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의대 재학 시절의 친구들을 만났다. 안부를 묻는 친구에게 내가 답했다. “내가 너한테 전화 안 하면 우리 집에 별일 없는 거야. 그동안 모처럼 평화로웠다는 뜻이지!” 풀이하면 이렇다. 그 친구는 의대 부속병원에서 내과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부모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가 전화로 조언을 구하는 전문가이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다는 것은 우리 부모님한테 별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 부모 ‘담당의사’는 따로 있다. 아버지의 경우 심장질환과 그 합병증 때문에 오래전부터 대학병원 심장내과와 신장기내과 단골 고객이다. 대학병원이 너무나 익숙해서, 동네 의원에는 눈길조차 준 적이 없다. 넘어져서 무릎관절에 피가 고여도 심장판막 수술 이후 복용하는 항응고제와의 연관성을 생각해서 꼭 대학병원에 가야 하고, 다리에 가벼운 부종이 생기거나 전에 없던 통풍 증상이 생겨도 기존 병력이 기록되어 있는 대학병원에 가야 한다.

ⓒ시사IN 신선영서울대병원의 외래진료 접수 창구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어르신들.

문제는 대학병원의 여러 전문과를 성실하게 순회하지만, 정작 아버지의 복잡한 건강 문제에 대해 ‘전모를 꿰뚫고 있는’ 의사는 없다는 점이다. 대학병원 교수들이 불친절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이 그렇기 때문이다. 내과가 아니라 순환기내과, 순환기내과 안에서도 다시 세부 전공들이 갈려 있고, 각자는 그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들이지만 그렇기에 환자의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기 어렵다. 환자 한 명 한 명의 여기저기 아픈 사연을 다 들어줄 시간도 없다. 환자가 다리가 붓는다고 하면 신장기내과에, 피부가 가렵다고 하면 피부과에 협진 의뢰서를 내는 게 최선이다. 이 복잡다단한 상황의 전모는 환자 자신 혹은 보호자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어머니는 고혈압 때문에 동네 가정의학과 의원을 꾸준히 다니며 감기몸살, 복통 같은 어지간한 문제도 모두 이곳에서 해결한다. 엄마가 급성담낭염이 생겼을 때 큰 병원을 가야 한다고 의뢰해준 곳도, 딸이 의사인 것을 알고 가끔씩 검사 결과를 메모해서 전달해주는 곳도 이곳이다. 그런데 패혈증에 이를 정도로 심각했던 급성담낭염 수술 이후 담석증이 자꾸 재발하면서 어머니는 대학병원 외래도 동시에 다녔다. 최근 혼자 외래진료를 다녀왔는데, 담당의사인 소화기내과 간·담도 전문 교수의 ‘불편한 곳이 없냐’는 질문에 ‘목감기 때문에 힘들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간·담도 전문가한테 왜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느냐고 했더니 어머니는 항변했다. “어디가 불편하냐길래 사실대로 말한 거지. 그 교수님도 ‘그건 나랑 상관없어요’ 하면서 웃더라.”


사실 환자 처지에서 보면 쓸개 따로 목 따로 있는 게 아니고, 현재 가장 불편한 점을 사실대로 말한 것뿐이니 ‘쓸데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스템이 이런 답변을 쓸데없도록 만든 것이다. 여기에서 또 다른 문제는 실질적으로 어머니의 ‘주치의’ 구실을 해왔던 동네 가정의학과 의사의 배제다. 이 의사는 담낭염 의뢰 이후 자신이 돌보던 환자가 패혈증에 빠져 생체 징후가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사실, 담도 입구에 소장게실이 위치해 있어서 담석 재발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현재 대학병원에서 어떤 식으로 관리받고 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환자의 후일담을 듣고 진료에 참조할 뿐이다.

대학병원보다 중요한 1차 진료 기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외래 이용이 으뜸으로 많은 이유, ‘의료 쇼핑’이 문제가 되는 이유, 종합병원 쏠림이 그토록 심각한 이유는 아마도 이러한 각자도생의 현실과 관계있을 것이다. 의료 이용에는 여러 가지 불확실성이 따른다. 먼저, 언제 어떻게 얼마나 아플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뇌졸중·암·장염·교통사고 따위가 나와 가족에게 언제 닥칠지, 얼마나 심각할지, 비용은 얼마나 들지 미리 알 수 없다. 이런 불확실성에 사회적으로 대처하는 수단이 바로 건강보험이다.

물론 비용만 문제는 아니다. 의료 서비스의 질을 예측하기도 어렵거니와 설령 똑같은 서비스를 받는다 해도 그 결과가 항상 똑같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사람마다 건강 상태가 다르고 진단 시점의 중증도 상태가 다르며, 실제로는 의료 서비스의 질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의료인 보수교육, 의료 인력과 설비 기준, 병원 인증 같은 제도가 만들어졌고, 또 항생제 처방률이나 비급여 진료비 정보공개 같은 조치가 시행되기도 한다.

이것으로도 부족하다. 마른기침이 오래가는데 큰 병원을 가야 하는지, 허리가 아픈데 어떤 과를 찾아가야 하는지, 고혈압 약을 먹는 중인데 텔레비전에서 광고하는 건강보조식품을 같이 먹어도 되는지…. 대부분의 사람은 이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의학 지식이 부족하고, 또 올바른 투약과 생활습관 개선을 조언해줄 수 있는 사회적 지지망도 부족하다. 이런 문제들은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국내 최고 명의가 해결해줄 수 없는 것들이다.

복잡한 의료체계 안에서 길을 잃지 않고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내비게이터 구실, 건강 문제를 최전선에서 확인해주는 문지기 구실, 사람 중심의 전인적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주치의, 곧 1차 진료 의사의 역할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주치의는 병원에 입원했을 때의 ‘담당의사’다. 환자는 입원 기간 중 수많은 검사를 하고, 수술이나 약물 치료를 받고, 여러 진료과 전문의들과 상담하지만, 이 모든 사항은 담당의사에게로 수렴된다. 그가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복잡한 결과와 진료 소견들을 종합하며, 필요한 경우 환자와 함께 방향을 결정한다. 1차 진료 의사, 동네 주치의는 이러한 대학병원 담당의사의 역할을 해당 병원만이 아닌 전체 의료체계로 확장한 것으로 보면 된다.

201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외래진료 민감 질환’의 입원 횟수, 입원 일수, 응급의료 이용 횟수 모두에서 저소득층의 점유율이 높았다. 외래진료 민감 질환이란 당뇨병처럼 외래에서 제대로 진료를 받으면 굳이 입원이나 응급실 방문까지 안 해도 되는 질환을 말한다. 저소득층에서 이들 질환의 입원이나 응급실 방문이 많은 것은, 양질의 충분한 외래 진료나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뜻한다. 호미로 막아도 될 건강 문제를 가래로 막고 있음을 보여준다(42쪽 〈표〉 참조).

ⓒ연합뉴스강원랜드는 2009년부터 ‘폐광 지역 순회 어르신 무료 건강검진’(아래)을 실시하고 있다.

최고의 대학병원 서비스가 아니라 주치의, 1차 진료 의사의 역할이 건강 문제 해결에 더 큰 작용을 한다는 것은 여러 연구 결과들이 잘 보여준다. 이를테면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대장암과 유방암 같은 심각한 질병의 경과를 분석한 연구들이 있다. 결과를 보면, 동네의 종양 전문의 숫자보다는 1차 의료를 담당하는 의사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대장암 생존율이 높아지고, 유방암의 조기 진단을 비롯한 적정 진료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네 1차 진료 의사들이 수술을 잘하고 항암치료를 더 잘해서라기보다, 환자의 건강 문제를 제때 발견하고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연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차 의료의 이러한 긍정적 효과는 가난한 동네일수록 특히 두드러졌다. 자살 예방사업의 성공사례로 이름을 알린 1980년대 스웨덴 고틀란드 지역의 프로그램에서도 핵심 역량은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라 평소 환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주치의, 동네 1차 진료 의사들이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진료를 통해 환자들이 직접 말하지 않는 정신적 고통, 위기의 징후를 눈치 채고 대화를 이끌어내며, 우울증과 자살 위험을 평가하여 그에 따른 약물을 처방하거나 정신과 전문의에게 문의 혹은 의뢰를 하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었다. 평소 환자와 의사 간 신뢰관계가 구축되어 있지 않다면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체계 없는 의료체계’ 개선 못하는 정부

캐나다와 유럽 등지에서는 1차 의료기관에서 의료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 행태나 예방 서비스에 대한 상담, 가정폭력 문제 조기 발견과 의뢰, 사회복지 서비스 연결 같은 일도 한다. 물론 이런 일들은 의사 혼자 하는 것이 아니며, 할 수도 없다. 여러 명의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를 비롯한 지원인력들이 ‘팀’으로 일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모습이 가능하려면, 현실에서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대부분이 전문의로 구성된 동네 의원이 과연 주치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고, 혹시나 실력이 부족하거나 불친절한 주치의를 만나게 될까 봐 걱정도 된다. 의사 처지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환자가 전화를 하면 어쩌나, 수입이 감소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된다. 보건정책을 입안하는 이들도 주치의 등록 절차, 건강보험 진료비 상환 방식, 큰 병원과의 의뢰-회송 체계, 물리적 공간과 양질의 팀 인력 확보 등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다.

우리 사회에 주치의 제도의 경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고혈압·당뇨 관리사업, 방문건강 관리사업, 지역사회 1차 의료 시범사업, 1차 의료 만성질환 관리사업, 장애인 주치의 시범사업, 진료 의뢰-회송 등 여러 시범사업이 이루어졌거나 진행 중이다. 1차 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연구 활동도 활발하다. 시범사업 중에는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가 분명한 사업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시도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좀 더 나은 체계를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주치의 제도 도입이 적극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문제 해결의 방법이 없어서라기보다 이를 강력하게 추진할 만한 동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은 이미 사적 네트워크를 통해 최고의 주치의들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불편함과 아쉬움이 없다. 굳이 여러 어려움에 맞서가며 이런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정부는 ‘건강관리 서비스’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체계 없는 의료체계’ 때문에 겪는 시민들의 시련이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보건복지부는 “건강관리 서비스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고 포괄적이어서 의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업계의 요구”를 반영해 사례집을 발간하고 유권해석 절차까지 마련했다. “그동안 민간업계에서 겪던 의료행위와 건강관리 서비스 간 불명확성에 따른 애로사항을 상당 부분 해소”해줄 것으로 기대된다는 사례집 내용을 보면, 왜 사례집까지 발간해야 할 만큼 구분하기 어려운 행위를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건지 근본적 의문이 떠오른다.

주치의 제도 운영에 성공한 나라 많아

이를테면 고혈압 환자가 복용하는 약물에 대한 설명, 급격한 혈압 강하·상승 시의 조치 같은 의료적 상담은 의료행위라서 건강관리 서비스 기관에서 제공하면 안 된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제시하는 고혈압 예방과 관리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 병원 내원일 알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운동·식이 요법의 효과와 방법을 안내하고 금연·금주 등의 생활습관 개선 상담을 하고 조언하는 것은 건강관리 서비스 기관이 할 수 있다. 인플루엔자가 유행하면 알람을 제공하는 것도 건강관리 서비스 기관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이다. 사실 이런 일이야말로 환자-의사 신뢰관계 속에서 1차 의료기관이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들이다.

ⓒ연합뉴스평택보건소 의료진이 노각 밭에서 일하는 농민들의 건강 상태를 검사하고 있다.

진료의 연장선상에서 자연스럽게 제공할 수 있는 상담과 서비스를 왜 인위적으로 잘라내서, 그것도 영리기업에 별도로 맡겨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 환자가 봉인가? 민간기업 돈 벌게 해주려고 환자를 이리저리 돌리는 것이 보건복지부가 나서서 할 일인가? 게다가 서비스가 이렇게 개인화되고 상업화되면, 복잡한 건강 문제와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 빈곤층, 취약가구, 노인들은 서비스 접근이 더욱 어려워진다. 민간기업의 애로 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무려 10년에 걸쳐, 정권이 바뀌도록 이렇게 집요한 노력을 보여주는 보건복지부가 왜 똑같은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주치의 제도의 마련에는 그토록 소극적인지 궁금할 뿐이다.

한평생 영국의 국립보건 서비스를 옹호해왔고 웨일스 광산지역에서 노동자들의 주치의로 일했던 튜더 하트는 1971년 〈보건의료의 역진성 법칙(Inverse care law)〉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의료 서비스의 필요가 큰 지역일수록 의료 자원은 오히려 적게 할당되는 현상을 비판한 내용이다. 그는 이 논문에서 무상의료를 넘어 양질의 1차 의료를 주민의 ‘필요’에 따라 공평하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기술적이기보다는 정치적 문제임을 지적했다. 한국 사회에 제대로 된 주치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 역시 정치의 문제라 할 수 있다. 하기 어려운 이유를 100가지 댈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결책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성공적으로 주치의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도 많고, 국내에서의 시범사업이나 연구 경험도 적지 않다.

현재 노인 10명 중 6명이 세 가지 이상의 건강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의료 서비스의 상업화 경향과 소득 양극화는 동시에 진행 중이다. 고령화와 불평등 시대에, 건강권 보장을 위해서나 체계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주치의 제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대학병원 교수한테 언제라도 편하게 전화할 수 있는 연줄이 없는 사람, 언제든지 휴가를 내고 부모를 대학병원에 모시고 다닐 수 있는 여력이 안 되는 사람, 의학 교과서와 최신 진료지침을 줄줄이 꿰고 최선의 의학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두 한목소리로 주치의 제도의 도입을 요구해야 한다. 이건 불평등과 사회정의의 문제다.

기자명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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