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기1948년생. (주)동아제약 이사, 풍년기업 전무를 거쳐 지난해 은퇴했다. 은퇴 이후 희망제작소에서 운영하는 ‘행복설계 아카데미’(3기)를 수료하고 비영리 기관(NPO) 활동을 준비 중이다.
“후배 은퇴자들이 이제부터 평상시 꿈꿔오던 진정한 자아실현의 삶을 찾아 그 길을 떠나기 바란다. 돈 몇 푼을 찾아 기웃거리며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빨리 나와요!” 아내가 외출을 준비하며 재촉한다. 퇴직 후 빈둥거리는 나를 보며 아내는 도서관에라도 나가보라고 권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중간 층에서 잘 아는 아주머니가 탔다. 순간 당황해하며 인사를 건네는 아내. 평일 오전 9시에 점퍼 차림으로 나가는 남편을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의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미안했던지 “쓸데없는 소문 나기 전에 당신 정년퇴직했다고 주변에 먼저 이야기해야겠다”라고 말한다. ‘정년퇴직이라면 그나마 낫나?’ 갑갑해진다. 은퇴를 축하해주는 것은 아직 남의 나라 얘기다. 퇴직 이후 남은 긴 시간,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다지? 심호흡을 한 후 시립도서관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6년 전 일기장에 적혀 있는 내용의 일부이다. 2003년 6월의 그날 이후 나는 잡념을 잊고 무언가에 몰입하기 위해 자격증 따는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도서관에 파묻혀 공부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해 추석, 고향집에 잠시 들렀다가 도망치듯 빠져나오던 기억도 난다. 자꾸 이것저것 물을 게 뻔한 친척들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제일 곤란한 것은 “아직 젊은데 놀기는 그렇고, 뭐라도 해야지?” 하는 질문이었다. 우리 주변은 여전히 봉사나 자아실현을 위한 활동을 노는 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다행히 얼마 후 다시 직장을 잡아 4년여 동안 즐겁게 일했다. 현재는 경제활동을 완전히 접고, 한 민간 연구소에서 은퇴자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교육받은 뒤 비영리 기관(NPO) 활동을 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제 퇴직하려는 후배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현재 막막하고 힘들고 무력감에 빠져 있다면 빨리 마음의 여유를 찾으시라고. 지금의 무력감은 일 중독에서 벗어날 때 생기는 일종의 금단현상일 뿐이다. 당분간은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볼 필요가 있다. 책도 읽고, 산에도 가고, 취미 생활도 하고, 동호회에 가입해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사귀어보는 것도 좋다. 나는 동네 취미 교실에서 기타와 중국어를 배웠고, 산악자전거로 한강변을 달리며 새로운 쾌감에 빠져보기도 했다. 이렇게 매일 집을 나서서 규칙적으로 생활하다 보니 마음의 안정도 되찾고 몸도 서서히 좋아졌다.

컴퓨터 활용 능력 반드시 키워라

그런 다음 차분히 제2의 인생 설계를 할 일이다. 이때 좋은 가이드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내 경험으로는 먼저 은퇴한 선배를 만나 조언을 듣기보다는 지명도 있는 시민사회 단체의 공익성 프로그램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 더 좋다. 전문가로 구성된 강사진에 다양하고 폭넓은 내용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 함께 교육받는 사람들과 동일한 고민을 하는 처지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효과도 컸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좋은 기관과 프로그램을 찾을 수 있다. 후배 은퇴자들이 이제부터 평상시 꿈꿔오던 진정한 자아실현의 삶을 찾아 그 길을 떠나기 바란다. 돈 몇 푼을 찾아 기웃거리며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끝으로 컴퓨터 활용 능력을 키우라는 당부를 꼭 하고 싶다.

희망제작소가 운영하는 ‘행복설계 아카데미’ 강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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