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끊기 2주차. 첫 번째 난관에 부닥쳤다. 집안의 화장지와 생수가 떨어진 것. 생수는 그렇다 치고 일 년에 한 번 떨어질까 말까 한 화장지는 하필이면 왜 이때? 덩치 큰 물건은 무조건 마트에서 사고 본 지 몇 년째이다보니 당장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다.

고민하다 반경 500m 안에 따로 사는 친정 어머니한테 물었다. 대형 마트 말고 화장지와 생수를 살 만한 다른 데가 있냐고. 울 엄니, 다 큰 딸을 한심한 듯 바라보다 한 말씀 던지신다. “동네 슈퍼에서 다 배달해준다.” 헉,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대형 마트에 너무 오래 의존하고 살다보면 이런 ‘상식의 블랙홀’에 빠지기도 한다).

ⓒ시사IN 한향란‘싼 게 비지떡’도 아니었다. 마트 물건은 결코 싸지 않았다.
두 번째 난관은 아이들. 자녀가 있는 집이면 공감하시리라 믿는다. 쇼핑도 쇼핑이지만 애들 놀이터 삼아 가는 곳이 대형 마트라는 것을.

그러니 마트 끊기는 아이들과 상의할 문제. 강한 반발을 염려하며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그런데 뜻밖에 큰놈(9세)이 ‘쿨’하게 나온다.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래요.” “마트 안 가도 되겠어?”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재미있어요.” 그래서 알았다. 마트에 중독된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는 것을. 아이는 편하게 자기를 키워보고자 하는 부모의 나태함에 빌붙어 제 잇속을 차려왔을 뿐임을(마트 갈 때마다 아이가 졸라대는 바람에 사준 장난감이 그 얼마였던가!)

이제 화장지와 생수를 사러 갈 차례다. 급할 때 우유 사러 간 것 외에는 발걸음을 한 적이 거의 없는 동네 슈퍼마켓으로 향한다. 내 발걸음으로 10여 보면 매장 내부를 모두 둘러볼 수 있는 미니 슈퍼다. 배달 여부 먼저 확인. 맞다. “반경 1km 안이면 두 시간 내 어디든 배달해드린다”라고 슈퍼마켓 아저씨가 시원시원하게 말한다.

동네 슈퍼 치약은 160g, 마트 치약은 150g

마침 고추장도 떨어졌다. 고추장을 집은 김에 평소 궁금했던 것을 아저씨에게 묻는다. “이 물건, 혹시 대형 마트에서 사오는 거 아니예요?” 대형 마트 물건 값이 싸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물은 건데 아저씨가 도리질을 한다. “무슨 말씀이에요? 마트 거가 더 비싸요. 마트용 물건은 값이 같아도 용기가 더 작게 나온다니까요. 요즘은 손님들도 그런 거 다 아는데….”

또 바보 됐다. 이건 대체 뭐란 말인가. 몇 달 전 KBS 〈이영돈의 소비자 고발〉에서 대형 마트 ‘묶음 판매’의 진실을 파헤친 것은 기억한다. 낱개로 파는 것보다 ‘2+1 기획 판매’ 따위 몇 개씩 묶어 파는 과자나 즉석밥 가격이 더 높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그래도 대형 마트 물건 값이 동네 슈퍼마켓이나 재래시장보다 쌀 것이라는 믿음은 굳건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직업 근성을 발휘해 대형 마트를 찾아가 보았다. 이럴 수가. 사실이었다. 동네 슈퍼에서 7300원인 ㅊ브랜드 태양초골드 고추장 1kg이 대형 마트에서는 7480원에 팔리고 있었다. 된장도 마찬가지. 동네 슈퍼에서 4380원인 ㅎ브랜드 재래식 된장 1kg이 대형 마트에서는 200원 비싼 4580원이었다.

용기가 다르다는 것도 일부 사실이었다. 동네 슈퍼에서 3개들이 4600원인 ㅍ치약은 대형 마트에서 4380원에 팔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동네 슈퍼에서 파는 치약은 용량이 160g, 대형 마트 것은 150g이었다. g당 가격을 따지면 대형 마트 치약(9.73원)이 동네 슈퍼 치약(9.58원)보다 비쌌다. 식용유도 그랬다. 동네 슈퍼와 대형 마트에서 각각 4800원과 4600원에 팔리는 ㅎ식용유. 얼핏 대형 마트 것이 싼 것 같지만 알고 보니 용량이 달랐다. 동네 슈퍼는 1.8ℓ, 대형 마트는 1.5ℓ짜리였다.

이런 얄팍한 눈속임으로 소비자를 우롱하다니. 화가 치밀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본래 연인과 결별할 때도 정 끊는 데 가장 주효한 것이 상대의 거짓말. 그래 좋다. 이제 마트를 잊을 마음의 준비가 확실히 됐다(다음 호에 계속).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