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기’는 대개 외로움과 고통을 수반한다. 담배 끊기, 술 끊기가 그렇고 연인과의 관계 끊기가 그렇다.
그러나 〈시사IN〉은 신년을 맞아 즐거운 ‘끊기 프로젝트’를 제안하고자 한다. 나 하나쯤 대형 마트 이용을 끊는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나 하나쯤 육식하는 습관이나 외식하는 습관을 끊는다고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익숙하고 낡은 소비 습관을 개선하려는 이런 움직임이 하나 둘씩 쌓일 때 세상이 조금은 달라질 것이라고 우리는 상상한다.
〈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체험하는 ‘~끊고 살아보기’는 한 달 단위로 연재된다.   - 편집자 주


대형 마트를 끊겠다고 결심한 첫 주. 주말 낮이 길게만 느껴진다.

지난주까지 기자의 주말 일상은 보통 이랬다. 오전 느지막이 일어난다→당연히 늦은 아침을 먹는다→하는 둥 마는 둥 집안 청소→집을 나서 대형 마트로 향한다→두어 시간 쇼핑 겸 시식 코너 돌기→마트 내 식당가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거나 마트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 집에 돌아온다.

그런데 이렇게 익숙한 일상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누가 시킨 건 아니고 순전히 스스로 원해서다. 계기는 두 가지였다.

먼저, 최근 개인 사정으로 자가용을 처분하게 됐다. 차를 없애고 나니 확실히 주말에 집 밖을 돌아다닐 일이 줄었다. 그래도 한동안 마트는 꼬박꼬박 갔다. 택시를 타거나, 때로 걸어서 갔다. 집에서 마트까지는 걸어서 30분 거리. 화창한 날이면 산책 삼아 그 길을 오가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마트에서 신나게 사들인 물건 봉지를 양손에 들고 택시 정류장에 서게 됐다. 그날따라 10분을 기다려도 택시는 오지 않았다. 날은 춥고, 팔은 점점 저려오고…. 난감해하며 서 있는데 갑자기 ‘이게 뭔 짓인가’ 하는 회의가 몰려왔다. 그날 내가 든 쇼핑백 속에는 ‘1+1 두부’ ‘2+1 만두’ ‘오늘의 기획상품 한치세트’ ‘초특가 제주감귤’ ‘한정세일 주꾸미볶음’ 따위가 들어 있었다. 이 중 내가 사야겠다고 미리 마음먹고 간 것은 두부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매장에서 눈에 띄는 대로 집은 것이었다. 그렇다. 이 날도 나는 ‘닥치고 사들이기’,  점잖게 말해 충동구매를 자행한 것이었다.

마트에서의 충동구매로 기분이 상한 일은 이전에도 종종 있었다. 아니, 솔직히 자주 있었다. 체중계와 마트 계산대는 닮은꼴이다. 마트 계산원이 물건값을 콕콕 찍으며 최종 합산하는 순간을 기다릴 때면 체중계에 오르기 전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결과가 늘 예상치를 ‘배반’한다는 점에서도 둘은 닮은꼴이었다.
 
체중계와 닮은 마트 계산대

그런데 이날은 충동 소비에 대한 자책이 한탄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예 독하게 한번 마트를 끊어봐?’ 하는 오기가 급작스럽게 솟았다고나 할까? 어느 날 갑자기 금연을 결심하듯, 다이어트를 결심하듯 오래된 습관과 결별할 때가 됐다는 신호가 순간 전두엽에 전달됐다.

나는 생각한다. 쇼핑 카트에 담긴 물건을 차 트렁크에 옮겨 싣고 집에 가는, 과거의 패턴 속에서라면 이런 일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하고. 그날 내 어깨를 짓누르던 물건들의 무게가 새삼스러운 각성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하고.

사실, 충동구매나 과소비를 줄이는 것이 목적의 전부였다면 굳이 대형 마트를 끊겠다고 ‘오버’할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근 월간 〈인물과 사상〉 12월호에 실린 조한혜정 교수(연세대·사회학)의 인터뷰가 자극제가 됐다. 오랜 소신대로 그녀는 말했다. ‘마을’과 ‘단골’이, 지금 우리가 당면한 위험 사회의 대안이라고. “믿음을 회복하자는 게 추상적이라 저는 단골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해요. 이사를 가능하면 가지 말아야 하고, 마을에서 수시로 학예회가 벌어지고 단골들과 거래를 하면서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지요.”

단골로 엮인 관계에서 주인이 손님을 속이기는 쉽지 않다. 중국산 바지락을 국산이라 속이거나, 중국산 돼지고기 내장을 미국산이라고 속이거나, 미국산 쇠고기를 오스트레일리아산이라고 속여 파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다(이는 올해 대형 마트에서 벌어진 식품 사고들이다). 신뢰가 한번 깨어진 순간 거래도 끝이 난다.

ⓒ시사IN 한향란‘대형 마트가 주는 편리함을 과연 끊을 수 있을까?’ 체험 첫 주, 기자(위)는 반신반의하는 중이다.
그런데 대형 마트가 들어서면서 동네 가게, 단골 가게는 속속 자취를 감추고 있다. 중소기업청 보고서에 따르면 대형 마트 한 개가 들어설 때마다 주변 재래시장의 점포 150개가 문을 닫는다. 지식경제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영업 중인 대형 마트가 2007년 9월 현재 342곳이니까, 작은 가게가 어림잡아 5만여 개 사라진 셈이다.

그렇다면 나는 사라진 단골 가게만큼 대형 마트를 신뢰하는 것일까. 그렇게는 말 못하겠다. 편리해서 대형 마트를 이용했을 뿐이지 믿어서 이용한 것은 아니었다. 비단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로컬푸드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김홍주 교수(원광대·사회복지학)에게 들으니, 그간의 조사 결과 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이런 순서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직접 기른 농산물〉동네 이웃이 기른 농산물〉농민 장터에서 산 농산물〉대형 마트 국산 농산물〉대형 마트 수입 농산물.

흥미로운 것은, 신뢰도와 생산자-소비자 간 거리가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내가 기른 농산물을 내가 먹을 때, 곧 생산자-소비자 간 거리가 0일 때 신뢰도는 100이다. 반면 내가 먹으려는 농산물을 누가 생산했는지 소비자가 알기 어려워질수록 신뢰도는 추락한다. 대형 마트일수록 생산자-소비자 간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지역에서 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던 옛 방식과 달리, 대형 마트는 지역 농산물을 중앙 물류센터에 보냈다가 다시 각 지역으로 분배하는 체계로 운영된다. 불필요한 이동이 많아지는 셈이다. 그뿐인가. 한국을 포함해 선진국 대형 마트는 좀더 싼 값으로 상품을 공급하기 위해 중국이나 타이 등에서 물건을 수입해온다. 이런 국제적 이동 과정에서 화물선과 자동차가 내뿜는 온실가스도 늘어난다. 세계적인 환경단체 ‘지구의 벗’ 등은 이런 이유로 대형 마트 반대운동을 벌여왔다.

아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다보니 대형 마트를 끊음으로써 좋은 점을 좀더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과소비·충동소비를 줄임으로써 가계에 보탬이 될 수 있다. 둘째, 대형 마트 대신 동네 가게를 이용함으로써 좀더 안전한 상품(특히 식품)을 구입할 수 있다. 셋째, 사라져가는 동네 가게, 단골 가게를 되살리고 자영업자를 살리는 데 미약한 힘이나마 보탤 수 있다. 넷째, 환경을 살리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소비자가 대형 마트를 덜 이용할수록 온실가스도 덜 배출된다. 다섯째,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주기적으로 지면을 장식하는 뉴스 중 하나가, 일부 대형 마트에서 휘발성 유기화합물 등이 기준치보다 높게 검출됐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공기가 나쁘다는 뜻인데, 매장에 가지 않으면 나쁜 공기에 시달릴 일 없다. 과소비로 텅 빈 지갑 부여잡고 속 쓰리지 않아도 되니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겠다.

이제 동기는 부여됐다. 문제는 실천. 기자는 과연 마트 끊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혹시 마트 끊기에 일찌감치 성공한 독자분이 있다면 이 기사 위에 얹혀 있는 이메일 주소로 그 노하우를 아낌없이 날려주시기 바란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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