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학년 때부터 시를 썼다. 본격적인 결심은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였다. 서류 문제로 갑자기 시험 응시 자격이 사라졌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문제가 생기니 김이 샜다. 마침 그에게 ‘시가 왔던’ 시기였고, 3년여 만인 2016년 〈중앙일보〉로 등단했다.
이후로도 불안감이 있었다. ‘청탁이 안 오면 이대로 사라지는 걸까.’ 스스로 작품을 발표할 통로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등단 이듬해 김수영문학상을 받았고 청탁도 이어졌지만 준비되지 않은 글을 발표해야 할 때도 있었다. 독자에게도, 문예지를 만드는 사람에게도 미안한 일이었다. ‘일기 우편 딜리버리’는 작가의 호흡대로 조절이 가능했다.
문보영 시인은 시보다 피자, 피자보다 일기를 좋아한다. 시는 놓았을 때 스스로 돌아오지 않지만 일기는 다시 쓰고 싶어졌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이메일로, 처음과 마지막 일기는 우편으로 부친다. 편지봉투를 스티커로 꾸미고 포장하는 시간이 좋다. 단순한 일을 반복하면서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다. 재밌는 별명의 구독자들이 그를 웃기기도 한다. “이전엔 누가 내 시를 보는지 체감이 안 되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좀 더 정신 차리게 된달까. 작가로서 그런 게 좋다.” 전에는 불면증이 있었고 시간이 많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는데, 요즘 직장인이 된 것처럼 시간이 빨리 흐른다. 그는 1인 문예지 〈오만 가지 문보영〉을 발행하기도 한다. 직접 그린 웹툰과 소설, 시, 일기 등이 담겨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 유튜브 채널 ‘어느 시인의 브이로그’를 운영 중이다. 시가 인생의 전부였던 시절, 시 외의 것에는 둔해졌고 일상을 잘 살아내지 못했다. 시와 불화할 때는 일상이 같이 무너졌다. 우울증이 왔다. 소박하게 일상을 담아낸 누군가의 브이로그를 보며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내게 예술은 있지만 그런 게 없구나’ 깨달았다. 카페에 가서 일하거나 식사하는 영상을 올렸다. 현실을 매번 잘 살아내지는 못하더라도 편집 때 다시 한번 살고, 자막 달 때 또 사니까 여러 번 입체적으로 사는 느낌이 든다.
얼마 전 산문집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이 출간된 뒤 석 달째 전국의 독립서점을 돌며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구독자도 점점 늘고 있다. 편지 봉투에 담긴 6월의 마지막 일기는 이렇게 끝난다. ‘여러분께 계속 있어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저는 여기 보이는 곳에 계속 있을 테니 언제든 찾아와주세요. 일기를 구독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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