 문제는 그 ‘유령’이 사무실·취재 현장 가릴 것 없이 무시로 출몰한다는 데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휴대전화는 날랜 비서처럼 많은 일을 도와주지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여간 성가신 놈이 아니다. 회의할 때, 운전할 때, 인터뷰할 때 놈이 ‘전화 받으세요’라고 요란을 떨면, 정말이지 갈팡질팡 정신이 쏙 달아난다. 또 깜빡 잊고 택시나 식당 같은 곳에 두고 오면, 심신이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때때로 원치 않는 술자리로 ‘유인’하기도 하는데, 그 탓에 몇 번이나 곤죽이 되었는지 모른다. 사정이 이러하니, 휴대전화가 늘 살갑고 반가울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시사IN 안희태족쇄 같은 휴대전화에서 벗어난 지 열이틀, 이제 겨우 공중전화와 친해지는 중이다.
휴대전화와 결별하자 불안이 먼저 찾아와

또 다른 이유는 전자파 위험 때문이다. 휴대전화 전자파에 대해서는 지금도 유전자변형식품(GMO)처럼 ‘유해하다, 무해하다’ 의견이 엇갈린다(대체로 아직까지는 무해하다는 의견이 더 많다). 그러나 나는 유해하다고 의심한다. 통화를 오래할 때마다 머리가 뻐근했던 경험이 더러 있어서다. 휴대전화 전자파와 관련된 언론 보도를 보면서, 그 의심은 더욱 농후해졌다. ‘휴대전화를 자주 사용하면 안암(眼癌)의 일종인 안구흑색종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남성이 하루 네 시간 이상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정자 수와 질이 떨어진다’ ‘운전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뇌 기능이 감소한다’ 같은 내용이 그것이다.

이 정도면 단절할 만하지 않은가. 그런데 막상 13년간 분신처럼 지내던 휴대전화와 결별하고 나니, 예상과 달리 안온함보다 불안이 먼저 찾아왔다. ‘누군가가 날 찾다가 통화가 안 되면 어떡하지?’ ‘취재하러 가다가 늦으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이 머릿속에서 뱅뱅 맴돈 것이다.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해 친구나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낼 수 없게 되자, 답답한 세계에 갇힌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흘이 지나자 고립감은 더욱 짙어졌다. 촘촘한 네트워크 그물에서 벗어난 기분은 솔직히 갑갑하고 울적했다.

허허로움과 함께 온갖 잡념이 들끓기도 했다. 만든 지 얼마 안 된 휴대전화로 고향 친구의 부음을 듣던 일, 휴대전화를 걸며 운전하다가 경찰에 적발된 일, 휴대전화를 맡기고 외상 택시를 탔던 일, 여자 후배의 묘한 뉘앙스의 문자 때문에 아내와 다투던 일…. 그러다 문득 휴대전화에 입력한 500여 개 전화번호가 떠올랐고, 그것마저 소실했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노래졌다. 그중에는 얼마 전 제주도에서 설 선물을 보내준 후배의 전화번호도 있고, 빚을 받아야 할 채무자의 전화번호도 있는데…. 선물을 받고도 아무 연락이 없는 나를 후배는 어떻게 생각할까. 또 수백만원의 빚은 어떻게 받을까.

결국, 상대방이 전화를 걸어오지 않으면 안부와 감사를 전할 수도 없고, 빚을 받아낼 방법도 없는 셈이다. 휴대전화에 기대지 않았더라면 이같은 고민이 불필요했을 텐데, 답답하고 한심했다. 전화번호부에 옮겨놓거나 머릿속에 기억해두었으면 좋으련만, 때늦은 자각이었다. 잃어버린 ‘인맥 지형’을 다시 형성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과 본의 아니게 관계를 단절해야 할지, 난감했다. 새삼 후배들처럼 휴대전화의 정보를 컴퓨터로 옮겨놓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불편한 점도 한둘이 아니었다. 한 번은 운동을 하러 나가는데, 아내가 현금카드와 함께 은행 계좌 세 개가 적힌 종이를 내민다. “나가는 길에 돈 좀 50만원씩 송금해줘.” 아무 생각 없이 600여m를 뛰어나와 간이 현금인출기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게 뭐야. 비밀번호가 보이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있으면 금세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공중전화 카드마저 없다 보니 허탈했다. 결국 오로지 송금을 하기 위해서 1200m를 왕복해야 했다(덕분에 그 이후부터는 유비무환, 시계·공중전화카드·동전·전화번호부를 꼭 챙겨서 다닌다).

ⓒ시사IN 안희태휴대전화 대역을 하는 시계·전화번호부·공중전화카드·동전.
엄지와 검지, 아직도 근질거려

약속 시간을 지키는 데에도 애를 먹어야 했다. 예전에는 약속 시간에 좀 늦어도 미안함이 덜했다. 가는 길에 휴대전화로 ‘늦는다’고 양해를 구하면 됐으니까. 그러나 빈손이 되고 나니 사정이 달랐다. 마침 휴대전화가 사라진 지 엿새가 지난 날 밤 7시에 종각에서 약속이 있었다. 어영부영하다가 약속 장소로 향한 시각이 6시25분. 40분 이상 걸리는 거리여서 지하철에서 몸이 달았다. 아무리 빨라도 10분쯤 늦을 것 같았다. 게다가 상대는 2, 3분만 늦어도 전화를 걸어 “어디세요?”라고 묻는 깐깐남.

다행히 공중전화 카드가 있었다. 환승역에서 상대에게 전화를 걸어 지각을 알리기로 했다. 그런데 그 넓은 역사 안에 공중전화기가  없었다! 시계를 보니 이미 7시7분. 4, 5분을 허비한 뒤 재빨리 갈아타는 역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전동차가 도착하기 전이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술래처럼 뒤져보니 아, 맨 뒤쪽에 공중전화기가 보였다. 그렇게 해서 약속 장소에 도착한 시각이 7시18분. 상대는 전화를 했는데도 뾰로통한 얼굴이었다. 그가 애원하듯 한마디 던졌다. “빨리, 전화 살려요! 불편해 죽겠어요!”

미안한 일이지만, 휴대전화가 없으니까 주변 사람들이 더 불편해한다. 〈시사IN〉 강좌에 참석한 친구는 내 참석 여부를 미리 확인하려고 문자를 세 번, 전화를 다섯 번이나 했는데도 연락이 안 되었다며 억울해했다. 언젠가 사무실에서 잠시 자리를 비웠더니, 후배의 원성이 자자했다. “어디 갔었어요? 한참 찾았는데…. 자리를 비울 때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돌아올지 메모해두고 갔으면 좋겠어요.” 우여곡절 끝에 통화가 된 큰누이는 “(통화가 안 되어) 무슨 큰일이라도 났는 줄 알았다”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대전화가 없어서 생기는 무료함과 허허로움을 조금씩 극복해가고 있지만, 문신처럼 남아 있는 휴대전화의 ‘잔재’는 여전히 꿈틀거린다. 예컨대, 아직도 지이이잉 하는 휴대전화 진동 소리가 들리면 손이 저절로 주머니를 더듬고, 혼자 무심히 있을 때에는 엄지와 검지가 근질거리는 것이다. 그 딱한 습관에서 벗어나려 손가락을 주무르거나 책장을 넘겨보지만, 아직 역부족이다. 과연, 앞으로도 휴대전화가 없어서 발생하는 ‘위기의 순간’을 잘 극복할 수 있을까. 솔직히 휴대전화를 끊은 지 열이틀이 지난 지금도 자신이 없다.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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