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10월20일 경기도 구리시에서 열린 경기노동가족체육대회에 참석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노동자들과 족구시합 도중 환호하고 있다.
여의도 정치권 인사들 중에는 ‘한 방의 추억’에 사로잡힌 이들이 많다. 아무리 이명박 대세론이 주름잡고 있어도 한 건만 확실하게 잡히면 끝난다는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은 당내에 ‘MB(이명박) 상황팀’을 운영하며 수시로 타격 지점을 점검하고 있다. 김경준씨의 귀국 일정은 여야 모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특급 이슈다. 이회창씨의 최근 행보는 이명박 후보가 한 방에 갈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한나라당 주변에서 나돈다.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상기해보면 정치권의 이런 움직임이 이해된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지금의 이명박 후보보다 훨씬 견고하게 대세론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러나 아들 병역 문제와 빌라 게이트, 며느리 원정출산 의혹 등이 터지자 그의 지지율은 반 토막 났다. 그가 살던 호화 빌라가 쟁점으로 떠오른 직후 한 일간지는 응답자 60%가 후보 지지를 재고할 수 있음을 암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당시 노무현 후보도, 자초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이회창씨와 달랐지만 ‘한 방’의 위력을 실감해야 했다. 후보 선출 직후 김영삼 전 대통령(YS)을 방문해 그에게서 받은 시계를 꺼내 보인 이른바 ‘YS 시계 파문’ 뒤 노 후보는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깽판’ ‘양아치’ 운운한 그의 막말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한때 60%를 넘나들던 지지율은 10%대로 곤두박질쳤다.

'한 방'에 흔들렸던 5년 전 이회창 후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5년 전 이회창·노무현 후보가 시달렸던 약점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 후보는 그동안 BBK 주가조작 의혹과 도곡동 땅 차명 보유 의혹, 위장 전입 의혹 등으로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다. 마사지 걸 발언이나 장애아 낙태 발언처럼 말실수도 끊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부인 김윤옥씨의 고가 핸드백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도덕성 면에서 볼 때 이회창씨보다 결코 낫지 않으며, 말실수 또한 노 대통령에 필적할 만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촌평이다. 칼럼니스트 고종석씨의 표현에 따르면, 이명박씨는 역대 대선에서 한국 보수 세력이 내놓은 최약체 후보다. 그런데도 50%대를 넘는 지지율이 수개월 동안 끄떡없이 유지되는 비결은 뭘까?

한나라당 선대위 전략기획단 총괄팀장을 맡고 있는 정두언 의원은 “이 후보는 한나라당 기반에다가 수도권 지지까지 갖췄고, 이전 한나라당 후보와는 달리 20,30세대의 지지율도 상당히 높다”라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변화한 정치 지형이 이 후보의 높은 지지율을 받쳐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분석가들은 단순히 그런 의미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이사는 “이명박 후보가 국민들에게 노무현·이회창씨와는 전혀 다르게 포지셔닝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 이사에 따르면, 5년 전 노 후보는 사람은 좋은데 대통령감으로는 부족하지 않으냐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대통령답지 못한 말투’는 노 후보의 약한 고리였던 셈이다. 당시 이회창 후보는 ‘대쪽’으로 불렸기 때문에, 도덕성에 흠결이 나면서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이명박 후보는 ‘경제통’ ‘추진력’ 같은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다. “국민들은 이명박 후보한테 도덕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후보가 장점으로 내세우는 부분에서 타격을 받지 않는 한 이명박 지지율이 꺼지기 쉽지 않다”라고 김지연 이사는 말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귀영 실장도 이명박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가 잘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김 이사가 이 후보의 캐릭터를 분석했다면, 한 실장은 좀더 구조적인 면을 강조했다. “이명박 지지층의 상당수는 이 후보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범여권이 싫어서 지지하는 것이다.” 한 실장은 ‘무능한 민주화 세력을 심판하기 위해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69%나 나온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지난 대선 구도가 반 한나라당 전선으로 짜였다면, 올해 대선은 반민주화 세력 전선이라고 부를 만하다”라고 말했다.

“이번 대선은 이명박이냐 아니냐의 싸움이다”라고 말한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 또한 그 이유를 이 후보나 한나라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여권이 못해서’에서 찾았다. 국민들은 이제 지도자의 다른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의 경제 대통령론은 대중의 코드에 제대로 부합했다. 1991년 미국 대선 때 클린턴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슬로건으로 대선판을 정리했듯, 이 후보는 올해 ‘국민 여러분, 성공하세요’를 외치고 있다. 반면 여권 후보들은 이명박 대항마로서 정체성 경쟁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성 기자는 지적했다. 정치 컨설턴트인 박성민 민기획 대표도 “여권 후보들이 ‘안티 이명박’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명박 대세론을 넘어설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 현실화되면 달라질 수도"

세계일보가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명박 후보 지지자 10명 중 7명(70.9%)은 의혹이 밝혀지더라도 이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응답했다. 이런 결과만 놓고 보면 올해 대통령 선거는 하나 마나이고, 여권은 희망이 없는 셈이다. 그런데 이명박 지지자들은 정말 콘크리트처럼 강력하게 뭉쳐 있을까. 올해 대선 때는 과거처럼 팽팽한 여야 빅게임을 다시 볼 수 없을까.

정치분석가 김형준 교수(명지대)는 “판을 흔들 수 있는 여권 후보가 등장하거나, 이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둘 중 어느 것도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의 말 속에 역설적으로 여권이 기대할 수 있는 해법이 숨어 있다.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이사는 “국민의 학습 효과가 크기 때문에 네거티브 공세만으로 이명박 지지율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김경준 귀국 이후) 검찰 수사가 현실화된다면 달라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귀영 실장은 “이명박 후보 지지율 55% 중에서 20% 정도는 여권에 실망해서 건너간 이들이다. 이들은 안티 이명박 캠페인만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정동영 후보 스스로 대안임을 증명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안철흥 기자 다른기사 보기 ah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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