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직접적 계기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일탈이다. 전광훈 한기총 대표회장이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면서 논란을 불렀다. 전 목사는 6월11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 대통령이 하야할 때까지 릴레이 단식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릴레이 단식이란 기실 참가자들이 교대로 ‘1일 단식’을 한다는 것이다.

보수 개신교인들의 희극적 소동이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지 않은 까닭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때문이다. 황 대표가 독실한 개신교인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스스로 “50년간 주일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법연수원 시절 야간 신학대를 다녔고 전도사 자격도 얻었다. 검사로 일하면서는 부임하는 곳마다 기도회를 조직했다. 정치에 입문한 뒤에도 당 내외 개신교 행사에 꾸준히 참석했다. 한기총발 ‘개신교 근본주의’가 황교안 대표를 통해 정치에 발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뒤를 잇는 ‘보수 개신교의 적자’가 황 대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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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회장은 일찌감치 황교안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지난 3월 황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에 이은 세 번째 지도자가 되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20일 MBC 보도에 따르면 전 회장은 교회 설교 도중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황교안 대표가 ‘내가 대통령 하면 목사님(전 회장)도 장관 한번 하실래요?’라고 말했다.” 전 회장은 이 발언 자체를 부인했으나 설교 영상이 남았다. 황교안 대표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신앙과 정치가 충돌할 때 황교안의 선택

교계 일각에서는 한기총의 ‘변질’을 지적한다(20~21쪽 인터뷰 기사 참조). 2010년대 초반 대형 교단들이 탈퇴하며 한기총의 세는 매우 약해졌다.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한기총은 이단 시비가 있는 일부 교단들을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지금의 한기총은 수적으로나 양적으로 개신교를 대표하는 단체가 아니다. 전광훈 목사처럼 극단적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 회장으로 선출된 것이야말로 이 집단의 절박한 상황을 드러낸다. 이런 배경을 살피면, 몰락 위기에 처한 개신교 근본주의 집단이 일방적으로 황교안 대표를 따라다니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황교안 대표와 개신교 근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접점은 황 대표 스스로의 언행에서 나온다. 단적인 사건은 지난 5월12일 부처님오신날에 벌어졌다. 이날 황 대표는 경북 영천의 은해사에서 열린 봉축 법요식에 참석했는데, 다른 참석자들과 달리 불교식 예법인 합장·반배를 하지 않았다. 아기 부처를 씻기는 의식 때도 호명됐으나 거부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차원에서 유감을 표명하는 등 논란이 일자 그는 “크리스천이라 절차나 의식에서 부족하다. 앞으로 잘 배우겠다”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조계종 총무원장인 원행 스님을 만난 자리에서도 그는 합장 대신 악수를 청했다. ‘절차가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의식적인 합장 거부에 가까워 보인다.

이 태도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가령 울산대 이정훈 교수(법학과)는 〈기독일보〉 기고에서 “예의상 불교 행사에 참석한 기독교도 정치인에게 종교의식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바로 예의고 상식이다”라고 썼다.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불교식 의례를 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부당하며, 오히려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같은 글에서 이 교수는 “교회 예배에 참석한 불교도 정치인에게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연합뉴스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오른쪽)가 3월20일 전광훈 한기총 대표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분명 정치인에게 ‘종교 중립 의무’는 없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정치인들은 여러 종교행사에 참석해 기꺼이 그 예법에 따른다. 정당 대표나 대권 주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특히 그렇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04년 당 대표가 된 직후 명동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하고 조계사에서 108배를 한 뒤 영락교회 예배에 참석한 일은 유명하다. 개신교를 믿는 정치인들도 대부분은 타 종교 의식을 거부하지 않는다. 표를 따져보면 그러는 편이 유리하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으로 개신교 신자 수는 국내 1위지만, 불교와 천주교 신자를 합하면 그보다 많다(18쪽 인포그래픽 참조). 그래서 개신교인 정치인은 지역구 교회들의 새벽 기도에 나가는 등 ‘교인 유권자’들은 따로 챙기되, 다른 종교에 책잡힐 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종교를 가진 정치인 다수와 달리 황 대표는 여론의 지지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종교의 행사를 따를 수 없다는 모습을 보였다. ‘우상 숭배’를 금하는 개신교의 가르침 때문일 것이다. 다른 개신교 정치인들에게 합장·반배는 ‘그리 크지 않은 일탈’일 뿐이다. 그러나 황 대표는 ‘용인될 수 없는 배교’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 종교를 우선시하는 인물인 것이다. 신앙과 표, 신앙과 정치, 신앙과 법, 신앙과 행정이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는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그 선택이 신앙이라면, ‘정치인 황교안’은 위험한 인물이라고 간주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황교안 대표는 법조인 출신이면서도 법보다는 종교에 우선적 지위를 부여하는 언행을 보여왔다. 법무부 장관 시절인 2015년 황 대표는 〈교회가 알아야 할 법 이야기〉라는 책에서 ‘교회법과 세상법, 어떤 것이 우선될까?’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일단 “세상법이 교회법보다 우선 적용된다”라고 스스로 답했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 대해, “아쉽게도” “마땅치 않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같은 표현을 통해 누차 유감을 표시한다. “하나님이 이 세상보다 크고 앞서시기 때문이다.”

“국무총리는 하나님이 주신 상”

‘사법시험을 주일(하나님이 천지창조 이후 안식하신)에 치르는 것이 정당한지’ 혹은 ‘안수기도가 폭행죄에 해당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황 대표의 판단은 세속국가의 공직자라기보다 종교인에 가깝다. 예컨대 “헌법재판소가 주일에 사법시험을 치르는 것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것은 유감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라며 ‘성숙한 행정’을 주문한다. 안수기도의 폭행죄 성립 여부를 설명하는 부분은 이 책의 백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나라가 기독교 국가는 아니므로 기독교를 좀 더 깊이 이해해주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선한 의도로 환자를 고쳐주기 위해 안수기도를 하면서 약간의 물리력을 행사한 것도 범죄가 될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법조인 출신 대권 주자’ 황교안 대표가 법이나 표보다 우선시하는 신앙은, 현세의 가치와 거리를 두는 ‘초탈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신앙은 세속의 이득과 매우 밀접하다. 가령 2017년 10월22일 경기도 남양주의 한 교회에서 황 대표는 이렇게 간증했다. “‘믿으면 복 받는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기복 신앙’이라고 한다. 하지만 히브리서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은 상 주시는 분이기도 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사법고시 합격과 검사 보임,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재직을 ‘상’으로 받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인 것이다. 다른 간증에서는 “가뭄이 극심할 때 기도를 하자 2주 뒤에 비가 내렸다”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 통과를 위해 기도하자 통과됐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황 대표가 믿는 신은 천문 기상은 물론 개인의 국가고시와 공무원 임용, 법안 처리 등을 관장하는 주술적 존재다. 그래서 그는 당장 표를 좀 잃거나 법을 등지더라도 ‘믿음’을 우선시한다. 결국 이득으로 돌아온다는 ‘경험’이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경북 영천 은해사 봉축 법요식에 참석한 황교안 대표( 가운데). 다른 참석자와 달리 합장·반배를 하지 않았다.


‘은혜’를 받은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은 ‘악’이다. 황 대표의 ‘교회 밖 종교 발언’은 대체로 정치적 반대파를 비난하는 데에 쓰인다. 지난 3월 그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폭행 의혹 사건과 자신을 연관시키는 이들을 두고 “악한 세력” “검은 모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은 “천사”라고 칭했다. 지난 4월 ‘광화문 장외투쟁’을 하면서는 “문재인 정권이 ‘좌파 천국’을 만들어놨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29일 한 특강에서는 “민주노총의 불법 천국”이라고도 했다. 지난달 ‘민생투쟁 대장정’을 마친 뒤에는 “현장은 지옥과 같았고 시민들은 살려달라고 절규했다”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일자 그는 “특정 종교의 관점에서 말씀드린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이 논란을 부르는 까닭은 개신교 용어를 써서가 아니다. 상대를 악으로 간주하는 근본주의적 발언에 종교를 동원했기 때문이다. ‘타 종교에 대한 배려’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정치종교사회학 연구자인 정태식 교수(경북대)는 “정치인이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정치에 임할 때 주술과 근본주의의 출현은 필연적이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정치와 종교는 대립할 수밖에 없다. 목적과 운영 법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치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 간의 타협이다. 반면 종교, 특히 기독교와 같은 ‘구원 종교’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다. 인간의 구원을 추구하고, 인류애를 강조한다. 교리는 신에게서 나왔기에 인간들이 합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다만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뿐이다.

이렇게 대척점에 있는 정치와 종교를 결합하면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 정치’라는 기괴한 결과로 이어진다. 종교의 원리를 수용한 정치는 더 이상 타협을 미덕으로 삼을 수 없다. ‘악’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정치의 속성을 받아들인 종교는 상대적 가치로 전락한다. 만인의 구원과 보편적 인류애 대신 ‘나와 우리 집단’의 배타적 특수이익을 지향하게 된다. 막스 베버는 주술로 변질된 종교를 ‘공동체 종교집단(community cult)’이라고 칭했다.

황교안 대표의 신앙에서 보수적 대형 교회에 다니는 것, 극단적으로 평가가 갈리는 종교 지도자와 가까운 것, 다른 종교에 친화적이지 않은 것 등은 오히려 부차적 문제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물망에 오르는 그의 언행에서 ‘타협을 용인하지 않는 전근대성’이 짙게 드러난다는 점이야말로 무서운 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황 대표는 신이 인간사 전체에 관여한다는 종교적 해석을 온전히 믿으며, 이 해석이 세속에서 독점적 진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을 아쉬워한다. 자신의 입신양명을 성실한 신앙생활에 대한 보상으로 여긴다. 이 논리를 뒤집으면 황 대표만큼 보상받지 못한 이는 신심이 부족한 것이다. 자신의 정치행위는 선하고, 여기 반대하는 자는 악하다고 판단한다. 종교적 확신으로 무장한 그는 정치적 손해나 여론의 조롱을 받아도 여간해선 자신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물론 고난도 있다. 사도 바울도 순교를 당했다. (…) 믿는 자는 고난을 이길 수 있다(2017년 10월 남양주 창대교회 간증).”

‘대권 주자 황교안’에게 종교관은 걸림돌일까? 단정하기 어렵다. 한 교계 인사는 “황 대표의 교회 간증은 인기가 높다. 유명인이라서가 아니라 이야기에 감동받은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간증에서 그는 보통 “열 살 때 ‘사탕 사먹을 돈을 준다’는 누나의 말을 듣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라며 말문을 연다. 사탕에서 사법고시 합격으로, 장관으로, 총리로 이어지는 주술적 성공담의 결말은 무엇일까?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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