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지난해 11월12일 이슬람 정부가 해적단을 소탕해 언론에 공개(위)하면서 한때 해적 출몰이 잦아들었다.

지난해 동원호에 이어 올해 마부노 호까지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들의 선박납치 사건이 잇따르는 이유는 이 지역 내전 때문이다. 1991년 독재자 모하메드 시아드 정부 붕괴 이래 분열과 내전이 거듭되고 있는 소말리아에는 해적을 박멸할 공권력이 없는 상태다.

내전을 끝낼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소말리아는 오랜 내전 끝에 통일국가를 이룰 뻔했다. 하지만 미국의 개입으로 통일 소말리아의 꿈은 좌절되었고, 그 여파가 마부노 호 피랍 사건에까지 미치고 있다.

지난 2006년 6월 소말리아 모슬렘 세력인 이슬람 법정연대(UIC)는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를 평정했다. 단일한 정치세력이 모가디슈를 완전 장악한 것은 1991년 내전 발생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슬람 법정연대는 강한 군사력과 민중의 지지를 업고 세력을 확대했다. 그 기세대로라면 바이도바에 있는 허수아비 과도정부를 몰아내고 소말리아 중남부를 통일할 것 같았다.

이슬람 법정연대 총사령관 셰이크 하산은 2006년 7월 김영미 프리랜서PD와의 인터뷰에서 “소말리아를 안정시키고 나면 하라데레 근방의 해적들을 소탕하고 모두 사형시킬 것이다”라고 말해왔다. 실제 이슬람 법정연대는 2006년 하반기부터 해적 소탕 작전을 벌였다. 2006년 11월12일 이슬람 법정연대 군인들이 해적들을 체포하는 사진이 언론에 공개돼 희망을 줬다. 12월께에는 해적 출몰이 뚜렷이 잦아들었다. 소말리아 해안에 평화가 온 것이다.

불행은 소말리아 외부에서 시작되었다. 이슬람 법정연대의 활약에 미국은 당혹스러워했다. 미국은 이슬람 법정연대가 알 카에다와 연계가 있다고 주장했으며 소말리아가 알 카에다의 훈련장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슬람 법정연대는 알 카에다와의 연계를 공식 부정했지만 미국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여기에는 이란과 같은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가 아프리카에 탄생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지가 작용했다.

이슬람 세력, 소말리아 통일할 뻔

미국은 직접 이슬람 법정연대와 싸우는 것보다는 이웃 에티오피아를 지원하는 대리전쟁을 택했다. 기독교 국가인 에티오피아는 지난해 12월 말 소말리아를 침공했다. 에티오피아가 내세운 공격 이유는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이슬람 과도정부를 보호하고 에티오피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2006년 12월14일 뉴욕 타임스는 에티오피아 군대가 미국 고문관에 의해 훈련 중이며 미국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에티오피아 군은 모가디슈로 진격했다. 이슬람 법정연대가 당해내기는 무리였다. 2007년 1월 이슬람 법정연대는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저항을 하지 않고 물러난다”라며 모가디슈를 비우고 흩어졌다.

이슬람 법정연대가 무너지자 잠복해 있던 해적들이 다시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미국과 에티오피아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이슬람 과도정부는 아직도 소말리아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각 지역에서 이슬람 반군과 부족 세력이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 국민들은 내전과 가뭄, 기근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올해 4월에는 정부군과 반군의 대대적인 교전으로 모가디슈 주민 40만명이 사막 같은 교외로 대피하는 일이 있었다. 아프리카연합(AU)은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고 있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와중에 미국은 여전히 이슬람 저항세력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미국 공군은 1월8일 알 카에다 추적을 이유로 소말리아 남부 이슬람 반군 기지를 공습했다. 현지 소식통들은 민간인 수십 명이 죽었다고 보도했다. 지난 8월18일 뉴욕 타임스는 미국 고위 관료의 말을 빌려 아프리카 에리트리아를 테러 지원국에 포함시킬 지를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에리트리아는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한 신생국가로 미국은 에리트리아가 이슬람 반군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며 비난해왔다. 유엔은 올해 7월 에리트리아가 소말리아 이슬람 반군에게 공대지 미사일과 자살폭탄 벨트 등을 비밀리에 공급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미국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서방에 우호적인 과도정부를 소말리아에 세웠더니 힘이 없어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 개입하지 않고 내버려두자니 이슬람 세력이 소말리아를 통일할 가능성이 높다. 이래저래 미국과 유엔이 혼란을 거듭하는 사이에 해적만 활개치고 있다. 한국 어선들은 오늘도 마음 졸이며 아프리카 바다를 지난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