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왼쪽)과 〈녹색평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이문재 시인(오른쪽).
걱정이 많았다. 갑작스레 불어닥친 강추위에 참석자가 적으면 어떡하나. 기우였다. 강연장은 100명 넘는 청중으로 가득 찼다. 강연이 끝나고 나서도 질문이 이어졌다. 강연을 그만 끝내달라는 ‘경비 아저씨’의 재촉이 없었다면, 질문과 답변으로 밤을 새울 듯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과 이문재 시인의 문답으로 시작한 이날 대담 강연은 〈녹색평론〉에 대한 얘기에서 출발했다. 

이문재
: 1991년 창간한 〈녹색평론〉이 지난해 100호를 냈고, 이번에 104호가 나왔다. 지난 100여 호를 돌아보면서 〈녹색평론〉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자평하는가?

김종철 : 이문재씨는 좀 특별한 사람이니까(웃음) 〈녹색평론〉에 대해 과찬을 해주는데, 실제로는 별거 아니다(청중 웃음). 외로운 사람들,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서 혼자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으니까 고민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이런 책을 보면서 ‘이 시대에 나와 비슷하게 외로운 사람들이 있구나’ 위로를 받지 않는가. 그리고 말도 안 되는 대우를 받으며 살아온 농민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잡지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은 옛날부터 해왔다. 도시 사람, 지식인 중에도 자기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농민들이 좋아한다. 또 젊은이에게 뜻있는 메시지를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문재
: 권정생 선생이 〈녹색평론〉의 ‘열성 당원’이었다고 안다. 원고료도 돌려보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권정생 선생 얘기를 들려달라.

김종철 : 내가 얼마나 엄살을 피웠으면 권 선생이 다른 잡지에 쓴 원고료까지 보내주셨을까 싶다. 번번이 그러셨다. 절대 그러지 마시라고 전화도 드렸는데, 한동안 원고료를 보내셨다. 〈녹색평론〉을 하는 17년 동안 사흘 정도의 휴가도 나에게 없었다. 힘이 들어서 그만둘까 싶은 유혹도 있었다. 하지만 권 선생 같은 분이 있어서, 없던 각오도 생길 도리밖에 없었다.

이문재 : 본격적으로 들어가보자. 요즘 ‘녹색 뉴딜’ ‘녹색 성장’이라는 말이 정치권의 한복판에서 나온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김종철 : 녹색이라는 말은 성장이라는 말과 결합할 수 없다. 성장하지 말자, 성장 경제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녹색평론〉은 17년간 계속 내왔는데, 거기다 ‘녹색 성장’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말도 아니다. 〈녹색평론〉을 더 열심히, 제대로 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긴다. 오늘 이야기의 핵심이 ‘녹색 성장이 아닌, 다른 우리 살 길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되겠다.

짧은 ‘예열기’를 거친 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청중은 그의 말에 집중했고, 간간이 섞인 유머에 즐겁게 웃었다.  그의 육성을 요약해 옮긴다.

김종철 : 〈녹색평론〉도 외환 위기 때 고비를 넘겼는데, 지금이 그때보다 심각한 것 같다. 이것을 우리가 우울하고 빨리 극복해야 할 사태라고 생각하지 말자. 이게 기회다.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 경제가, 자본주의 경제가 흥청망청 계속 갔다면 어떻게 할 뻔했는가? 지속 가능하지도 않지만 만일 자원과 에너지를 무진장 분별 없이 탕진하는 경제가 10년, 20년 계속 허용됐다면 어찌되었을까? 전멸이다. 우리는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강의 제목을 바꾸고 싶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이 기회에’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삶은 관조적인 삶’이라고 했다고 한다. 좋은 삶이란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삶이다. 함부로 무턱대고 사는 게 아니라 좋은 삶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사는 거다. 지금 경제 위기가 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정신없이 살고 있을 것이다. 

외환 위기 때 〈뉴스위크〉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일본이 장기 불황이었을 때다. 도쿄특파원인 미국 기자가 이렇게 썼다. 일본 샐러리맨은 불황 한가운데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풍요로운 인생을 누리고 있다고. 회사 인간으로 살았던 일본인이 해고당하거나 조업 시간 단축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꽃을 구경하고, 황혼이 지는 모습을 응시하고, 비가 오는 정원을 보며 고독에 잠기고…. 수십 년 만에 이런 경험을 처음 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사가 아니고 철학적 에세이더라. 우리가 무엇 때문에 회사에, 돈벌이에 매달려 인생을 낭비하느냐는 거다.

돌팔매 맞을까 싶긴 한데, 내 입에서는 춤추자는 소리가 나온다(청중 웃음). ‘경제성장은 멈추었다. 우리 모두 춤을 추자.’ 이번에 〈녹색평론〉 서문을 쓰면서 이 제목을 달까 말까 하다 자제했다(청중 웃음).

나는 누가 ‘당신은 생태학적 상상력, 농경적 상상력을 중시하는데 그 뿌리가 뭐냐’고 질문 하면 ‘외할머니’라고 대답한다. 농적 가치를 중요시하고, 농민을 중심에 놓고, 농민을 존중하는 사회로 재편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강연을 했더니 누군가가 그런 질문을 했다.

ⓒ시사IN 한향란갑작스레 불어닥친 강추위도 아랑곳없이 강연장을 가득 메운 100명 넘는 청중의 열기가 뜨거웠다.
외할머니는 평범한 분이었다. 중년에 남편을 잃고 자식 일곱을 키운 분이다. 할머니는 평균적인 농민였다. 얼마나 위대한가? 식민지 시대, 광복, 한국전쟁, 자유당 시절, 박정희 군사독재까지 겪었다. 얼마나 가난한 시절인가? 그런데도 자식을 훌륭하게 키웠다. 이런 강인한 정신과 힘이 어디에서 나오나.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나온다. 마을이라는 공동체가 할머니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다. 요즘 우리가 당황하고 죽는 소리를 내는 것은 공동체가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뒷받침이 없다면 아무리 물자가 풍부하고 수입이 많아도 항상 불안하다.

인생은 관계다. 생태학이란 것도 근본적으로 관계이다. 나 혼자 살 수 없다. 공생이다. 상호의존적이다. 서양의 자유주의는 원자화된 개인을 근본으로 생각하는 철학이고, 그 생각으로 우리가 근대를 살아왔다. 하지만 그래서는 항상 불안하고, 외롭고, 고독하다. 

요새 경제학자 중에서 레이건이 미국을 바꾸기 전에 케인스주의가 지배하던 몇 십 년 동안 미국이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Robert Putnam)이 쓴 〈볼링 얼론(Bowling Alone)〉이 있다. 그 책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부터 혼자서 볼링하는 사람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미국 사회의 원자화를 말한다. 케인스주의가 살아 있을 때였다. 복지가 사람 생활을 근본적으로 자유롭게,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관계다. 이런 인간관계를 사회자본이라고 부른다.

서울 인사동 어느 음식점에 갔더니 혼자 왔다고 밥을 팔지 않았다. 1인분은 안 된다고. 그래서 나왔는데, 겁이 나 아무 집에도 못 들어가겠더라. 그래서 광화문까지 걸어와 식당에 들어갔다. 네 사람이 앉는 자리에 이미 두 사람이 식사를 하는데 그 옆에 앉으라고 했다. 다른 자리가 비어 있는데도. 아마 죽을 때까지 이 일을 잊지 못할 것이다. 진짜 걱정해야 할 건 바로 이런 상황이다. 사회적 자본, 인생살이의 근본이 되는 자본이 망가졌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의 고도성장 논리가 이를 망가뜨렸다. 필연적이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인심이 좋아졌다? 이런 건 없다. 절대로 양립이 안 된다. 경제성장과 자본주의 논리가 인간과 인간, 개인과 개인을 무한경쟁 관계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물질이 풍부하면, 개인이 가진 것이 많으면 외할머니가 살던 마을과 같은 이웃 간 교류가 있을 수 없다. 서로 궁핍한 상태에서 살아가야 서로 돕는다. 우리뿐 아니라 아시아·아프리카의 토착적 공동체에서 상부상조 관계는 그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가난은 절대로 배격해야 할 가치가 아니다. 사람에게 제일 소중한 재산은 타자이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관계 속에 존재하고, 내 인생이 윤택하다는 것은 내가 맺는 관계가 윤택한 것이다.

〈녹색평론〉이 되풀이하는 메시지는 ‘협동, 협동조합’이다. 우리는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국가는 자본의 편일 뿐 절대로 민중의 편이 아니다. 그리고 국가는 자기 확장의 욕망을 가지고 있다. 국가의 논리는 항상 우익 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자율적 상부상조의 협동체를 스스로 만들어서, 될 수 있으면 기존 주류의 자본과 국가의 논리 바깥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대의 민주주의가 안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규모가 큰 국가에서는 불가능하다. 작은 도시국가, 공동체 공화국을 우리가 무수히 만들자. 이게 간디의 아이디어다. 70만 개 마을이 각자 공화국이 되자. 내가 보기에 간디는 근세기 최고의 정치 사상가다. 그것밖에 길이 없다. 현실론이냐 아니냐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 길을 가보지 않아 인간의 운명이 벼랑 끝에 몰렸다. 생태적으로 파국을 막아야 하고, 개인이 행복하고, 민주적 주체로 살려면, 이런 요구를 한꺼번에 충족하려면 이런 무수히 많은 협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거의 세 시간에 이르는 강좌가 끝나자 한 청중은 “오늘 강의를 듣고 뭔가 새로운 세상을 본 듯하다”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생태적 상상력’은 낯설었겠으나, 이날 강연에서 발견한 무엇이었으리라. 공동 강사 이문재 시인이 했던 다음과 같은 정리말처럼. “생태적 상상력은 자본주의적 가치와 삶을 인정하면서 삶을 조금 바꾸는 개념이 아니다. 한마디로 전면적이고 전폭적인 상상력이다. 자본주의 산업 문명이 지니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게 생태적 상상력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생태적 삶을 살겠다는 건 대단히 모순이다.”

기자명 정리·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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