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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사건’ 검찰 과거사위 위원, “공수처 설치 시급”

검찰 과거사위 활동을 하며 검찰의 민낯을 본 김용민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검찰의 권한을 견제할 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 검찰 과거사위 활동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2019년 06월 25일 화요일 제6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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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과거사를 들여다보고 반성하는 일’은 검찰로서 첫 경험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정보원·경찰과 같은 국가 권력기관이 자체 기구를 구성해 지난 과오를 반성한 것과는 달리, 검찰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야 과거사위원회를 처음 꾸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동안 검찰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정치 검찰’이라는 비판뿐만 아니라 제 식구인 검찰의 비리에는 눈을 감았다는 지적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 개혁을 우선순위로 내세웠다(<시사IN> 제506호 ‘검찰 개혁 재수, 이번엔 성공할까’ 기사 참조).

2017년 12월 시작된 법무부의 검찰 과거사위원회(이하 검찰 과거사위) 활동이 지난 5월 말 끝났다. 실무 기구인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하 대검 진상조사단)이 조사한 사건 17건에 대해 각각 재수사·검찰총장 사과 등을 권고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서는 문무일 검찰총장이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검찰은 기소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소하거나(MBC <PD수첩> 수사 당시 2009년 검찰 수뇌부는 ‘무죄가 나와도 좋으니 기소하라’고 지시했다고 검찰 과거사위는 밝혔다), 반대로 의도적으로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점(검찰 과거사위는 “검찰이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수사하며 당시 청와대 개입 여부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라고 발표했다) 등이 드러났다. 다만 공소시효나 징계시효가 지나 해당 검사를 형사처벌하거나 징계할 수는 없었다. 대신 검찰 과거사위는 그들의 이름을 기록으로 남겼다.

ⓒ시사IN 신선영
김용민 변호사는 법원과 검찰이 특정인에게 유·불리하게 사건을 처리할 경우 처벌하는 ‘법왜곡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장자연·김학의 사건 발표를 두고 다양한 비판이 일었다. ‘장자연 리스트’가 없다고 밝혀,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검찰 과거사위가 오히려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09년 수사 외압을 행사했다고 지목된 <조선일보>는 검찰 과거사위의 발표가 허위라고 주장했다.


김학의 사건이 검찰 과거사위 사건 목록에 오른 뒤, 김학의 전 차관과 윤중천씨가 구속되었다. 사건이 불거진 지 6년 만이었다. 하지만 검찰 과거사위가 밝힌 내용에 못 미치는 검찰 특별수사단의 수사 결과에 대해 ‘공수처 설치 등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더 보여줬다’라는 비판도 나왔다.

검찰 최초 과거사위 활동의 의미와 한계를 짚어보기 위해 6월7일 김용민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검찰 과거사위 활동을 하며 형제복지원 사건, KBS 정연주 사장 사건, MBC <PD수첩> 사건, 낙동강변 살인 사건,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의 주무위원을 맡았다. 김 변호사는 검찰 과거사위가 선정한 사건 17건 중 하나인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의 변호인이기도 했다(이러한 이유로 그는 검찰 과거사위가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룰 때는 아예 빠져 있었다). 당시 검찰은 국정원이 조작해온 증거를 그대로 재판부에 내면서 증거조작의 공범이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결과적으로 국정원 관계자만 기소되고 검사들은 불기소됐다.

검찰 과거사위 활동을 하며 한발 더 다가가 ‘검찰의 민낯’을 본 김 변호사는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했다. 검찰의 권한 집중과 이를 견제할 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한 것이, 검찰 과거사위 활동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자체 과거사 조사는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검찰 방어논리는 ‘준사법기관’론이었다. 일종의 사법부 역할을 하기에, 수사·재판 기록을 외부인이 함부로 들여다보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형사 절차에서 제일 중요한 건, 수사·기소·재판인데 그렇게 따지면 수사를 맡는 경찰도 준사법기관인가? 이 논리도 문제가 많지만, 해당 논쟁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번 검찰 과거사위는 검찰총장의 감찰권 행사 방식으로 법적인 근거를 두었다. 이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는 매우 아쉽다. 검찰총장의 감찰권 행사라, 검사가 반드시 포함된 대검 진상조사단이 기록을 살피고 조사했다. 법무부 장관도 감찰권이 있어서, 이를 행사하는 방식이었다면 외부인으로 구성된 검찰 과거사위가 기록을 보고 조사할 수 있었다. 검찰 과거사위는 대검 진상조사단의 보고를 받을 뿐이었다.

검찰의 과오를 되돌아보는 위원회에 당사자인 검사들이 들어간 데에 대한 아쉬움인가?


개혁 대상이 스스로 개혁하기는 매우 어렵다. 예를 들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스스로 징역 1년 살고 반성문 10장 정도 쓰지만 노역은 하지 않겠다고 판단했다면 우리는 그 결정을 신뢰할 수 있나. 여전히 검찰은 스스로 개혁 대상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

실제 검찰 내·외부에서 검찰 과거사위와 대검 진상조사단 활동을 방해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대검 진상조사단 일부 외부위원들이 기자회견을 했다. 조사 사건 관련 검사 중 일부가 외압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민·형사 조치를 운운해서 압박을 느낀 단원이 조사와 보고서 작성을 중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김학의 사건을 1차로 불기소했던 김 아무개 검사가 검찰 과거사위 회의에 들어왔다. 파견 역할이었다. 김학의 사건은 검찰 과거사위 출범 전부터 검찰권 남용의 대표 사례로 꼽혔다. 검찰 과거사위 사건에 올라갈 가능성이 아주 컸는데도, 관련 검사가 이 사건을 조사하는 위원회에 들어와 있었다. 당시 법무부가 이 사실을 몰랐다 하더라도, 해당 검사 스스로 위원회 참여를 거부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래도 검찰 과거사위의 성과를 꼽자면?


철저한 실체 파악은 기본이고, 세 가지 정도 목표가 있었다. 피해자 구제, 가해자 책임 규명, 제도 개선이었다. 어떤 사건은 실체 규명부터 막혔고, 어떤 사건은 실체 규명은 됐지만 가해자 처벌을 못했다. 이처럼 개별 사건의 특성에 따라 상황이 다르지만, 공통적인 성과는 있었다. 지금까지 의혹으로만 존재하던 검찰의 과오를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검찰 개혁과 제도 개선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 또한 소위 ‘말아먹은 사건’의 공통된 특성도 발견했다. 기록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어떤 기록이 사라졌나?

가장 잘 알려진 ‘기록 실종’은 장자연 사건이다. 장자연씨 등의 1년치 통화기록 원본이 사라진 것뿐만 아니라 디지털 포렌식 보고서는 물론이고 유족이 제출했다는 음성 녹음 파일도 없었다. 다른 사건도 마찬가지다. 특히 중요한 사건의 기록이 사라졌다. 민간인 사찰 사건에서는 중요 압수물인 USB가 없어졌다. 1차 수사 당시 ‘대포폰’ 통화 내역이 사라졌다가 2차 수사에서 일부 발견됐다. 이명박 청와대 개입을 입증할 중요 자료로 추정되는 것이었다. MBC <PD수첩> 사건 조사에서도 수사기록이 모두 사라졌다. 대검 진상조사단이 서울중앙지검에 수사기록 제출을 요구했는데, 보존하고 있지 않다는 회신을 받았다. 낙동강변 살인 사건에서도 초기 경찰이 만든 수사기록의 상당 부분이 사라졌다. 이 밖에도 기록이 사라졌다는 점을 여러 차례 발견했다(25쪽 기사 참조).

ⓒ시사IN 이명익
5월22일 ‘김학의 전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규탄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라고 밝힌 여성이 발언하고 있다.

이번 검찰 과거사위가 밝힌 사건들을 보면 초동수사가 엉망인 데다, 기록이 사라지고, 본질이 아닌 혐의로 기소하기도 했다. 장자연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한 통제 방안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검찰 과거사위가 권고한 ‘법왜곡죄’ 도입이다. 법원·검찰이 의도적으로 특정인에게 유·불리하게 사건을 처리할 경우 처벌하는 내용이다. 기록을 분실하거나 관리를 소홀히 해도 처벌할 수 있다. 지금은 기록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도 실수라고 주장하면 처벌할 방법이 없다. 무능했지, 잘못이 아니라고 나오면 직권남용·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하기 힘들다. 또 다른 방안으로는 기록 자체를 전산화해 바로바로 등록하는 것이다. 그래야 캐비닛 같은 곳에다 기록을 넣어놓고 목록에 올리지 않다가, 검찰의 판단에 불리하게 작용할 기록이면 자연스레 없애버리는 행태를 막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형사기록을 검찰에서만 보관할 게 아니라, 별도의 독립된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혹은 법무부에라도 같은 기록을 보관시켜야 한다. 그래야 지금처럼 기록이 사라져도 찾을 수 있다. 사후 조작 여부 등도 크로스체크할 수 있다.

검찰 과거사위 활동 덕분에 그나마 ‘기록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긴 했다.

성과다. 의혹이 제기되었어도, 기록을 다 뒤져보지 않으면 지적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지금은 어디가 비어 있는지 안다. 당장 중요한 결론을 못 낸 것은 매우 아쉽지만, 향후 재조사할 기회가 생기면 이어받아서 다시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지 않을까. 다만 검찰 책임을 묻는 부분은 공소시효 탓에 대부분 실패했다. 대신 기록을 살펴봄으로써, 검사 사회에 ‘과오가 있는 사건은 언제든지 재조사될 수 있고, 그것이 드러날 수 있다’라는 점을 알렸다. 검찰이 수사·기소권을 행사할 때 견제할 수단이 많지 않은데, 과거사를 들여다보면서 한번 견제가 되었다.

검찰권 견제 측면에서, 이제까지는 기소해서 생긴 문제가 두드러졌다. 그런데 기소하지 않는 것도 심각한 권한 남용이다. 김학의 사건이 대표 사례다.


검찰이 기소하지 말아야 할 사건을 기소할 경우,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해 결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 기소를 해야 할 것을 기소하지 않고 축소하는 것은 견제할 방법이 없다. 그나마 있는 보완 장치가 재정신청(검사가 불기소하면, 고소·고발인이 법원에 이를 다시 따져달라고 묻는 절차)이다. 재정신청도 한계가 있다. 법원은 검찰이 수사한 내용만 보고 기소 여부를 판단한다. 검찰 수사가 부실하면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과거 김학의 사건에서도 재정신청이 기각됐는데, 이번 검찰 과거사위가 지적했듯 수사 자체가 부실했다. 이를 견제하려면 별도의 이의신청 제도가 필요하다.

검찰 과거사위 권고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공수처) 설치가 들어간 이유도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 검찰이 권한을 남용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 권한은 집중되어 있지만 견제할 장치가 거의 없다. 검찰이 수사권·기소권을 다 가지고 있으니 ‘무죄가 되어도 상관없으니 기소해라((<PD수첩> 사건 당시 검찰 수뇌부)’라는 말도 안 되는 지시를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형사 절차는 크게 수사·기소·재판으로 이뤄진다. 각 단계는 각기 다른 기관이 맡아 서로 견제하고 통제하는 게 맞다. 실제로 외국은 경찰·검찰·법원이 각 단계를 나눠 맡는다. 이 부분은 경찰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이냐와 연결되어 있지만 우선 검찰 개혁에 국한해서 말하면,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는 게 검찰 개혁의 시작점이고 종착점이다. 현재 검찰이 모두 가진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기까지는 매우 험난한 길이 예정되어 있다. 그래서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으로서 공수처가 시급하다. 검찰권 견제가 얼마나 중요하냐면, 수사권이 없는 검찰 과거사위 활동만으로도 김학의·장자연 사건 재수사로 기소된 이들이 나왔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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