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나요
정남준 지음, 빨간집 펴냄

“호단 인나마(스리랑카 말로 ‘잘 지냅니다’라는 뜻).”

부산 영도구 대평동에는 10여 곳의 수리조선소와 200여 개에 달하는 선박 공업사·부품업체가 있다. 정남준 사진가는 2017년 봄부터 이곳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부산을 상징하는 노동이 뭘까, 그중에서도 고된 노동이 뭘까’ 생각했다.
조선소의 여러 작업 중 ‘깡깡이’이란 게 있다. 왁싱 작업을 해도 선박 외판에서 떨어지지 않는 갑각류나 녹슨 철판을 망치나 그라인더로 긁어내 도장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노동이다. 저임금 중노동 작업이고 대부분 고령의 여성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들이 담당한다. 저자는 사진으로 그들의 안부를 물었다. 그중 71장을 골랐다. 저자에 따르면 대평동의 봄은 ‘작업화 아래 숨어서 간신히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가장 보통의 드라마
이한솔 지음, 필로소픽 펴냄

“이렇게 촬영하다 죽을 것 같아요.”

새벽 5시, 서울 상암동의 새벽은 스산하다. 가을인데 롱패딩을 입고 하나둘 모여드는 사람들은 드라마 스태프이다. 주 100시간의 촬영 스케줄을 소화하는 이들의 얼굴엔 수척함이 묻어난다. 드라마 제작 현장의 실태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2016년 가을, 〈혼술남녀〉의 조연출이던 형 이한빛 PD를 떠나보낸 후 방송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설립했다. 한류 열풍 이후 드라마 제작 시스템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피고 조연출과 계약직, 여성과 아동·청소년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사례를 모았다. 저자는 스태프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그러려면 제작 현장이 바뀌는 수밖에 없다. 그건 형의 꿈이기도 했다.



북촌의 네버랜드
서채홍 지음, 사계절 펴냄

“아빠, 대나무로 삼절곤 만들어주세요.”

가족들과 삼청공원 산책을 나가면 가끔 누군가 “설마 모두 한가족이에요?”라고 물었다. 다섯 가족에 더해 민준이, 민겸이의 동네 친구들도 합류하면서 대가족이 되었다. 북디자이너인 저자는 우연히 들른 북촌마을에 마음을 빼앗겨 그곳에 정착했다. 아기 때부터 많이 아팠던 첫째 지원이가 차들의 소음에 예민하게 반응할 때였다. 낡고 복잡한 구조의 한옥을 고쳤다. 부뚜막을 철거하고 마당에 마사토를 깔았다. 한쪽에 트램펄린을 설치하자 동네 아이들이 놀러왔다. 세 아이의 아빠인 저자는 손재주가 좋아 손으로 뚝딱뚝딱 장난감을 만들어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다. ‘만들기 실용서’를 예상했는데 다 쓰고 보니 다섯 가족의 소소한 일상이 담긴 에세이였다.

팩트와 권력
정희상·최빛 지음, 은행나무 펴냄

“자살과 살인 등 사회악적 범죄를 기록한 이런 사기 사건은 유감스럽게도 대개 ‘권력형 비리’나 다름없었다.”

정희상 기자의 기사를 읽을 때마다 이번에도 ‘단군 이래 최대’라는 수식어가 나올까, 기대하곤 했다. 그러니 책 목차를 살피다가 웃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제이유그룹 사기 사건의 주인공 주수도를 다룬 3장의 제목이 ‘단군 할아버지 많이 놀라셨죠?’였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말해오긴 했지만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정 기자는 30년 기자 생활 동안 정말 단군 할아버지도 놀랄 수밖에 없는 기사들을 써왔다. 이 책에 담긴 사건만 해도 김학의 원주 별장 성폭행 사건, 조희팔 다단계 사건 등이 그렇다(조희팔 사건명에는 진짜 ‘단군 이래 최대 사기극’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사회적 파문을 몰고 왔던 저자의 수많은 기사 중 지면의 한계로 다 담지 못했던 사건들을 추려 눌러 담았다.

압록강 아이들
조천현 지음, 보리 펴냄

“압록강을 만끽하는 아이들, 그 표정이 밝아서 서럽다.”

3월의 압록강은 아직 얼어 있다. 그러나 얼음 위의 아이들 얼굴까지 얼어 있지는 않다. 언 강 위에서 웃음을 날리며 달리고, 얼음장 밑에서 물을 길어 올려 빨래를 한다. 여름의 압록강은 개구쟁이들 차지다. 소는 한쪽에 묶어 풀을 먹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물에 뛰어든다. 온몸이 새까맣게 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저자는 1997년부터 매년 20여 차례 압록강을 찾아 북녘의 풍경을 찍었다. 망원렌즈를 최대한 당겨 아이들의 표정을 포착했다. 압록강 803㎞를 샅샅이 누비며 사진을 찍어 공작원으로 의심받았다. 그렇게 찍은 사진 180여 점을 볼 수 있다. 계속 압록강을 찾아가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그리움”이라고 말했다.

픽스
워푸 지음, 유카 옮김, 현대문학 펴냄

“독자가 읽을 때 플롯은 ‘작가가 써낸 것’이 아니라 실은 ‘인물이 연기해낸 것’이다.”

2017년 타이완 서점가에서 가장 주목된 추리소설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누리는 작가 찬호께이의 〈망내인〉을 제치고 서점가 1위에 올랐다니 현지에서 저자의 명망은 대단한 듯하다. 지난 30년간 타이완에서 일어난 유명 범죄사건 7건을 모티브로 삼아 단편으로 재구성했다. 각각의 실제 사건에서 범인으로 체포됐던 이들이 모두 누명을 쓴 것임을 촘촘한 추리로 밝혀낸다. 이 책에 수록된 7개 단편엔 언제나 한 명의 작가와 그가 쓴 추리소설, 소설의 허점을 지적하는 ‘아귀’란 누리꾼이 등장한다. 소설 속의 작가들이 쓴 추리소설이 ‘속 이야기’라면, 그 작가와 아귀의 토론은 ‘바깥 이야기’인 액자소설인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픽스〉는 추리소설의 작법을 설명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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