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린다. 번호를 본다. 오늘도 그녀가 모닝콜을 해준다. 나에게 매일 전화하는 유일한 그녀. 그녀는 카드회사에 다닌다. 난, 오늘까지 납부해달라는 그녀의 상냥한 목소리를 끝으로, 힘들게 잠에서 깬다. 방의 탁한 공기가 무겁다. 햇살이 먼지처럼 방 안을 느리게 떠다닌다. 어제도 늦게까지 시나리오를 썼다. 아니, 쓴 것 같다. 머리가 멍하다. 한때는 아침형 인간이 되려고 노력 해보기도 했지만, 언제나 밤이 되면 잠이 오지 않는다. 하긴 백수 같은 감독 지망생이 이른 아침에 일어나도 딱히 할 일이 없긴 하다.
마침 집에는 먹을 것이 없다. 아직 씻지도 못한 몰골로, 내 몰골보다 더 정신없는 자취방을 빠져나와, 대충 빈속을 채우러 밖으로 나간다. 10년 넘게 자취 생활을 하다 보니 밥을 혼자 먹는 데 매우 익숙해졌고, 식사는 삶의 즐거움이라기보다 너무 자주 찾아오는 번거로움일 뿐이다.
하여튼 습관적으로 가는 김밥 식당에 도착한다. 오늘따라 사람이 꽉 차 있다. 하필 점심시간이다. 손님들은 즐겁고 경쾌하게 삼삼오오 앉아 식사를 한다.
들어가 그들 사이에 작은 자리 하나 비집고 만드는 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난 조금 전에 일어났고, 씻지도 못했다. 그들에 비하면 난 너무나 초라하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간다. 나도 먹고살아야겠기에…. 난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를 최대한 노출하지 않고 결국 김밥 한 줄 포장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김밥을 씹으며, 세상으로부터 튕겨 나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서울에서 자취하던 백수 시절, 일정한 직장이 없었던 나는 평일과 휴일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밤에 깨어 있고, 해가 뜨면 잠이 드니 날짜 개념도 별로 없었다. 때론 명절 연휴인 줄도 모르고 밖에 나갔다가 나중에야 식당 문이 한결같이 닫힌 이유를 깨달은 적도 있다. 명절 음식은커녕 변변한 식사조차 하지 못하는 명절이란 평일만 못할 뿐이었다.
그때는 하루하루 나를 추스르는 게 버거웠다. 이불은 절망의 무덤처럼 무거웠고, 끼니는 마치 성가신 빚쟁이처럼 자주 찾아왔다. 난 매일매일 지치고, 매일매일 다시 꿈꾸었다.
힘들었다. 하지만 특별히 나만 힘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주변의 영화인 중 백수 시절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마치 군대의 의무 복무 기간처럼 영화인에겐 빛나도록 절망적인 백수 시절이 저마다 있기 마련이다. 지난해 연말 시상식이 끝나고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어떤 배우가 했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아침에 라면을 먹고, 점심에는 카드 빚 독촉에 시달리고, 저녁엔 레드카펫을 밟는다….”
모든 화려함의 뒤에는 우울하고 힘든 스토리가 있다. 그리고 누구나 백수 시기가 있는 것 같다. 한데, 그 백수 시기에 무엇을 준비하느냐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막연한 기대감에 의지하기보다는 자기의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물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아는 게 우선이겠지만.
오늘의 20대 백수들을 응원한다. 박태환과 김연아를 응원하듯 그들을 응원하고 싶다. 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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