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무잡잡하고 윤기 있는 얼굴. 종종 길게 늘어뜨린 금발. 많은 이에게 그의 첫인상은 건강하고 활동적인 느낌이었을 것이다. 원더걸스에서 맡은 역할도 래퍼이자 드러머. 그가 무뚝뚝하게 쪼아대는 듯한 목소리로 내뱉는 랩에는 조금 엉뚱한 구절이 들어갔다. “어때 88 나이도 딱 맞아 모두 다 맞아” “언제나 어디서나 날 따라다니는 이 스포‘트’라이‘트’” 같은 것들이다. 노골적인 라임과 리듬에 귀를 의심케 하는 가사. 팬들이 작사가를 원망하게 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흥이 일어나는 대목들이다. 유빈은 의기양양하게 이 구절들을 소화하면서 무대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OK 방금 한 건 알지만 또 한 번” ‘텔 미’라며.
원더걸스의 매력 고스란히 간직

그래서 유빈은 원더걸스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였다. 유쾌한 기분에 도취돼 눈을 흘기듯 웃어 보이는 깍쟁이 같은 이 그룹을 대중은 사랑했다. 노래와 퍼포먼스가 결합해 그런 인물상이 재현될 때 유빈은 화룡점정을 담당했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이 기획의 틀을 넘어설 만큼 저마다 멋지게 성장할 때 그는 수성하듯이 원더걸스 특유의 유쾌함을 지켜나갔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솔로 활동도 그런 맥락으로 보였다. 추억을 소환하기보다는 생경함을 강조하는 레트로에 천연덕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바쁘니까 얼른 고백하라고 하는 숙녀로, 또는 눈치 없는 구질구질함은 집어치우라고 진저리치는 인물로. 유쾌함 속에 까칠함이 담긴, 만만찮은 깍쟁이 캐릭터는 어떤 의미에서 원더걸스의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한 모습이었다.

연예인의 대외적 이미지와 속내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건 늘 허망한 일이다. 하지만 무대 밖의 유빈은 메이크업을 하지 않고 다니면 사람들이 못 알아볼 정도로 느긋해 보인다. ‘걸 크러시’ 같은 것은 잊었다는 듯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고 옛날 음악을 듣는다. 사실 알고 보면 털털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식의, 익숙한 연예인 평소 모습 이야기와도 조금은 결이 다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말을 해야’ 사람들이 알아본다고 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익살이나 욕심도 없이 드문드문 편안하게 던지는 그의 말은 차라리 수더분하다고 해야 할 정도다. 바로 그런 식의 묘한 ‘쿨’에서 대중이 익히 아는 유빈의 캐릭터가 연결점을 찾는다.

ⓒ시사IN 양한모
몇 년 전 엠넷(Mnet) 〈언프리티 랩스타〉에 출연했을 때 그는 (JYP 특유의 라임에서 얻은 누명을 벗어 보임과 동시에) 자신의 경력을 반추하는 대목을 남겼다. “흩어진 점” “이어진 선 따위 하나도 없는” “버려진 진주들 같은 경험”이라고 말이다. 활동하는 곡에 따라 이미지를 바꾸고, 솔로 싱글을 두 장 내고, 최근 〈스테이지 K〉로 첫 예능 고정 출연을 하는 그의 커리어를 누군가는 여전히 그렇게 볼지도 모르겠다. 이 점들은, 주책스러운 농담도, 도도한 콧대도 함께 소화할 수 있는 유빈 특유의 ‘쿨’이라는 근사한 평면 위에 놓여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아낌없이 사랑할 준비가 돼 있다.
기자명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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