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면서 힘든 선택을 할 때가 있는데, 피오나(에마 톰슨)는 직업이 하필 판사라서 매일 힘든 선택만 하며 산다. 오늘은 샴쌍둥이의 운명을 결정하는 날. 피오나는 한 아이라도 살릴 수 있게 분리 수술을 명령했다. 신의 뜻에 따르고 싶다던 부모는 “법원이 내 아이 중 한 명을 살해하도록 허가했다”라며 울부짖는다.

그렇게 또 한 번의 힘든 선택을 마치고 돌아온 피오나에게 남편이 말한다. “아무래도 나 바람 피울 것 같아.” 진지한 표정으로 “이젠 키스조차 하지 않는 사이”를 견딜 수 없다고 말하는 남편. 그에게 등을 보이며 때마침 걸려온 전화를 받는 피오나. 새로운 사건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는 17세 암 환자에게 법원이 긴급 수혈을 명령해달라는 병원의 요청이다. 서둘러 심리 날짜를 잡고 돌아섰을 때, 남편은 없다. 그대로 짐을 챙겨 집을 나갔다.


타인의 삶을 바꾸는 중요한 선택에만 매달리다가, 자신의 삶이 텅 비어가는 걸 막지 못한 중년 여성 판사의 하루. 바로 그날 저녁 그의 손에 맡겨진 열일곱 살 소년의 운명. 확고한 자기 의지로 수혈을 거부하는 개인에게, 강제로 다른 사람의 피를 넣으라고 명령하는 건 합당할까? 수혈만 받으면 살 수 있는 소년이, 제대로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죽어간다면 그 또한 합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재판이 시작되고, 피오나에겐 또다시 힘든 선택의 시간이 찾아온다.

여기까지가 영화 시작 후 20분 동안 벌어진 일이다. 여느 법정 영화라면 이 정도 이야기만으로도 2시간을 꽉 채우고 남을 텐데, 〈칠드런 액트〉는 그러지 않았다. 던지고 싶은 질문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볼 배합이 좋은 투수처럼, 영화는 연이어 새로운 질문을 관객 마음 이곳저곳에 찔러 넣는다. ‘나의 선택이 다른 사람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주인공과 함께 숙고하도록 만든다. 법정 안팎에서 피오나가 감당해야 하는 모든 선택의 무게를, 관객도 같이 짊어지게 만든다.

하나를 쥘 때 다른 하나를 잃고 마는

모든 흥미로운 이야기는 자전거와 같아서, ‘딜레마’와 ‘아이러니’의 두 바퀴로 굴러간다. 하나를 움켜쥘 때마다 어김없이 다른 하나를 잃고 마는 ‘삶의 딜레마’. 남을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 도리어 그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선택의 아이러니’. 튼튼하게 조립된 그 두 개의 바퀴 덕분에 〈칠드런 액트〉는 흔들리지 않고 제 길을 간다. 흔한 법정 영화처럼 출발하지만, 결국 영화가 도착한 결승점은 ‘흔치 않은 인간 탐구의 드라마’인 것이다.

영화 〈어톤먼트〉의 원작 소설 〈속죄〉를 쓴 작가 이언 매큐언이 자신의 소설 〈칠드런 액트〉를 직접 각색했다. 〈아이리스〉(2001)의 감독 리처드 에어가 연출을 맡았다. 믿고 보는 배우 에마 톰슨이 주인공 피오나를 연기한다. 누구나 살면서 힘든 선택을 할 때가 있지만, 이런 사람들이 모여 만든 영화를 선택하는 데는 하나도 힘들 게 없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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