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에 앞서 열린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씨와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의 대담은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같았다. 김어준씨가 예의 유쾌하고 재기발랄한 입담으로 질문을 던지면 정혜신씨는 신중하면서도 차분한 목소리로 맺을 것은 맺고, 끊을 것은 끊었다. 때로 김씨가 공격적 질문으로 정씨를 자극하는 바람에 더러 아찔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지만, 청중에게는 그 풍경마저 흥미진진한 강좌의 연장선이었다.

ⓒ시사IN 한향란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김어준:제가 정혜신 선생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평상시 한 가지 불만이 있다. 늘 남들을 분석하기만 하고, 자연인 정혜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오늘 정 선생에게 질문을 하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해서, 제가 ‘잘 걸렸다’며 수락했다. 오늘 자연인 정혜신이 어떤 사람인지 치부를 드러내는 시간으로 활용하겠다.

정혜신
:그런 건 아니었잖아요(청중 웃음).

:제가 최근 상담을 하다 보니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연애에 관한 거다. 그중에서도 ‘지금 헤어질 타이밍이 맞나요’ 하는 질문이 굉장히 많다. 제 경우엔 돈 쓰기가 아까울 때 헤어진다(청중 웃음). 정혜신 선생께선 어떤 신호가 올 때 연애를 끝내야겠다고 느끼나.

:난 내 룸메이트가 아침에 자고 일어났는데 혹시 죽어 있으면 어쩌나 하는 초조감·두려움·안타까움을 늘 느끼며 산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때가 헤어질 타이밍인지 하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만약 연애하는 기간이라면, 내가 이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아주 적극적인 무엇이 없으면 그냥 헤어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아주 활성화된 연애 감정 이외에 여러 가지 요소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젊은 친구들 연애 문제를 ‘야메’로 상담해줄 때처럼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럼 이런 질문은 어떨까. 연애할 때 남자의 무엇을 보나. 구체적으로. 몸과 마음 둘 다. 정신의 어떤 부분인지, 몸의 어떤 부분인지.

:진짜 야메같이 구시네(청중 웃음).  난 섹시한 남자 좋아한다. 그런데 남자가 굉장히 체격이 좋고 근육이 울뚝불뚝하면 섹시한 느낌이 사라진다. 왜냐하면 저런 표피의 것을 키우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을까를 생각하면 그 사람이 어리석어 보인다. 

:‘지적인 근육맨’도 있지 않나.

ⓒ시사IN 한향란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위)는 이날 강좌에서 “자격증이 없는 나는 ‘야메’ 상담가이고,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가 ‘정통’이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정 선생이 이론을 설명하면 김 총수가 자기 체험을 소개하는 식으로 둘은 호흡을 척척 맞췄다.
:지적인 근육맨? 하루에 네댓 시간 운동해야 유지할 수 있는 근육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적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럴 확률은 굉장히 떨어질 것 같다.

:정신 면에서는 어떤 걸 보나.

정:화내는 남자가 섹시하다. 그건 화를 잘 내는 성격 파탄자를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다. 화라는 게 자기 경계를 침범했을 때 나오는 ‘리액션’이다. 결국 자기 경계가 명확하다는 거고, 자기 생각이 뚜렷하다는 거다. 그렇게 자기 원칙, 자기가 추구하는 바에 날이 선 사람이 무척 섹시하다. 그런 건 어느 정도 나이가 되어야 가능한 것 같다. 그래서 저는, 아주 솔직히 말하면 마흔 살 넘은 사람이 아니면 남자로 잘 보이지 않는다.

김어준씨는 작심한 듯 정혜신씨의 ‘내면’을 파헤치려 했으나, 정씨가 어디 보통 내공의 소유자던가. 때론 맞받아치고 때론 어르면서 김씨의 질문을 무리없이 소화했다. 끊임없이 폭소가 터지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던 두 전문가의 대담은 결혼과 자녀 교육 문제 등으로 확장해나갔다. 40분 넘게 진행된 대담이 끝난 뒤 정혜신씨의 강의가 이어졌다. 1시간 넘는 정혜신씨의 강의 내용을 요약해 옮긴다.


내가 지금껏 상담한 이들의 차트를 정리했더니 1만명 가깝더라. 그들이 자기 이야기를 다 털어놓은 뒤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게 뭐냐 하면 ‘나 같은 사람 또 있나요?’다(청중 웃음). 정신과에서 상담을 할 때, 그룹 상담의 가장 보편적인 치유 효과가 뭐냐 하면 ‘아하,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남의 것을 앎으로써 어떤 일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고 거기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때가 참 많다.

그런데 요즘 경제 전망이 어둡다는 뉴스가 자주 들리니까 마치 지금 시기에는 불안을 느끼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모두 똑같은 불안감을 느껴야 하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불안은 개인마다 다르다. 똑같은 상황에서 어떤 불안을 경험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소화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마다 차이가 난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 자기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강력한 욕구가 있다. 그래서 사람이 진짜 자기 존재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바가 뭔지 분명히 아는 것, 그것이 ‘자아 회복’이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에게 다가가는데, 아주 큰 걸림돌이 첫 번째가 돈, 두 번째가 지식이나 학벌이다. 지식이나 학벌은 돈보다 더 상위 가치이기 때문에 더 강력한 걸림돌이다. 돈을 잘 벌었다는 건 내가 그림을 잘 그리거나, 아니면 남을 잘 배려하는 좋은 성격을 지녔거나 하는 것처럼 뛰어난 재능 중 하나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다.

‘마술적 사고’에 빠진 사람들

얼마 전 결혼 만족도와 관련된 연구를 보니 남편들은 자신의 월급이 3.3배 오르면 ‘내 아내는 전보다 3.3배만큼 더 행복하고 나에 대한 존경심도 커질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자기에 대한 존경심이 늘어난 것 같지 않고 행복해 보이지도 않으면 짜증을 낼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는 것이다(청중 웃음). 이렇게 경제만 회복되면 우리가 지닌 이런 문제가 모두 해결되고 더 행복해진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경제적으로 무척 안정되고 사회적으로 많은 걸 이룬 사람이 느끼는 무기력함이나 우울함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결국 은연중에 굉장히 어리석은 도식이 우리 안에서 작동하게 되는데 이것을 정신분석학에서는 ‘마술적 사고’(magical thinking)라 한다. 원시인이 홍수 같은 자연 재앙을 이기기 위해 마을 처녀를 제물로 바치면서 ‘내년엔 이런 재앙이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믿는 것이 그 예다. 예측 불가능한 공포와 불안을 처리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사고 체계가 바로 ‘마술적 사고’다.

좀 전에 말한 돈이나 학벌 같은 것 역시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서 만든 마술적 사고 같은 것이다. 이것은 자기 존재에게 다가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를 하거나 학원을 다니는 게 어쩌면 내 불안을 회피할 목적이 아닌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우선 ‘다 멈추자’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다. 있는 그대로 내 불안을 한번 바라보자. 정말 뭐가 얼마나 불안한지, 일단 직면해야 한다. 그 과정 없이는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

템플 스테이를 운영하는 절 중 무문관(無門關) 체험을 하는 곳이 있다. 말 그대로 ‘문이 없는 집’이다. 사나흘 동안, 그곳에 들어가면 바깥에서 문을 걸어 잠근다. 소지품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한다. 바깥과는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 자기와 대면하는 체험을 하는 곳이다. 그 절 스님의 말에 따르면 첫날은 대부분 하루종일 잠만 잔다. 아마 세상에서 받은 여러 자극을 씻어내는 과정일 것이다.

자기 대면, 관념이 아닌 현실

그 다음 날부터 두려운 마음으로 자기를 느끼기 시작한다. 우리가 두려움이나 불안을 느끼는 건, 내 안의 불안을 직면하지 않으려고 자꾸 어떤 방법론을 만들어 회피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 본질에 다가가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은 더욱 불안한 거다. 

아우슈비츠 수용자들을 다룬 어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주일에 한 병씩 지급되는-마시기도 매우 부족한-생수의 반을 남겨서 그것으로 얼굴을 닦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생존율이 훨씬 높았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다. 그런 극단의 상황에서도 자기 존재를 의식하고 배려하는 이들의 생명력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강의를 진행하면서 관념적으로 들릴지 모른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나는 자기 존재를 인식하고 느끼면서 사는 게 그 어떤 행위보다 더 실용적이고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길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분이 불안할 때마다 어떤 마술적 사고를 통해 문제를 회피하려 한 적이 혹시 없었나, 그것 때문에 스스로 불안을 털어버릴 수 있는 그런 경험에 다가가지 못해서 계속 불안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한 번쯤 가져보는 시간이었다면 좋겠다.

기자명 정리·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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