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기자 월급으로 생협은 사치가 아닐까.’ 지난 호에 고민을 토로했더니 한 후배 기자가 책상에 무엇인가를 툭 던져놓고 간다. 일 년 전 기사다. 아, 깜박했다. 당시 이 친구가 대형 마트 내 ‘친환경 농산물 코너’와 생협 농산물 가격을 비교한 적이 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무농약 방울토마토·상추·쑥갓·청경채가 모두 대형 마트 것이 더 비쌌다. 당시 대표적 생협 중 한 곳인 한살림은 조사 결과 대형 마트에서 파는 농산물이 일반 농산물 가격보다 평균 1.8배 비싸다고 발표했다. 이에 비해 한살림에서 파는 친환경 농산물은 일반 농산물 가격의 1.35배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일까. 확인해보니 상추(150g) 1400원, 쑥갓(150g) 1000원, 청경채(150g) 1000원이다. 대형 마트 친환경 농산물 코너에 비해 결코 비싸지 않은 가격이다. 달걀도 생협 유정란(10알)이 3450원으로 대형 마트 유정란(4250원)에 비해 오히려 800원 싸다.

ⓒ시사IN 윤무영대형 마트를 다니지 않기 시작하면서 장을 한 번 볼때마다 쓰는 돈이 2만~3만원가량 줄었다.
물론 싸지 않은 품목도 눈에 띈다. 한국여성민우회 생협 홍보 담당자인 경화씨는 말했다. “양념과 장류를 바꿔야 할 즈음이면 시험에 들겁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를 곧 깨달았다. 된장 1kg에 9570원, 고추장 500g에 8700원(1kg이 아니고 500g이다!).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두세 배는 비싸다.

약간 겁먹은 내 기색을 눈치챘나 보다. 가격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생협 이용하기 어렵다고 경화씨는 말한다. 그보다 소비 방식을 완전히 바꿀 생각을 하란다. “냉장고를 왜 꽉꽉 채워야 하나요? 그때그때 꼭 필요한 먹을거리를 최소화해 사는 습관을 들이면 되죠.”

냉장고 끊기에도 도전해봐?

이렇게 해서 동선이 대충 정리됐다. 공산품은 동네 슈퍼, 식료품은 생협을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마트 끊기 4주째. 짧은 기간이었지만 씀씀이에 변화가 생겼을까? 가계부 쓰는 성실녀가 못 되는지라 대충 모아둔 영수증을 들춰본다. 대형 마트에 마지막 간 날 영수증을 보니 6만5200원을 썼다. 건오징어, 군만두, 비엔나소시지…. 가물가물한 ‘1+1 상품’의 기억들이다.

이번엔 동네 슈퍼에 간 첫날 영수증을 보았다. 달걀, 두유 등에 4만7980원을 썼다. 똑같이 일주일치 먹고살 것을 사는 데 대형 마트 갈 때보다는 1만7000원을 덜 쓴 셈이다. 그 다음 주 생협을 이용하면서부터는 동네 슈퍼에서 1만3480원을 썼다. 생수, 세제를 샀다. 생협에서는 달걀, 채소, 우리밀 빵 등을 샀는데 1만5600원이 들었다.

이 추세가 계속될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 하나. 냉동실이 비어도 먹고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더라는 것. 요즘 ‘독한’ 주부 중 신선한 먹을거리를 제때 사먹고, 적게 먹자는 뜻에서 냉장고 끊기를 실천하는 분도 있다던데 이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지 싶다.

마트 끊기를 실험해 얻은 것은 절약한 돈뿐만이 아니다. 한가한 주말 오후를 얻었는가 하면 믿을 만한 동네 소식통을 얻었다(동네 슈퍼 아저씨 얘기다). 무엇보다 소중하게 얻은 것은 독자들의 격려와 성원이었다. 마트 끊기를 연재한 뒤 수많은 분이 메일 또는 인터넷 댓글을 남겨주셨다. 대형 마트를 끊은 뒤 자기 집 가계부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1번’ ‘2번’ 상세하게 정리해준 분, 마트 끊기를 함께 실천하겠다고 약속해준 분, 매주 ‘힘내세요!’ 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주신 분. 이 모든 분께 감사한다.

“대형 마트를 진정 끊을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라던 분께도 감사드린다. 솔직히 이 독자분, 조금 무서웠다(^^;). 한 가지, 대형 마트 대신 전통시장을 이용해보라던 독자의 조언을 지키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전통시장이 집에서 너무 멀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번 설에는 맘먹고 전통시장을 찾아보련다.(끝)

※다음 호부터 ‘끊고 살아보기 2탄-휴대전화’ 편을 연재합니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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