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들어왔다. 오늘도 거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고양이 한 마리. 털이 하나도 없어서 쭈글쭈글하고 까칠하게만 보이는 녀석이, 닫힌 집안으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길이 없다. 고양이의 못생김이 손에 묻어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글로리아(줄리앤 무어)가 미간을 찌푸리며 손끝으로 녀석을 잡아 바닥에 내려놓는 첫 장면.

어쩌면, 슬프게도, 지금 그의 처지가 녀석을 닮았다. 50대라는 나이가 고양이처럼 삶에 숨어들었다. ‘쭈글쭈글하고 까칠하게만 보이는’ 자신의 초상이 내가 보는 거울 속으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길이 없다. 엄마의 나이 듦이 자신들의 삶에 묻어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식들은 자주 미간을 찌푸리며 의례적인 대화만 나누다 서둘러 자리를 뜬다.

이혼한 남편은 젊은 여자랑 살고 있는데, 글로리아에겐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클럽에 간다. 춤을 춘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아널드(존 터투로)를 만난다. 누군가의 애정 어린 눈길을 받아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른다. 손길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역시나, 슬프게도… 사랑, 참 어려운 거더라. 외로워서 시작한 연애, 할수록 더 쓸쓸해지는 거더라.

〈판타스틱 우먼〉으로 지난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칠레 감독 세바스티안 렐리오는, 어머니가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시나리오를 썼다. 어머니처럼 50대 중반에 접어든 여성들이 “점차 투명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이 안타까워 영화 〈글로리아〉(2013)를 만들었다.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이 쏟아졌고 상도 수없이 받았다. 그리고 5년 뒤, 할리우드 리메이크작 〈글로리아 벨〉을 직접 연출했다. 리메이크 영화가 이렇게 좋을 수가

원작을 매우 좋아했던 나는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원작의 매력을 잃어버린 리메이크 영화가 워낙 많았던 탓이다. 자신의 작품을 굳이 본인이 직접 다시 만드는 것도 마뜩지 않았다. 반복과 재탕일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글로리아 벨〉을 보고 나온 지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진짜 좋은 영화를 다시 만들어서 또 진짜 좋기가 쉽지 않은데, 이 영화는 진짜 진짜 진짜 좋다고.

끝내주는 연기를 보여준 주연 배우 줄리앤 무어가 그랬다. “혼자 사는 여성의 삶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영화가 별로 없다. 이 영화는 ‘평범한 여성’과 ‘보통의 삶’에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데, 글로리아가 겪는 모든 일상이 우리에게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평범한 여성’이 ‘보통의 삶’에서 겪는 ‘모든 일상’이라니, 말만 들어도 벌써 지루해죽겠는데 어떻게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는 거지? 믿기 어렵겠지만, 난 이 영화를 보며 많이 웃었고, 종종 슬펐으며, 때때로 서글퍼졌다가, 마침내 벅찬 감동에 휩싸였다. 50대의 삶에서 ‘모성’ 대신 ‘여성’을 길어 올린 흔치 않은 영화가, 이로써 둘이 되었다. 〈글로리아〉에게 〈글로리아 벨〉이라는 멋진 짝꿍이 생겼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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