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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다윗의 돌멩이를 꿈꿨던 노동운동가 유동우

시사IN 편집국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6월 20일 목요일 제6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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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상의 ‘괄호 속의 현대사’

#1

다윗의 돌멩이를 꿈꿨던 노동운동가 유동우

#2

그는 어릴 적부터 가난했다. 1949년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나무를 해다 팔면서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열아홉 살에 상경해 섬유공장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일했다.

#3

이러다 죽겠다 싶어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를 맞이한 건 열악한 노동환경과 확연한 계급 격차였다. 자포자기한 그는 잠시 성직자를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곧 전도의 대상이 이 땅의 노동자 그리고 자신임을 깨달았다.

#4

깨달음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섬유공장의 민주노조를 만들었고 살아온 일대기를 쓴 책 <어느 돌멩이의 외침>을 출간했다.

#5

중앙정보부가 가만있지 않았다. 민주노조를 결성한 유동우를 해고했고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했다. <어느 돌멩이의 외침>은 금서(禁書)가 됐다.

#6

1981년 8월에는 학림사건의 피해자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갈비뼈에 금이 가고 치아가 부러졌다. “다짜고짜 ‘공산주의자냐’고 묻기에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사회주의자네’라며 무차별 구타와 고문을 시작했다.” - 유동우

#7

집행유예로 출소 이후에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가난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는 신체적·정신적으로 황폐해졌다. 노숙을 전전했고 수차례 자살시도를 했고 극도의 대인기피증을 겪었다.

#8

2012년 학림사건 재심에서 대법원 전원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후, 그는 다시 일어섰다. 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에서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지난 상처를 이겨냈다.

#9

“어떤 이들은 자기 잘못이라는 자괴감에 시달리며 산다. 어울리지도 못하고, 나서지도 못하고 소리치지도 못한다.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혼자 잘 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우리가 지향했던 가치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면.”

유동우 씨는 올해부터 자신이 고문당했던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민주인권기념관 해설단으로 활동 중이다.

#10

이 카드뉴스는 시사IN 614호 정희상의 ‘괄호 속 현대사’ <치열하고 처절했던 어느 ‘돌멩이’의 삶>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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