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 가이드북을 취재하기 위해 창장강(장강·양쯔강) 유람을 할 때였다. 세계 최대 규모라는 싼샤 댐이 완공되기 직전이었다. 완공 이후에는 강물 수위가 높아져 싼샤의 아름다운 봉우리들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렵다고 해서 부리나케 일정을 잡았다.

충칭(중경)을 출발한 배는 2박3일간 하류를 따라갔다. 유비가 머물렀다는 백제성 등 창장싼샤(장강삼협)를 관광한 뒤 〈삼국지〉의 징저우(형주)에 속하는 이창(의창)에 도착하면 끝나는 일정이었다.

이틀째 낮이었을 거다. 갑판에 나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산봉우리의 유래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 한 중국인이 말을 걸어왔다. 그때만 해도 영어 하는 중국인은 천연기념물이던 시대라 영어를 곧잘 하는 그가 꽤 반가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나에게 일종의 ‘항의’를 했다.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 한국인은 왜 공자를 한국 사람이라고 우기는가? 둘, 너희 국기는 왜 중국 고유의 전통 양식인 팔괘와 태극을 모방했는가?

ⓒ연합뉴스안동 병산서원(위) 등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얼핏 타이완의 어떤 언론이 한국에서는 공자를 한국인이라 알고 있다는 가짜 뉴스를 퍼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괴담을 중국 내륙에서 들을 줄은 몰랐다. 그때는 가짜 뉴스라는 말도 없던 시절이다. 일단 속으로 ‘공자는 동이족이므로 우리 민족이다’라는 설을 퍼트린 사람들에게 욕을 한바탕 하고는 정색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내가 듣기로는 한국과 중국 사이의 우호 관계를 질투하는 누군가가 만들어낸 거짓말일 거다. 그런 뉴스가 있었다는 건 아는데, 모든 한국인은 어이없어 한다.”

공자 건을 해명하기는 쉬웠다. 문제는 태극기였다. 그동안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여서 잘 모르겠다고 둘러댔다. “100년 전에 일본과 협상을 했던 어떤 한국인이 만든 깃발인 건 맞는데, 그게 일본의 식민지를 거치며 항일 투쟁의 상징이 되었다. 한국인은 너희 중국인처럼 항일 투쟁에 큰 의미를 둔다.”

이후 나는 중국을 다니며 이와 비슷한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고, 그때마다 대답을 만들어야 했다. “한자를 한국인이 만들었다고?” “황허 문명을 만든 하, 은, 주. 우리의 고대 왕국을 한국인이 만들었다니 이런 맙소사!” 따위 말들이었다. 요즘에야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긴 한데, 대다수 한국인은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아”라고 답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당혹스러웠다.

2005년 강릉 단오제 등재 때도 중국 사회 들끓어

2005년 유네스코가 강릉 단오제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을 때가 절정이었다. 만나는 중국인마다 시비를 걸어왔다. 중국 내에서 “단오를 지켜내자”라는 서명운동이 불붙은 때였다. 유네스코가 한국 단오제의 고유성을 인정한 것일 뿐, 단오제가 한국만의 것임을 인정한 게 아니라고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아마도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대국을 몰라보고 함부로 들이댄 걸 사과할게”였는지도 모른다. 그들과 대화를 나눌수록 단 한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사실을 깨달을 뿐이었다.

올가을 중국 취재를 앞둔 내게 최근 ‘무서운’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는 뉴스였다. 이미 〈환구시보〉가 관심을 표하며 관련 내용을 상세히 보도하는 등 중국 여론이 심상치 않다. “우리 문화를 훔쳐갔다”라며 시비 걸어올 중국인을 만나면 이번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좋은 대응 논리가 있다면 알려주길 바란다.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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