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고백하면 본 기자,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온 지 8년 넘었다. 아무리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산다지만 이건 내가 너무했지 싶다. 이래서야 혹시라도 낯선 사람이 우리 아이 데려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한들 이 아저씨에게 무슨 감흥이 있을 것인가.
다른 한 곳은 상호가 무척 고색창연한 중형 슈퍼. 이곳에 가니 제법 식료품 종류가 다양하다. 그런데 고민거리가 또 생겼다. 파는 채소에 적혀 있는 안내가 ‘국내산’, 딱 세 글자뿐이다. 이게 진짜 국내산 맞는지, 맞다면 구체적으로 국내 어느 동네에서 생산한 건지 알 길이 없다.
살림에 밝은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려보니 이구동성 방법은 하나란다. 생협(생활협동조합)을 이용하란다. 그러고 보니 생협을 몇 번 취재하며 생협 가입에 망설이던 기억이 난다. 〈시사IN〉 기자 월급으로 생협을 이용한다는 게 조금은 사치처럼 느껴져서였다. ‘웰빙’ 열풍에 힘입어 생협을 찾는 중산층이 크게 늘어난 데 대한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다. 내가 아는 생협 운동은 개인과 자기 가족의 안위만 챙기라는 게 아니기에.
‘무늬만 동네 슈퍼’ ‘무늬만 생협’은 사절
그렇지만 생각해보니 이제는 이런 결벽증도 사치인 듯하다. 멜라민을 비롯해 각종 식품첨가물이 의심스러운 수입산 먹을거리에서 식탁을 지켜내려면 주변의 안전한 먹을거리를 살려야 한다. 이제 농촌 살리기는 도시민이 농민을 위해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도시민 스스로 생존하려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어버렸다.
그래, 결심했어. 그 즉시 동네 생협 매장 세 군데를 찾아갔다. 그리고 가입했다. 3만원 이상 구입하면 물건을 바로 배달해준다는 생협 말고 일주일에 한 번 정해놓은 날짜에만 물건을 가져다준다는 생협으로(따져보니 편리한 생협일수록 물건 값이 비싼 경향을 띠었다. 결국 유통 비용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무엇보다 ‘더 작게, 천천히, 느리게’를 지향한다는 이곳의 정신이 마음에 들었다. 이곳 생협과 직거래한다는 생산지(충남 홍성)에 직접 가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자기가 먹는 것들이 어느 논밭에서 어떤 농부가 생산했는지 보고 나면 아이들의 의식이 달라집니다.” 최근에 만난 (주)이장 임경수 대표는, 그런 의미에서 ‘먹을거리 교육(푸드 시티즌 교육)’이야말로 21세기판 민주시민 교육이라고 역설했다. 생명의 가치, 연대의 가치를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 없이 아이들이 이를 몸으로 깨닫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내심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정말 내 수입으로 생협 소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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