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만 문제가 아니다. 같은 당의 황교안 대표는 “군과 정부의 입장은 달라야 한다”라고 말을 해서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항명을 부추기는 말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뿐만 아니다. 황교안 대표는 장외투쟁을 하는 내내 소위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천사, 지옥, 악마 따위 극단적인 종교적 이분법 언어를 구사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거친 언사’가 아니라 “거칠지 않게 표현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기계적 형평성을 고려해서 살펴보면 민주당이나 진보 쪽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하하기 위해 ‘닭×’이라는 말은 일상용어였다. 이 말은 박 전 대통령만 비하하는 게 아니라 여성에 대한 혐오 표현이라고 많이 지적받았지만 아랑곳없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생김새를 가지고 ‘쥐박이’라고 불렸다. ‘일반’ 시민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해도 된다는 말도 있었지만 이런 말이 양쪽 진영의 감정을 자극하고 갈등을 더 부추긴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아무 말 대잔치를 넘어 막말 대잔치, ‘쎈’ 말(표준어는 ‘센’이지만 여기서는 ‘쎈’이라고 해야 한다) 대잔치가 펼쳐지고 있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눈에 보이는 것은 환호하는 사람들이다. 그 환호하는 사람들 바깥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징그러워하고 끔찍해하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앞에서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취해 더 ‘쎈’ 말을 내놓게 되고 마이크를 쥔 사람들끼리 서로 경쟁한다.
은둔형 외톨이를 연구하는 일본의 정신의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사이토 다마키는 일본 청소년들을 연구한 〈폐인과 동인녀의 정신분석〉이라는 책에서 시부야와 하라주쿠, 그리고 이케부쿠로의 청소년들을 비교하며 글을 시작한다.
시부야 청소년들은 한국으로 치면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유형이다. 부모나 친구와의 관계도 원만하고 현실 생활을 별 고민 없이 즐긴다. 다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나 미래에 대해서는 “우물거리기 일쑤”다. 미디어나 문화와 관련해서도 딱히 자기 취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친구들과 만나 수다 떨고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보통의 청소년’이다.
반면 하라주쿠 청소년들은 자기 취향이 나름대로 분명해 보이는 것으로 사이토 다마키는 묘사한다. 취향이 비교적 뚜렷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다. 다니는 학교도 이미 직업학교나 미래 전망이 비교적 뚜렷한 편이다. 글의 뉘앙스를 보면 이런 자기 미래 전망과 이들의 취향이 나름대로 결합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들은 현재에 대해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라는 존재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그다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고 한다.
‘쎈’ 말을 못 견디는 사람은 외톨이가 되고…
사이토 다마키는 이케부쿠로에서 앞의 두 유형과는 아주 구별되는 집단을 만난다. 특히 의사소통과 관련해서 그렇다. 겉으로는 시부야 청소년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친구들과 몰려다니기 좋아한다. 이건 시부야 청소년도 마찬가지였지만 놀랄 정도로 무리 지어 몰려다니며 논다. 모여서는 오로지 수다만 떤다. 자기들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면 철저히 대화로 해결하는 편이라 “대화 소통이 원활한 신뢰 관계로 맺어진 것” 같다고 사이토 다마키는 말한다.
그가 하는 말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들의 언어가 가진 특성이다(글의 흐름으로 보면 이 경향이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이케부쿠로 쪽인 것 같다). 이들이 쓰는 언어는 ‘강도적(强度的) 표현’이 대부분이다. 그는 “‘초’로 대표되는 접두사나 ‘썰렁하다’ ‘화끈하다’라는 온도적 표현, 혹은 ‘대단해’ ‘엄청’ 등의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한다고 말한다.
물론 저런 말들은 한국에 오면 아무런 ‘강도’도 표현하지 않는 시시한 말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무엇을 말할 때 ‘오조 오억년 전부터’ ‘200% 동의’ ‘핵핵핵존맛’ 따위 표현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그냥 ‘맛있다’로는 소통을 할 수 없어, ‘존나 맛있다’나 그걸로도 부족해 ‘핵존나 맛있다’를 거쳐 이제는 핵을 세 방을 터트려야 감정 표현이 되고 소통을 하고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의사소통은 자기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의미를 전달하고 그것을 공유함으로써 공동체를 도모하는 행위다. 특히 정치공동체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치 있는 질문에 대해 자신의 견해, 자신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토론하며 그 의미를 공유함으로써 도모된다. 그렇기에 의사소통은 의미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런 점에서 공동체가 도모되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달창’이라는 말은 문재인 정부의 지지자들을 기분 나쁘게 할 의도로 만들어졌다. 의미 자체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에 대한 혐오와 경멸과 여성 혐오를 섞어놓은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그런 의미를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그 혐오의 강도를 전달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말의 의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강도가 중요하다. 조합이 가능하지 않은 말이라 하더라도 상관없이 다 섞어서 ‘쎈’ 조합을 만들어내는 연금술사만 환영받는다.
나아가 이런 말들은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것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잘 보면, 주된 목적은 그 말을 하면서 킬킬거리는 ‘우리’를 즐겁게 하는 데 있다. 누군가 ‘달창’과 같은 말을 만든 사람은 그 말을 쓰는 순간 그 공동체에서 환호 받게 된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부들부들’ 떨면(사실은 떠는 것을 자기들끼리 상상하면서) 자기들끼리 킬킬거리며 좋아한다. 이런 말들은 상대를 망가뜨리는 것만큼이나 ‘우리’라는 유대감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공동체는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강도를 공유하는 것으로, 그것도 그 감정의 강도를 점점 더 인플레이션하는 방식으로만 도모된다. 당연히 그 공동체 내에서 리더의 자리를 차지하려면 더욱더 아무 말이나 막 하고 더 ‘쎄게’ 말해야 한다. 사실 대중을 이끄는 ‘리더’가 아니라 그들을 즐겁게 하고 취하게 하는 ‘엔터테이너’이다.
이 과정에서 파괴되고 불가능해지는 것은 정치 그 자체다. 일본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의 언어를 빌리자면, 사회의 적대에 대한 해상도 높은 언어는 재미없는 언어로 외면받는다. 대신 선악 이분법을 강화하는 선명도 높고 얕은 언어만 장사가 된다. 문제 해결도 요원해지고 적대에 대한 이해도 무뎌진다. 그러니 제대로 해결할 수도, 제대로 싸울 수도 없게 된다. 협상과 타협을 통해 적대를 갈등으로 전환해가며 관리하는 부르주아적 정치도, 적대의 심화를 통한 변혁이라는 혁명의 정치도 다 불가능해진다.
어디를 가나 이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 현상에 실망한 이들은 더 이상 사람을 만나지도, 모임에 나가지도 않으려
한다. 감정의 강도를 유지하고 늘 공명하는 것은 너무 피곤한 일이다. 그 강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그 강도로 비난받는다. 이 피로를 감당하기 힘들다. 그래서 다들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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