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인문학〉 임철우·우기동·최준영 외 지음, 이매진 펴냄

“누군가 내게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참 좋았어요, 행복했어요, 그리고 많이 배웠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값지고 소중한 시간들을 내 입에서 너무 쉽게, 가볍게 내뱉는 것만 같아 침묵으로 모든 말을 대신하고 싶다.”

이 소박하면서 지극한 인문학 예찬론은 대학의 인문학자나 인문학도의 것이 아니라 자활지원센터 인문학 과정 졸업자의 것이다. 가난한 살림 때문에 일찍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이분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3학년이다. 뒤늦은 배움과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었고, 공부에 대한 열정도 다시 지피게 되었다고 말한다.

2006년 방한하기도 한 미국의 교육자 얼 쇼리스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 곧 ‘희망의 인문학’을 모델로 해 국내에 여러 인문학 강좌가 만들어졌다. 노숙자를 위한 인문학, 교도소 수용자를 대상으로 한 재소자 인문학, 자활 근로자와 지역 주민을 위한 인문학 등 갈래는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모두 사회적 빈곤층이면서 인문학 소외 계층에 속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책은 그 인문학 코스의 강의를 수강한 사람의 사연과 성취에 대해서도 들려주지만 오히려 이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운 ‘교수님’들의 체험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장 끼니 한 끼가 절실한 사람에게,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보는 것이 소망인 사람에게 한 줄의 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두들 그런 의문과 함께 강의를 시작했지만 인문학의 희망과 새로운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어떤 깨달음인가. 다른 삶과 다른 사회를 꿈꾸려는 근원적인 충동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점, 그리고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기의 존재감과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점 등이다.

흔히 인간의 욕구에는 위계가 있어서 생리적 욕구와 소속감, 자존심에 대한 욕구 등이 먼저 충족된 후에야 비로소 자아실현에 관심을 갖는다고 말한다. 도덕적인 삶과 문화적 향유는 경제적 성장 이후 생각해보자는 ‘성장 이데올로기’가 기대되는 것도 그런 단계론이다. 불만의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먼저라는 얘기다. 과연 품위 있는 삶에 대한 욕구는 다른 기본욕구가 충족된 이후에야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세상과 소통하는 희망의 인문학 수업’ 참여자들은 생각이 다를 듯싶다. 시인을 꿈꾸는 한 노숙인이 이런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니까 말이다. “교수님, 제가 시를 썼는데 여기에 쉼표를 찍어야 할까요, 마침표를 찍어야 할까요?”

기자명 이현우 (문화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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