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0일이었지요. 내가 선생님을 처음 만난 날이. 사회공공성·공교육강화전북네크워크가 전라북도교육청 앞에서 주최한 ‘일제고사 관련 부당 징계 철회를 위한 촛불문화제’를 한겨울 칼바람도 녹이는 따뜻한 웃음과 비장한 결의로 마치고 근처 식당에 우르르 몰려갔지요. 그곳에서 전북 지역 선생님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은주 선생님과 혜원 선생님이 술잔을 들고 나한테 왔지요.
은주 선생님은, 일제고사의 학부모 선택권을 존중해주고 정작 자신은 교육청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는 ‘낫살이나 먹었으나 철없는’ 교장이 누군지 몹시 궁금했다면서 소주잔이 넘치도록 맥주를 따라주었지요. 그리고 혜원 선생님이 서울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기특한’ 시골학교 교장을 안아주고 싶다며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를 껴안자 식당에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지요.
순간 여고생들의 외마디 비명과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가 진안여고에서 근무하던 1989년 5월이 떠올랐던 거지요. 서울에서 열리는 전교조 결성식에 참석하려 대문을 나섰으나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에게 사지가 불끈 들려 진안경찰서에 끌려갔습니다. 그때 경찰의 불법 연행을 ‘사마귀가 수레를 막듯이’ 가로막고 항의하다 머리채를 잡히고, 뺨을 맞고, 무지막지한 구둣발에 걷어차인 학생들의 외마디 비명, 울음소리가 들려왔던 것이지요.
선생님도 눈망울이 초롱초롱해 아직 해직이 뭔지 모르는 그 어린 초등학생들의 눈물과 울음을 뒤로하고 쫓겨난 것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 강제로 빼앗긴 학생들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으로 새벽까지 뒤척이는 날이 아마도 많을 겁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의 등을 다독였지요. 힘내시라고.
그러나 내가 일제고사라는 수레를 사마귀처럼 가로막고 학부모 선택권을 존중한 것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학생들의 울음과 비명 소리를 눈물로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선생님을 불면의 밤으로 몰아넣는 어린 학생들의 눈물과 울음은 자칫 학교 밖에서 길을 잃기 쉬운 선생님의 방향을 바로잡아주는 나침반이 되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한 번 더 선생님의 등을 다독였지요. 고통과 슬픔이 더 큰 힘이 되는 것이라고.
그러자 어떤 선생님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형식적으로 안아주지 말고 좀 힘이 되게 꼭 안아주라고. 그래서 나는 선생님을 힘껏 안아주었지요.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힘이 되고 싶었으니까요.
선생님! 이제 학교를 떠나 ‘바람을 먹고 이슬에 자려면’ 무엇보다 건강하셔야 합니다. 머지않은 후일에, 울면서 쫓겨난 그 교문을, 등 뒤에서 쇳소리도 요란하게 닫힌 그 교문을 활짝 열고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야 할 것 아닙니까. 그것도 복사꽃처럼 어여쁜 얼굴로 말입니다. 그리고 말해야지요. 아침 햇살처럼 쏟아지는 아이들을 꼭 안으면서 나는 너희들 덕분에 무척 행복했노라고. 이제 너희들과 더불어 행복해지고 싶다고.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떠나셔야 합니다. 학교에서 거리로, 빛나는 청춘의 길로 기쁜 마음으로 떠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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