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밴드의 이름을 언제 처음 들었더라. 대략 2010년대 초반 즈음이었을 것이다. 맨체스터 오케스트라(Manchester Orchestra)라고 해서 당연히 맨체스터 출신 밴드인 줄 알고 정보를 굳이 검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영국 밴드인 줄 지레짐작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 그것도 애틀랜타 출신 밴드였다. 애틀랜타는 참고로 흑인 비율이 미국 내에서도 높은 도시다. 뭐, 그렇다고 해서 백인 록 밴드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어느 정도 이례적인 경우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 맨체스터 오케스트라는 미국 밴드다. 영국 도시 이름을 버젓이 달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밴드의 리더인 앤디 헐이 영국, 그중에서도 맨체스터 출신의 전설적인 밴드들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그는 학창 시절 자신이 ‘외계인’인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고 한다. 주변에 그 누구도 취향이 비슷한 친구를 만나지 못한 탓이 컸다. 결국 홈스쿨링을 선택한 그는 자기만의 음악을 직접 하기로 결정하고 2004년 첫 앨범을 공개했다.

정규 앨범 총 5장을 발표한 맨체스터 오케스트라는 인디 록 팬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이름 중 하나가 되었다. 거의 전 앨범이 찬사를 받았고, 상업적 판매도 인디라고 하기에는 머쓱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물론 나는 여러분이 음반 5장을 다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가장 최근 작인 2017년 앨범 〈어 블랙 마일 투 더 서피스(A Black Mile to the Surface)〉면 충분하다. 최근 작인 동시에 최고작인 까닭이다.

맨체스터 오케스트라(왼쪽)는 미국 애틀랜타 출신 밴드다.

고백하자면, 오늘 무주산골영화제에 가면서 내내 이 음반을 다시 들었다. KTX 안에서 듣고, 시외버스 안에서 들었다. 서울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결국 네 번을 쭉 들었다. 도무지 끊을 수가 없었다. “이 앨범이 이 정도로 좋았나” 싶을 정도였다. 멜로디가 귀에 착착 감기고, 리듬은 딱 알맞은 정도로 내 청각세포를 자극했다. 그러면서도 곡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구분될 만큼 구성이 다채로웠다. ‘더 모스(The Moth)’ 에서처럼 몰아칠 땐 몰아치다가도 ‘디 에일리언(The Alien)’에서는 세상 아름다운 선율로 감동을 선사했다.

‘더 골드(The Gold)’ 라이브 압권

집에 돌아와서는 라이브 동영상을 싹 다 찾아봤다. 하긴, 이런 정도 수준의 밴드가 라이브를 못하면 그건 사기다. 물론 환상적인 음악과는 달리 절망적인 라이브를 선보였던 밴드가 없는 건 아니지만(누구인지 언급하지는 않겠다), 다행히 맨체스터 오케스트라는 라이브에서도 선수였다. 딱 하나만 꼽자면 ‘더 골드(The Gold)’ 라이브를 선택하길 바란다. 2018년 1월18일에 게시한 영상을 찾아보면 된다.

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앨범 하나가 너무 좋아서, 미친 듯이 반복해서 청취했던 경험 말이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기 전까지도 〈어 블랙 마일 투 더 서피스〉를 계속 들었다. 긴말할 필요 없다. 그냥 전곡이 베스트다. 딱 한 곡을 제외하고 모든 수록곡을 ‘The+단어 하나’로 통일한 것도 마음에 쏙 든다. 그리하여 결국 마지막 곡인 ‘더 사일런스(The Silence)’에 이르러 맨체스터 오케스트라는 자신들이 건설한 우주를 폭발적인 기세로 확장하는 데 성공한다. 앞으로도 한동안 나는 이 우주를 유영하며 탐험할 생각이다. 당신의 합류를 기다리면서.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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