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미술 경매장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옥션하우스〉의 출연진. 왼쪽부터 정찬, 윤소이, 김혜리, 이유정, 정성운
MBC 드라마 〈옥션하우스〉는 일요일 밤 11시40분에 시작한다. 드라마 방송시간대치고는 ‘서자(庶子) 같은’ 시간대다. 그런데도 ‘미드’(미국 드라마)에 익숙한 젊은 층은 이 드라마를 일부러 찾아서 본다. 그들은 미술 경매장을 배경으로 한 〈옥션하우스〉에서 ‘미드’의 냄새를 맡는다.

〈옥션하우스〉와 미드와 닮은 점은? 우선 내용이 그렇다. 〈옥션하우스〉는 미술 경매장을 배경으로 경매사라는 새로운 직업 세계를 보여준다. 전문가 직업 세계를 훑는 것. 미드의 특징이다.

내용뿐만 아니다. 제작 시스템도 미드와 닮았 다. 첫째, 미드처럼 주 1회 방송한다. 한국 드라마의 대세는 주 2회 미니시리즈이다. 한 주에 드라마를 2회 연속으로 보는 것에 익숙하다. 반면 미국 드라마는 주 1회 방송이 대세다. 주 1회 방송하느냐, 주 2회 방송하느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드라마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친다.

두 번째, 공동 창작 시스템이다. 미드를 보면 매회 연출과 극작가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공동작업 시스템이 보편적이다. 〈옥션하우스〉도 손형석, 김대진, 강대선, 이정효 4명의 연출가(PD)와 김남경, 진헌수, 권기경, 김미현 4명의 작가가 편마다 각각 짝을 이루어 작업한다. 12부작이니까 프로듀서 1인이 세 편씩 연출한다.

이런 공동 연출이 가능한 것은 〈옥션하우스〉가 에피소드 중심이기 때문이다. 〈CSI〉 같은 미드는 매회 에피소드로 나뉘어 어느 회를 보아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그에 비해 그동안 한국 드라마는 내용이 연속물로 이어져 이전 회를 안 보면 내용을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옥션하우스〉는 ‘에피소드’에 충실하다. 한 편 한 편이 독립적이다.

어떻게 이런 제작 시스템을 시도하게 되었을까. 〈옥션하우스〉의 탄생은 지난해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에서 1975년까지, 1970년대 초반 출생인 젊은 프로듀서 네 명이 소모임을 만들었다. 주로 〈베스트극장〉으로 ‘입봉’한 젊은 PD들이다. ‘어깨너머로 배워야 하는’ 방송사에서 서로 ‘노하우를 공유해보자’는 취지였다. 방송사 내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이런 모임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비슷한 연령대에다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모임이 가능했다. 이들은 한 주에 한 번씩 미국 드라마, 일본 드라마를 보고 토론을 했다. 〈위기의 주부들〉 〈프리즌 브레이크〉 〈24〉 따위 미드가 텍스트였다. DVD에 포함된 부록(서플먼트)은 미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엿볼 수 있는 좋은 참고서였다. ‘몇 명의 작가가 대본을 쓰는지 세어볼 정도로’ 꼼꼼히 살폈다.

ⓒ시사IN 한향란〈옥션하우스〉는 김대진 프로듀서 등 젊은 프로듀서 4명이 공동으로 연출한다.
젊은 연출가 4인과 작가 4명이 의기투합

거기에 뜻이 맞는 작가들이 합류했다. 김남경· 진헌수 작가가 함께했다. 김대진 PD는 “연출가니 작가니 그런 거 따지지 말고, 창작인으로 모이자고 의기투합했다”라고 말했다. 일 주일에 한 번씩 토론하고, 술 마시고, 노는 사사로운 모임이었다. 그러다가 실전에 대입해보자는 말이 나왔다. 때가 지난해 말이다. 내부에서 어떤 아이템이 좋을까 공모도 했다. 미국 장르 드라마들이 특정 직업 세계를 파고드는 것처럼 해보자는 분위기였다. 그때 나온 아이디어가 ‘미술 경매사’였다. 당시 〈베스트극장〉이 시청률과 수익률 때문에 존폐 위기에 놓일 때였다. 김대진 PD는 “〈베스트극장〉이 없어진다니, 이 아이디어를 기획안으로 만들어 비는 시간대에 들어가보자는 제안이 우리 사이에서 나왔다”라고 말했다. ‘크리스마스를 반납하고’ 취재를 했다. 경매장, 화가, 미술 담당 기자, 복원 전문가 등을 만났다.

공동 작업을 시작하면서, 다른 PD로부터 조언도 받았다. 작가 두 명(권기경·김미현)도 새로 합류했다. 처음부터 12부작 아웃라인을 잡고 시작했다. 그리고 주요 캐릭터를 서로 합의했다. 대본이 나오면 PD 4명, 작가 4명이 모두 함께 돌려 읽는다. 김대진 PD는 “시청률이 높게 나오기 어려운 시간대이다. 시청률이 낮더라도 ‘웰 메이드’ 드라마를 만들자는 공감대가 컸다”라고 말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드라마국 내부 설득이 쉽지 않았다. ‘경매사’라는 아이템을 시청자들이 잘 모른다는 지적이었다. ‘드라마는 아줌마들이 다리미질을 하면서 보아도 이해가 되어야 하는데’라는 통념을 돌파하기가 쉽지 않았다. 원래 1회부터 사건이 바로 치고 들어가는 내용이었는데, 그것도 ‘한국 드라마 문법’에서는 낯선 것이었다. 미드나 일드(일본 드라마)에서는 흔한 일이었지만. 결국 등장하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내용이 첫 회로 들어가게 되었다. 순서가 조정되었다.

바깥 여건도 꼬였다. 미술 드라마에서 ‘위작’과 ‘도난’은 흡인력 있는 소재이다. 그런데 미술 쪽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경매회사, 화랑, 화가들은 대본을 보고 난색을 표했다. 젊은 연출가·작가들의 새로운 시도 앞에는 난관이 많았다.

하지만 우군도 등장했다. 실제 모델이 된 박혜경 경매사와 미술 담당 기자들은 상세하게 디테일에 대해 조언해주었다. 배우들도 열심이었다. 배우 정찬은 괴팍하고 시니컬한 캐릭터를 연구하기 위해 ‘미드’를 열심히 보았다고 한다. 도회적 커리어우먼 역을 거의 처음 해보는 김혜리와 발랄한 캐릭터에 도전한 윤소이, 이유정, 정성운 등 배우의 ‘캐릭터 회의’가 남달랐다고 한다. 여기에 음악감독으로 작곡가 오석준이 가세했다. 연출도 경쾌하고, 음악도 경쾌하다.

시청자 반응은 좋은 편이다. 1회 시청률 7.8%, 2회 시청률 8.6%. 토요일 밤 11시40분에 방송되던 〈베스트극장〉의 시청률이 대략 5~6%였던 것을 감안하면 괜찮은 성적표이다.

김대진 PD에게 물었다. 주인공들이 경매장에서 연애하는 것 아니냐고(그동안 병원에서 연애하고, 법정에서 연애하는 드라마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김 PD는 이렇게 답했다. “경매장에서 주인공끼리 연애 안 한다(웃음). 절대 지양하기로 했다. 주인공이 연애하고, 또 누가 그 사이에 끼어들어 질투하고. 그런 드라마에 우리 모두 질려 왔기 때문이다.”

〈옥션하우스〉는 ‘시즌 드라마’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시청자가 〈옥션하우스〉 시즌2를 볼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젊은 연출가·작가들에게 ‘시청률’은 여전히 높은 장벽이다. 김대진 PD의 말처럼, ‘삼각관계가 없고, 출생의 비밀이 없고, 실장님이 등장하지 않는 한국 드라마가 가능할까’하는 의문에서 시작한 이 드라마의 다음 시즌 탄생 여부는 시청자 손에 달려 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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