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의 꽃은 무대다. 노래하고 춤추고 싶어서, 때로는 유명해지거나 성공하고 싶어서. 아이돌 100명에게 물으면 이 직업을 택한 100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그 모든 꿈과 욕망과 성취감이 모여 궁극적으로 그려내는 큰 그림은 오로지 무대에서만 펼쳐진다. 결코 짧지 않은 인내와 시련 끝에 아이돌은 무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적어도 내가 아는 좋은 아이돌은 다 그렇다.
이렇게 구구절절 무대 찬양을 늘어놓고 바로 이어 쓰기는 머쓱하지만 사실 펜타곤의 후이가 처음 눈에 띈 건 무대 위가 아니었다. 이들이 데뷔하던 2016년 즈음의 대세는 ‘멤버 10명은 우습게 넘기는’ 다인원 그룹이었다. 시대의 흐름을 충실히 따랐던 펜타곤 역시 멤버 한 명 한 명에 주목하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였다.
뜻밖의 기회는 외부에서 찾아왔다. 2017년 연예계 전체를 들었다 놨다 해도 과언이 아닌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의 두 번째 시즌을 통해 공개된 노래 ‘네버(NEVER)’의 작곡가 가운데 후이의 이름이 있었다. 이른바 ‘콘셉트 평가’를 통해 공개된 이 노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삽입곡으로는 드물게 연간 음원 차트 100위권까지 이름을 올리며 그해 가장 유명한 케이팝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펜타곤의 리더이자 메인 보컬인 동시에 작곡가이기도 한 후이의 이름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 건 그때부터였다. 때맞춰 그룹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2017년 9월과 11월 두 달 간격으로 발매된 미니앨범 〈데모(DEMO)〉 시리즈는 그동안 앨범 안에서 조금씩 비중을 높여가던 멤버들의 작업 분량을 앨범 전체로 확장했다. 기분 좋게 불어온 훈풍에 올라탄 ‘실력파 아이돌’로서의 자리 굳히기였다.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이듬해 4월, ‘빛나리’가 터졌다. 발매 당시 500위까지 순위가 떨어졌던 노래는 활동을 더해갈수록 순위에 탄력을 받으며 10위권까지 이름을 올렸다.
그룹 인기 상승세의 전면에 서 있던 후이의 인지도 역시 동반 상승했다. 서사무엘, 페노메코, 콜드 등 장르를 불문한 차세대 싱어송라이터들을 모은 엠넷(Mnet) 〈브레이커스〉에 출연했고, MBC 〈복면가왕〉에서는 오로지 가창력만으로 3라운드까지 진출하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반 보 앞선 대중감각을 담은 작곡 실력과 그에 따른 히트곡, 검증된 가창력까지 부족한 것 하나 없어 보이던 그의 앞에 떠들썩한 스캔들과 그에 따른 멤버 탈퇴라는 시련이 닥쳤다. 상승세가 대단했던 만큼 후폭풍도 심했다. 그룹 재편 후 첫 컴백이었던 ‘청개구리’가 대표적인 증거였다. 펜타곤 특유의 재기는 그대로였지만 무대는 어딘가 동력을 잃은 듯 위태로웠다.
무대 위의 후이가 눈에 들어온 건 바로 그때였다. 밝은 오렌지빛으로 머리카락을 물들이고 돌아온 그는 올해 초 발표한 신곡 ‘신토불이’의 비장한 전주가 흐르는 어두운 무대 한가운데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네 멋대로 바람과 파도의 방향이 바뀌게 두지 않겠다는 결연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눈빛은 곡이 진행되는 3분여 동안 보는 이의 온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인내와 시련이 아이돌의 무대를 완성한다고 했다. 그 정의에 따르면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해 보인다. 후이가 지금 바로 그 완성의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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