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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이희호 이사장이 ‘다스(das)’라 불린 까닭

시사IN 편집국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6월 18일 화요일 제6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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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희호 이사장이 ‘다스(das)’라 불린 까닭

2. ‘이제 우리는 한 시대와 이별하고 있습니다.’ 이희호 이사장은 6월 10일 97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면한 지 꼭 10년이 지났다.

3. 새로운 모임에서 자기소개 할 차례가 되면 ‘히히호호’ 크게 웃고 시작했다.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에게 “이름이 희호라서 그렇다”고 말하면 모두가 그를 따라 웃었다.

4. 어느 날 큰오빠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를 우연히 읽게 됐다. “아버님, 계집애를 전문학교 공부를 시켜서 뭐 하시려고…” ‘계집애’라는 말을 곱씹으며 이희호 이사장은 다짐했다. ‘오빠, 두고 보세요. 나는 유학도 갈 겁니다.

5. 이희호 이사장은 제 손으로 학비를 벌며 일제강점기와 해방, 연이은 전쟁을 겪었다. 포기하지 않고 입학한 대학은 “여성들이 스스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우친” 장소였다.

6. 이희호 이사장은 ‘그녀’ 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그남’이 없는데 ‘그녀’가 왜 필요하냐고 생각했다. 그런 그를 대학 동기들은 독일어 중성 관사 ‘다스(das)’로 부르곤 했다.

7. 1962년 두 살 연하의 김대중과 결혼하면서 여성 지도자로 대성할 재목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들었다. 이희호 이사장은 김대중과의 동행을 남녀평등의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방법 중 하나로 봤다.

8. “내가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비하와 멸시의 관념으로부터 해방되고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서 여성을 대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아내의 도움이다. 아내 덕분에 나는 인류의 나머지 반쪽을 찾을 수 있었다.” ? 故 김대중 전 대통령

9. “여성 인권을 존중하고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한길을 걸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었으면 합니다.

-<이희호 평전> (한겨레출판, 2016)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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