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는 그냥 처음부터 같이 있었고, 볼수록 웃기게 생겼고, 잠버릇이 고약하단다.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그래, 늙은 고양이는 종일 늘어져 있으려 한다니까. 그렇게 들어 올리면 힘들어 하지, 중얼거리게 된다. 피아노 치는 손을 방해하는 고양이(내가 뭐만 하려고 하면 꼭 방해를 한다), 쥐 모양 놀잇감을 잡으러 뛰는 고양이 (틈틈이 시간을 내서 놀아주는데도), 양파 망을 머리에 뒤집어쓴 채 내달리는 고양이(가끔 이상한 짓을 한다), 참치 캔에 눈독 들이는 고양이(좋아하는 것만 먹으려고 한다)….
아이는 고양이를 참 찬찬히도 관찰한다. 혼자 있고 싶은 건지, 사실은 혼자 있고 싶지 않은 건지도 헤아려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엎드린 등 위에 올려놓거나 할 정도로 속 깊고 섬세하게 본다.
동구를 관찰하는 고양이
아이와 고양이의 우정에 감복할 즈음, 어? 뭐지? 싶은 반전의 서막이 펼쳐진다. 동구는 가끔 차를 타고 병원에 간단다. 캐리어 안 시무룩한 표정의 고양이와 굳게 입 닫고 눈을 내리깐 아이. 가끔 병원에 간다니, 고양이가 지병이라도 있는 걸까?
그런데 “병원에 다녀온 동구는 힘이 없어 보인다”라는 글 옆에는 아이와 엄마만 있다. 고양이는 없다. 아, 그러니까 동구는, 고양이가 아니라 아이였던 것이다. 보면 볼수록 웃기게 생긴 동구,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말을 자꾸 나한테 거는 동구,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동구. 혼자 있고 싶기도 하고 혼자 있고 싶지 않기도 한 동구. 병원 가는 차 안에서 말이 없는 동구! 그 동구를 고양이가 관찰한 것이다.
작가가 손끝으로 내 이마를 톡 튀기는 듯하다. 사람이 고양이 관찰하는 건 줄 알았지? 왜 그렇게 시야가 좁아? 씩 웃으며 이렇게 핀잔을 주는 듯하다. 이 반전이 더욱 놀라운 이유는 더 있지만, 모두 밝히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여기서 멈추려고 한다(복선은 살짝 깔아놓았다). 독자들이 무심히 책장을 넘기다 화들짝 놀라고, 처음부터 다시 짚어나가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먹먹한 마음으로 ‘씨익’ 웃는 즐거움을 흔들고 싶지 않다. 내 고양이 맹랑이는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녀석에게 관찰기를 부탁할까 싶어 돌아보니, 아무 관심 없어 보인다. 열네 살 맹랑이는 코를 골며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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