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중국 모델이 한지사로 만든 웨딩드레스를 선보이고 있다
중국 상하이에 전주 ‘한지 박사’들이 모였다. 중국에 전주 한지의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알리고 중국 수출을 모색하기 위해 전주한지문화제를 현지에서 개최한 것이다.

상하이 한국문화원 초청으로 이루어진 이번 행사는 천년전주한지포럼 주최로 10월19일부터 21일까지 상하이에서 다채롭게 진행되었다. 그 가운데 관람객의 눈을 가장 잡아끈 것은 개막 행사로 진행된 한지 패션쇼이다. 

ⓒ시사IN 한향란한지로 만든 실은 와이셔츠뿐 아니라 지갑·넥타이·속옷·양말 등에도 다양하게 쓰인다.
관람객은 물론 한지 의상을 입고 쇼에 임하는 중국 모델들조차 처음 접하는 한지 옷을 보고 눈을 반짝거렸다. 런웨이를 오가는 모델의 발걸음이 종이처럼 가볍다. 닥나무 섬유로 만든 종이실과 실크로 짠 한지사(韓紙絲)는 2004년 개발되었다. 일본에 이어 두 번째지만, 실의 굵기가 일정해 염색이 고르기 때문에 일본 제품보다 질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지사는 다른 직물에 비해 가볍고 통기성이 뛰어나며 물세탁도 가능하다. 분해가 빠른 친환경 소재라는 장점도 있고 무엇보다 대량 생산을 통해 실용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많다. 다만 아직까지 종이가 원재료이기 때문에 구김이 잘 가고, 일반 섬유에 비해 쉽게 탈색되는 단점이 있어 이를 보강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일반 참가자들이 참여하는 체험 코너도 인기를 끌었다. 중국인들과 한국 유학생들이 직접 참여한 한지 접시 만들기와 천연염료를 사용한 넥타이 만들기 체험은 준비해간 재료가 이틀 만에 바닥이 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시사IN 한향란김병기 교수(왼쪽)의 글씨는 서예 인구가 많은 중국인들에게도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현지인들은 한지가 그토록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서예용 화선지 외에도 한지를 활용한 다양한 옷가지류와 공예품 등은 중국 젊은이들의 호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합죽선 장인 엄재수씨의 부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던 중국 학생들은 중국 부채와 한국 부채의 장·단점을 진지하게 묻기도 했다. 한국 서예가 김병기 선생(전북대 교수)의 서예 시연을 보고, 참관 중이던 중국 서예가도 시연을 자청해 즉석 경연이 벌어졌다.
 
ⓒ시사IN 한향란한지 공예가 김혜미자씨(오른쪽 사진 왼쪽) 가 상하이 정대미술관 심기빈 관장(오른쪽)에게 색실첩을 열어 보여주고 있다.
전주한지문화제를 중국 상하이에서 굳이 개최한 이유가 뭘까? 김정기 천년전주한지포럼 사무처장은 “지속적으로 쇠락하는 한지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화 인구가 5000만명이 넘는 중국 시장에 눈을 돌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주 한지 산업의 돌파구를 중국 수출에서 찾겠다는 얘기다. 현재 국내 한지 시장의 규모는 300억원 정도로 미미하다. 그나마도 중국·일본·태국 등에서 값싼 종이가 밀려들면서 국내 한지 시장이 잠식당하고 있다. 국내 한지 제조업체가 폐업을 하면서 일부 기술진이 중국으로 건너가 동종 산업에 종사하거나 몇몇 업체는 아예 중국에 현지 공장을 설립해 한지를 역수입하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한다.

ⓒ시사IN 한향란주로 화선지 용도로만 사용하는 중국인들에게 한지로 만든 각종 공예품은 호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전주 한지, 중국 고급 소비자 공략 나서

나서하지만 전주라면 중국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자신감을 품을 만하다. 전주는 전국 한지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지 원료인 닥나무의 주산지이다. 또한 수십 년 동안 한지를 만들어온 장인들과 한지를 재료로 작업하는 공예가, 그리고 서예가와 부채 장인, 의상 디자이너, 한지 연구원 등이 북적이며 두터운 인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원료 생산부터 디자인까지 담당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종합 기지로서의 잠재력을 갖춘 것이다. 

ⓒ시사IN 한향란부챗살 양면에 종이를 붙이는 중국 부채에 비해 한 면에만 한지를 대는 한국 부채는 낡은 한지를 떼어 교환하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 위는 부채 장인 엄재수 선생이 부채 만드는 과정을 시연하는 모습.
한지 산업 정책 전문가인 이승형 박사(전북발전연구원)는 “일방적인 수출보다는 중국 경현(涇縣)지방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선지(宣紙)와의 교역을 통해 틈새 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중국 경현 지방에서 생산되는 선지는 전주 한지에 견줄 만큼 품질이 뛰어나다. 하지만 한지의 발묵 효과(번짐 현상)가 독특해 다양한 취향을 가진 중국의 고급 소비자군에 충분히 소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주 한지 관계자들은, 한지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전통이자 과학이며 산업이자 문화라는 것이다. 열쇠는 전주의 광범위한 인적 인프라를 한데 융화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일이다. 서양인들의 감성까지 파고들 수 있는 고부가가치 상품의 개발이야말로 한지 산업의 돌파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위 기사의 경비는 천년전주한지포럼에서 제공했습니다.

기자명 상하이/글·사진 한향란 기자 다른기사 보기 arbu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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