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지 그림

 

일본 스모 선수들의 출렁거리는 배는 아직도 힘의 상징이다. 과거에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랬다. 불쑥 내민 배는 출세와 부의 심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산허리처럼 불룩 나온 배는 힘이 아니라 흠이다. 그 탓에 과시용으로 내밀던 배를 와이셔츠 뒤로 감추거나, 허리띠로 꾹꾹 눌러놓는 사람이 적지 않다. 모두 비만의 지뢰 같은 위험성이 거듭 확인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비만은 ‘지랄탄’처럼 언제 어떤 병으로 튈지 모르는 ‘예비 질환’이다. 그런데도 비만 인구는 줄기는커녕 무섭게 늘고 있다.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의 31.5%가 비만이거나 과체중이다. 특히 20, 30대 비만 인구의 증가가 가파르다. 전문가들은 이제 비만을 ‘공공의 적’을 넘어서 ‘콜레라나 페스트와 같은 역병(돌림병)’이라고 말한다. 어쩌다가 비만이 이렇게 위험한 존재가 되었을까.      

 

성인이라면 누구나 비만에 대한 상식 두세 가지쯤은 알고 있다. 체질량지수(BMI=체중/신장㎡)로 비만도를 측정하고,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의약품이 두 가지라는 것도 그 중에 속한다. 아마 더 많은 상식을 알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비만 전문가들은 ‘대부분 틀렸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시중에는 비만과 관련한 온갖 설이 난무한다. 과연 진실은 얼마나 될까.

1년에 40만명씩 '비만 인구' 편입 : 가장 확실한 설은 비만 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나라 비만 인구를 관찰해온 오상우 교수(동국대병원?비만클리닉 소장)에 따르면, 한국의 비만 인구(체질량지수 25kg/㎡ 이상)는 그야말로 ‘날쌔게’ 늘고 있다. 지난 봄, 그는 2005년 제3기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토대로 우리나라의 비만 유병률을 살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의 비만 유병률은 31.5%(남자 35.1%, 여자 28.0%)였다. 그러니까 20세 이상 성인의 약 1126만4000명이 비만이거나 과체중이었다”라고 오 교수는 말했다.

이는 1998년 비만 유병률보다 5.2% 늘어난 수치이다. 인구수로는 약 281만명이 늘어났다. 이를 7년으로 나누면 연평균 40만명 이상이 지나치게 살이 쪘다는 말이다. 물론 저절로 몸집이 불었을 리 없다. “육류 중심의 식습관과 적은 운동량이 1차 원인으로 분석된다”라고 오 교수는 말했다. 특이한 점은 연령대별?성별 유병률인데, 50대 남자들이 42.0%로 가장 높았다. 비교적 건강한 나이로 인식되는 20~30대 남자들도 적지 않아서 각각 25.2%와 38.0%가 비만이었다(표 참조). 인구수로는 98만6000여 명과 166만 여명.

남녀 간의 연령대별 유병률에도 차이가 있었다. 20, 30대 남자 유병률은 25.2%와 38%였는데, 같은 나이대 여자는 13.2%와 19.5%에 불과했다. 또 남자는 유병률이 20대부터 꾸준히 증가하다가 50대에 내리막길에 접어드는데, 여성은 20, 30대에는 비교적 낮다가 50, 60대에 갑자기 43.1%와 47.0%로 껑충 뛴다. 오상우 교수는 그 이유를 “여성들의 경우 젊어서 몸매에 신경을 쓰다가, 폐경기가 되면서 여성 호르몬의 영향으로 몸무게가 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비만 유병률은 거주지와 학력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예컨대 대도시와 중소 도시는 각각 30.0%와 30.9%였는데, 농촌 지역은 36.5%가 넘었다. 몸을 재게 놀려야 하는 농민들의 비만도가 높은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에 대한 스트레스와 그에 따른 과식 탓으로 보인다. 학력이 높을수록 수입이 많고 잘 먹어서 비만 인구가 높을 것 같은데 실제는 정반대였다. 초졸자와 중졸자는 유병률이 38.0%, 39.2%였는데, 고졸자와 대졸자 유병률은 29.6%와 27.4%밖에 안 되었던 것이다. 흡연을 하는 사람과 안하는 사람 간에도 35.2% 대 29.0%로 적지 않은 차이가 났다.    
 

 

비만한 20·30대, 고혈압과 당뇨에 무방비 :  널리 알려진 대로 비만은 각종 질환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질환만 열 가지가 넘는다. 대표 질환이 당뇨병과 고혈압이다. 미국의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제2형 당뇨병의 61%와 관상동맥 질환과 고혈압의 17%가 비만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도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비만한 사람이 정상인에 비해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2배, 고혈압에 걸릴 확률이 1.5배나 높았다.

지난해 제2형 당뇨병 환자 5700명의 체질량지수를 재봤더니, 46.7%가 비만(체질량지수 25kg/㎡ 이상)이었다. 이는 우리나라 성인들의 비만 유병률 31.5%를 크게 웃도는 수치이다. 비만이 그만큼 당뇨병과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만 해도 당뇨병 환자의 70%가 빼빼 말랐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뒤바뀌었다”라고 안유배 교수(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내분비내과)는 해석했다.  

대한비만학회 자료는 좀더 심각하다. 체질량지수가 높은 20, 30대들이 40세 이상의 중장년층에 비해 고혈압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았던 것이다. “당연히 비만도가 올라가면 당뇨병에 걸릴 위험도도 커진다. 가령 체질량지수 21kg/㎡인 남자가 당뇨병에 걸릴 위험도를 1이라고 하면, 체질량지수가 28kg/㎡인 20, 30대 남성의 발병 위험도는 4로 껑충 뛴다. 체질량지수가 32kg/㎡가 되면 더 무시무시해서 30대 발병 위험도는 7로 널뛰기하고, 20대는 9까지 솟구친다. 오상우 교수는 “최근 고혈압?당뇨병 환자가 늘고 있는 것은 이같은 변화가 반영된 결과다”라고 말했다.    

실패로 끝난 '비만 퇴치' : 비만은 심혈관계 질환과도 ‘심각한 관계’가 있다. 그 사실을 확인하려면 심혈관계 질환의 발병 인자를 알아야 한다. 크게 두 가지다. 전통적 위험 요소인 고혈압과 고혈당, 그리고 신규 위험 요소인 복부비만 및 HDL 콜레스테롤, 중성지방이 그것이다. 이 중 복부비만이 발생하는 배 부위는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의 저장 장소여서, 심혈관 질환과 대사증후군의 발병을 지휘하는 핵심부로 지목된다. 지방 조직이 단순히 지방만 저장하지 않고 대사 및 심혈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화학물질을 분비해, 심혈관 질환 및 대사 질환 위험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허리둘레가 90cm(36인치) 이상 되면 위험은 3배 가까이 늘어난다.
 

ⓒ시사IN 한향란비만에 걸린 사람은 건전한 운동 습관(위) 등으로 체중을 감량하지 않으면 합병증에 걸릴 위험이 크다.

사망률도 비만의 영향을 받는다. 미국에서 7만5000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평균 체중보다 40% 정도 더 무거운 사람의 사망 확률이 1.9배 더 높았다. 최근에는 복부 비만(허리둘레 94cm 이상)이 발기부전을 초래한다는 연구 보고도 나왔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성인들의 복부는 점점 ‘남산’만 해지고 있다. 이승환 교수(연세원주의대?순환기내과)는 얼마 전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우리나라 성인의 복부 비만 성적은 65.2%만이 합격이고, 나머지 34.8%(남성 31.2%, 여성 37.4%)는 위험하거나 경고를 받을 만한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그 외에도 비만은 각종 암과 대사증후군, 골관절염, 요통, 통풍, 뇌졸중 같은 중병과도 심각한 관계를 맺고 있다. 

비만 전문가들의 주장이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비만의 위험이 확산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또 이대로 가면 비만이라는 역병이 더 많은 사람을 고통 속에 몰아넣을 거라는 사실도 명백하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는 대비책이 거의 전무하다. 비만 퇴치는 어려운 일이다. 비만 연구의 대가 조지 브레이 교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퇴임 연설에서 자신이 수십 년간 앞장섰던 비만 퇴치 운동이 실패했음을 자인했다. “평생 비만을 잡으려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비만의 책임을 각 개인에게 돌린 게 잘못이다. 충치 예방처럼 정부가 나서서 열량 낮은 음식을 공동 배급하고,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더 적극 제공했더라면 성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지금도 늦지 않았을지 모른다. 각 개인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국가가 비만을 관리하는 체제가 빨리 가동되어야 한다. 그래야 위에 나열한 수많은 위험들이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질 것이다.       

 

의료보험으로 '배불뚝이' 구조?  

대한비만학회는 요즘 비만에 대한 신속한 보험 급여 실시를 주장한다. 이유가 있다. 대한비만협회 자료에 따르면, 비만은 쉽게 치유되지 않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며 사망률을 크게 늘린다.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비만에 걸리면 그 그늘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1998년 현재 우리나라의 비만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은 1조17억원으로 추산된다. 2005년은 약 1조8000억원.

강재헌 교수(인제의대 서울백병원 비만클리닉 소장)에 따르면, 이미 영국과 호주 등지에서는 비만에 대해 의료보험 급여를 실시하고 있다. 부자 나라 스웨덴은 아예 배리애트릭(비만 치료를 위해 위나 소장을 잘라내는 수술)까지 보험 급여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반론도 없지 않다. 다른 질환과의 형평성이 문제다. 한 직장인은 “비만은 본인이 많이 먹고 운동을 안 해서 생기는 거 아닌가. 그런 질환에 보험 급여를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고도 비만(체질량지수 30kg/㎡ 이상)이 (보험 급여가 되는) 고혈압?당뇨병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게다가 비만 유전자 탓에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비만해진 사람도 많다”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관망하고 있는 듯하다. 일단 비만 인구가 어마어마하고, 그 대상을 선정하기가 수월치 않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망설이는 보건복지부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일단 혼자서는 도저히 비만에서 탈출할 수 없는, 체질량지수 35kg/㎡ 이상의 고도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보험 급여를 해보자. 그런 다음 비용 대비 효과가 있으면 확대를 하고, 비용 대비 효과가 없으면 접으면 된다.” 이래저래 보건복지부의 고민만 ‘비대’해지고 있다.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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