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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가 내는 소리는 그가 통과한 세계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시사IN>에 ‘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을 연재한 이기용씨(사진)에게 ‘뮤지션이 뮤지션을 만났을 때 어떤 음악적 영감을 얻을 수 있는지’ 들어보았다.

고재열 기자 scoop@sisain.co.kr 2019년 06월 13일 목요일 제6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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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 치면 참 성실한 기자다. 밴드 허클베리핀의 리더 이기용씨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이라는 제목의 인터뷰를 <시사IN>에 연재했다. 그는 직접 인터뷰 대상을 고르고 섭외하고 내용을 정리해서 자료 사진과 함께 송고했다. 3시간 넘는 인터뷰를 그대로 옮기면 A4 용지로 20쪽을 훌쩍 넘긴다. 그러나 이기용씨에게 허용된 <시사IN> 지면은 단 두 쪽, 200자 원고지로는 17.5장 분량이었다. 뮤지션의 이야기 중 핵심적인 고갱이만 건져 지면에 담았다.

그의 인터뷰는 글로 끝나지 않았다.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인디 밴드 1세대인 그가 신진 뮤지션과 함께 공연하는 ‘X Stage’다. 지난 4월에는 카코포니와 함께했고, 6월28일에는 단편선, 8월에는 최고은과 무대를 꾸민다. 뮤지션이 뮤지션을 만났을 때 어떤 음악적 영감을 얻을 수 있는지 들어보았다.


ⓒ시사IN 신선영


첫 콘서트를 카코포니와 함께 공연했다. 그 이유는?

이제 막 음악을 시작한 20대 뮤지션은 마냥 ‘스타일리시’한 경우가 많은데 카코포니는 달랐다. 음악 안에 굉장한 이야기와 깊이가 있었다. 노래 한 대목을 듣자마자 함께 공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깊은 상실감에서 출발한 음악’이라는 측면에서 나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상실감이 본인 음악을 관통하는 주제인가?


공황장애라는 용어는 몰랐지만, 학교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힘들 때가 있었다. 그때 빠져나오는 계기가 되었던 게 외삼촌이 들려준 기타 연주였다. 외삼촌이 ‘방황하는 것은 좋은데 기타라도 치면서 달래보라’며 줬다. 통기타를 품에 안았을 때 ‘이 기타가 있다면 덜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한테나 힘든 고비는 있는 법인데, 그때 극단적으로 내려가지 않고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것은 늘 음악이었다.

인터뷰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제주에서 지냈다. 제주의 생활은 어땠나?


제주에 내려갔을 때가 인생에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힘든 시기였다. 제주에서 점차 치유되면서 음악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전에는 내가 깊이 몰두한 것을 드러내고 싶었다. ‘왜 그럴까’ 하는 사유에서 출발한 것으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 좌절, 상처, 슬픔이 많았다. 그러나 제주에서 올라와 만든 6집 앨범엔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을 최대한 담지 않았다. 힘든 시기를 통과하게 만든 탁 트인 풍경과 고요함을 넣고 싶었다. 하늘, 바다, 길 등 공간에 대한 느낌을 음악을 통해 나누고 싶었다.

실제로 이번 음반은 좀 밝은 느낌이다.

앞모습은 연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뒷모습은 다르다. 오랜 슬픔이 주는 숨길 수 없는 뒷모습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 마음이 많이 간다. 제주에 다녀온 뒤 내 음악에 긍정의 기운이 많아져서 그걸 나누고 싶었다. 음악이 슬픔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는 못하겠지만, ‘누군가가 당신의 슬픔을 이해해준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며 위로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뷰에서) 뮤지션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이었나?

한번 크게 꺾이고 깨어져본 경험이 있는지 여부가 기준이었다. 삶의 변화무쌍함이 가져다주는 우연과 고통이 우리에게 진짜 가치관을 준다.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리더였던 성기완씨는 아버지의 피난이 이야기의 원형이라고 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할 그때 가족이 연극을 하며 유희를 만들어내려 노력했다고 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모두가 진창에 빠져 있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하늘의 별을 바라본다’고 했는데 그런 고통을 겪으면 음악에 묻어나오기 마련이다.

예술가가 아름다움으로 향할 때, 그것은 택하는 것이라기보다 버리는 것인 경우가 많다. 무엇을 잘 버리는지가 중요하다. 거기에 삶이 들어가 있다. 음악은 음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뮤지션의 삶과 뮤지션이 속한 사회와의 연결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어려움을 극복하면 만들어지는 소리가 있다. 뮤지션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소리는 그가 견뎌온 삶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또한 연주나 노래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창작을 하는 뮤지션을 선택했다. 겉모습은 즉자적이고 ‘감각 덩어리’처럼 보이는 뮤지션이라도, 실제로 만나보면 ‘딴따라’ 이미지와 정반대인 사람이 많았다.

원래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고 들었다.

인터뷰 연재 초반에 ‘못할 것 같다’고 했던 적이 있다. 사람을 만나기 싫었다. 진짜 진짜 싫었다. 그러나 뮤지션들을 만나면서 깊은 이야기를 들으며 나중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 시간이 고통스럽지 않았고, 그들도 진지하게 답해주었다. 보통 3시간 넘게 인터뷰했다. 다들 굉장히 깊이 들어갔다고, 이렇게 속에 있는 이야기를 많이 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인터뷰 준비는 어떻게 했나?

그 사람의 음악을 다 듣고 간다. 그러면 자기 음악을 다 듣고 왔다는 것에 (인터뷰 대상의) 마음이 크게 열린다. 예전 인터뷰를 당할 때 실망한 적이 있다. 대충 두어 곡 듣고 와서 묻는데 직업정신이 투철하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내용은 어떻게 정리하는가?

일단 전부 녹취를 푼 다음 정리한다. 녹취를 푸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 사람의 뇌가 보인다고 할까. 말이 되는 얘기가 별로 없었다. 말이 파편화되어서 재배치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녹취하면서 내가 말하는 습관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다. 녹취를 풀면 매번 A4 용지 20쪽 내외 분량이 되었다. 그걸 원고지 17.5장으로 줄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엄청난 훈련이자 특별한 경험이었다.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지면이 제한적이었다. ‘내가 이 사람에 대해 뭘 가장 흥미로워하지?’라는 관점으로 정리했다.

인터뷰할 때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소리와 생각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애썼다. 외형의 소리 말고 내적인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소리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가’가 관심사다.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자기 세계, 즉 정교하게 쌓아 올린 생각의 체계가 있다. ‘그래서 이런 음악이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나는 음악을 선율로만 듣지 않는다. 위아래와 좌우를 살핀다. 거기에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시사IN 윤무영
이기용씨(왼쪽)가 ‘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에서 처음 소개한 이승열씨(오른쪽).

원래 알던 뮤지션을 인터뷰로 만났다가 놀란 적이 있다면?


잘 알던 뮤지션인데, 속 얘기를 들어보니 음악을 그만두려고 했던 이유가 가난해서였다. 활동을 열심히 하는 밴드인데도 그랬다. 아주 기본적인 생활도 불가능할 정도라고 했다. 전기세 3만원이 밀려서 전기가 끊겼다고 했다. 그 얘기는 차마 못 쓰겠더라. 구체적인 숫자를 쓰면 음악이 발가벗겨지는 느낌이 들어서.

기억에 남는 뮤지션을 꼽아본다면?

MC메타와의 만남은 힙합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진지한 사고를 하고 있었고 음악적 이해도 높았다. 방준석 인터뷰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말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녹취 내용을 다시 정리해서 보니 생각이 깊이가 있었고 놀랄 정도로 철학적이고 심오했다. 못(Mot)의 이이언은 치밀한 생각의 구조에 예민한 감성을 결합시켰다. 음악을 구조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사람이었다. 세계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음악가인지 과학자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좋은 음악이란?

좋은 음악은 시간을 견디는 음악이다. 좋은 음악은 더 많은 반복을 견디는 음악이다.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음악이다. 깊고 단단한 이야기를 삶으로 만들었던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애를 쓰면 반드시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인터뷰 연재를 마치고 자신의 음악에 대해서도 생각이 정리되었나?


‘하고 싶은 음악’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을 같이 하면 안 되겠느냐는 이야기를 평생 들어왔다. 물론 나를 염려해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나 나 역시 일부러 소수 취향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음악을 하는 것이다. 고흐도 당대에 팔리는 화가는 아니었다. 고흐가 (취향을) 팔리는 그림으로 바꿔야 했을까? 바뀐 고흐의 그림이 지금 우리에게 의미가 있을까? 최선을 다하는 직장인에게 ‘왜 성실하게 직장 생활만 하느냐. 사업을 하면 더 낫지 않겠느냐’고 말하지 않는다.

뮤지션으로서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 음악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고 보고, 그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의 기준에 충실한 음악을 하려고 애쓴다. 우리의 시선은 끝까지 가 있다. 70대, 80대에 음악적으로 할 일까지 생각하고 있다. 길게 보고 더 좋아질 수 있는 부분을 개선하며 갈 것이다. 오직 우리 음악의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를 궁리할 뿐이다. 수많은 어려움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살아보지 않으면 짐작하기 힘든 것들을 감당하면서 간다. 그만둘 이유가 생활인으로서는 넘쳐나지만 다 제쳐두고 인생을 걸어보겠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향해 치열하게 나아가겠다. 7집은 따뜻하게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빛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음악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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